"그래도 경찰이 다 그렇게 못된 사람들은 아니야. 모든 경찰이 나쁜 일만 하는 것처럼 생각할까봐 걱정이네."
여름방학을 앞둔 17일, 아이들이 휴일을 맞아 엄마를 보겠다고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점을 찾았다. 중학교 1학년, 2학년인 아이들은 엄마 대신 집에 찾아 와 옥수수를 삶아 주신 할머니의 손을 잡고 농성장 앞까지 왔지만 엄마를 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모든 통로는 방화벽과 단단한 셔터문이 내려진 상태였고 유일한 출입구는 겹겹이 배치된 경찰차로 완전히 봉쇄돼 있었다. 아이들은 경찰의 통제에 막혀 "갇혀 있어요"라는 글귀가 붙어 있는 유리창만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할머니의 눈물도 소용이 없었다. 경찰은 "들어가면 못 나온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할머니는 "우리가 계속 밖에서 서성거리면 엄마 마음만 아프니 그만 가자"고 아이들 손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3시간이 흘렀다.
경찰을 사이에 두고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바라만 보던 어머니와 자식들은 "가족 면회까지 막는 것은 너무 하지 않냐. 언론에 알리겠다"는 노조 간부의 3시간에 걸친 항의 끝에 겨우 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농성장에 감금돼 버린 사람들…"사식 안 넣어 줄거야?"
그런데 엄마는 아이들 손을 잡자마자 "우리나라 경찰이 항상 나쁜 일만 하는 건 절대 아니야"라고 아이들을 가르친다. "이번 일로 아이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될까 걱정스럽다"면서.
엄마는 홈에버 목동점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 황명희 씨.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 걱정은 한 시도 머리 속을 떠난 적이 없지만 "아이들 보고 싶으면 아줌마가 농성장에서 나가라"는 경찰의 말에도 끝내 농성장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애들 손 잡아보겠다고 한 발짝 나서면 다시 못 들어가게 할 게 뻔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18일로 농성 19일 째를 맞은 홈에버 월드컵점은 사실상 경찰에 의한 '봉쇄' 상태다. 취재진들 외에는 농성장 출입이 완전히 통제돼 있다.(☞ 더 많은 기사를 보시려면…)
'덕분에' 시작할 때는 600여 명이던 농성자의 수도 절반 이상 줄었다. 초반에는 함께 밤을 지새워주던 다른 단체 사람들도 더 이상 들어올 수가 없게 됐다.
친구가, 딸이, 엄마가 걱정이 돼 찾아온 주변 사람들을 직접 만날 수 없는 이들은 2층 창가에 매달려 손전화기를 붙잡고 있다.
"여기, 여기! 나 손 흔드는 거 안 보여?"
"그럼, 잘 있지. 근데 사식 안 가져 왔어? 사식 넣어줘야지!"
사식(私食). '교도소나 유치장에 갇힌 사람에게 사사로이 마련해 들여보내는 음식.' 이미 농성장은 '감옥'이 돼 버린 것이다. 집에 가서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이라도 한 끼 챙겨주고 돌아오고 싶어도 엄마들은 그럴 수가 없다.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갇혀 버린 몸들이다.
공권력이라도 투입되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뉴코아 강남점은 회사가 출입구를 용접해 놓았다가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를 나온다고 하자 부랴부랴 풀어버리는 일도 있었다.
처음에는 함께 농성장 안에서 집회를 하며 재미난 율동도 보여주고 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경찰차들에 가로막혀 주차장에서 지지 집회를 벌인다. 그 모습을 창 너머로 지켜보며 농성 중인 조합원들은 '또 하나의 감옥' 안에서 같이 구호도 외치고 노래도 부른다.
"엄마가 하는 일이 옳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겠지요"
엄마는 아이들에게 조근조근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못된 일 하려고 그러는 건 절대 아니야. 비정규직법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는데 엄마가 아직 젊은데 벌써부터 집안에만 있을 수는 없잖니. 너희 학원비도 벌어야 하고. 엄마들이 여기까지 들어올 때는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는데. 진짜 진짜 그랬어. '투쟁'이라는 단어 알아? 엄마도 생소했어. 맨날 집-회사, 집-회사만 왔다 갔다 했지 엄마들이 뭐 알겠니."
중학교 1학년 아들은 "엄마가 하는 일이 옳으니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엄마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말은 안 했어도 엄마가 빨리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이야 누가 모를까. 엄마도 그 마음을 안다는 듯 다시 얘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하니까 사장이 교섭에 나온 거야. 우리가 밖으로 다 나가면 회사에서 거들떠보지도 않을 걸."
"조금만 더 기다려주렴"
황명희 씨를 비롯한 수많은 엄마들이 농성장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다. 같은 시간 서울지방노동청 관악지청에서는 16일 저녁부터 시작된 교섭이 이틀 째 진행되고 있었다. 노사는 법인별로 나뉘어 마라톤 협상을 벌였지만 끝내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17일 밤늦게 결렬됐다.
이 가운데 회사는 "18일 오후 2시까지 점거를 풀지 않으면 특단의 자구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고 정부도 공권력 투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노사는 18일 오후 다시 교섭을 벌인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부탁했다. "금방 해결될 테니 그리고 나면 예전처럼 너희 밥도 챙겨주고 할 날이 올 거다"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24일이면 여름 방학이 시작된다고 했다. 그 전에 황명희 씨가 아이들 곁으로 '자랑스럽게' 돌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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