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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 노조가 회사 측 요구 거부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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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 노조가 회사 측 요구 거부하는 이유?

"홈에버가 제안한 '직무급', 기존 단협만도 못하다"

"회사 뿐 아니라 노동부조차도 자꾸 우리보고 '무리한 요구'라고 하는데 자세히 뜯어보면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최소한 단체협약대로라도, 비정규직법의 법 취지대로 해달라는 것이지 무조건 전부 다 정규직으로 시켜달라는 게 아니예요."

12일 오전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점 농성장에서 만난 김경욱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은 답답한 기색이 역력했다. "우리에게 회사가 내놓은 '직무급제'를 왜 못 받냐고 자꾸 물어보는데 그건 현재의 단체협약보다도 후진적인 내용이다"라는 것이다.

"그걸 제대로 모르면서 노조가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보도하는 언론도, 노동부도 답답하다"는 것이 김 위원장의 하소연이었다. (☞ 더 많은 기사를 보시려면…)

기존 단협보다 '후진적'인 방안을 '대안'으로 내놓는 이랜드

그렇다면 노조가 회사의 제안인 '직무급으로의 전환'을 거부하고 장기간 농성을 벌이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래의 표를 뜯어보면 그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다.
▲ 홈에버의 고용안정 관련제도 비교ⓒ프레시안

현재 비정규직 관련 인사 및 고용제도는 회사가 최근에 제안한 직무급제까지 포함해 모두 3가지다. 이 세 가지 제도들 가운데 고용보장 및 차별시정 가능성, 적용대상, 임금 등의 모든 면에서 최근 회사가 제안한 직무급제가 노동자 입장에서는 가장 안 좋은 제도다.

단협은 18개 월 이상 조합원 모두 vs. 직무급제는 24개 월 이상 중 선발
▲ 노조가 파업 등을 벌이면서 문제가 되자 회사는 '직무급제'로의 정규직 전환을 제안했다. 하지만 회사가 제안한 이 안은 기존의 단체협약보다도, 회사의 인사규정보다도 못한 안이다. ⓒ프레시안

우선 고용보장의 면에서부터 살펴보자.

이랜드가 인수하기 전인 까르푸(현 홈에버) 시절 회사와 체결한 단체협약에 따르면 18개 월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가운데 조합원의 경우에는 계약만료를 이유로 계약을 해지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즉, 18개 월 이상 일한 비정규직은 사실상 고용을 보장받는 것이다.

이랜드는 인수 당시 이 단협을 준수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데 홈에버는 이 단협을 어기고 18개 월 이상된 비정규직 15명의 계약을 해지했다. (☞ 관련기사 보기 : "법과 원칙은 이랜드에게 먼저 적용해야")

역시 까르푸 시절 만들어져 이랜드가 준수를 약속한 인사규정에 따르더라도 3개월, 6개월, 12개월로 진행되는 근로계약을 모두 거쳐 네 번째 계약부터는 고용을 보장한다고 돼 있다.

이랜드가 인수하면서부터 생겨난 '3.6.6 계약'으로 할 경우에는 15개 월 이상, 기존의 '3.6.12 계약'으로 하면 21개 월 이상 근속한 비정규직이 고용을 보장받는 것이다. 이 인사규정은 전직원을 대상으로 한다. 적용범위에 있어서는 단협보다 폭이 넓다.

하지만 최근 비정규직의 계약해지 문제에 노조가 파업 등으로 항의하면서 회사가 내놓은 '직무급제'는 그보다 더 못하다.

24개 월 이상이 대상자인 것이다. 그것도 24개 월 이상 근속한 전체 비정규직이 아니라 신규채용의 형식을 통해 일부만 선발하겠다고 밝혔다.

직무급제로는 차별시정 신청도 불가능…"임금 등 차별 여전할 것"
▲ 사정이 이렇다보니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겠다'는 회사의 홍보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이를 거부하고 13일 째 점거 농성을 벌이는 조합원들이 나오는 것이다. 농성장에서 만난 한 조합원도 "회사는 '정규직'이라고 하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전혀 아닌 것 같더라"고 말했다.ⓒ프레시안

고용 뿐 아니라 임금 등의 차별과 관련해서도 회사의 안은 기존의 두 제도보다 더 노동자에게 불리하다. 지난 1일부터 시행된 비정규직법에 따르면 비슷한 업무를 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금지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단체협약이나 인사규정이 적용될 경우 임금 등 근로조건에서 차별을 받은 비정규직은 차별시정 신청이 가능하다. 더 좋은 근로조건을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통로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가 내놓은 '직무급제'는 이같은 방식의 차별시정이 거의 불가능하다. 별도의 직군으로 운용할 경우 비교대상 정규직이 없어 차별시정제도의 적용을 받을 수 없는 탓이다. 이랜드측은 직무급으로 전환된 기존의 비정규직에 대한 임금과 관련해 아무런 공식적인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이랜드일반노조는 "회사는 관리자들만 볼 수 있는 이메일 공지를 보면 '직무에 따른 급여제도'로 별도 임금 테이블이 적용된다고 밝히고 있다"며 "결국 현재의 저임금을 그대로 이어가려는 것으로밖에 해석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앞으로 임금인상율에 있어서도 현재의 단협이나 인사규정은 노조와의 교섭을 통해 정하도록 돼 있지만 직무급제에서는 개별협상을 통해 진행하도록 돼 있다. 정규직보다도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비정규직들이 개별협상에서 높은 임금인상률을 얻어낼 수 있는 가능성은 낮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겠다'는 회사의 홍보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이를 거부하고 13일 째 점거 농성을 벌이는 조합원들이 나오는 것이다. 농성장에서 만난 한 조합원도 "회사는 '정규직'이라고 하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전혀 아닌 것 같더라"고 말했다.

결국 회사는 비정규직에게 적용될 수 있는 3가지 안 가운데 현재도 유효한 단체협약보다도, 인사규정보다도 못한 안을 가지고 나와 "노조가 정규직화 해준다는데도 거부하고 불법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꼴이다.

"최소한 법대로라도, 법의 취지대로라도 하자는 건데…"

더욱이 최근 직무급제로 전환된 사람들의 선발 과정에서 일부 점포에서는 노동조합 탈퇴를 요구하기도 해 노조가 반발하고 있다.

김경욱 위원장은 "이런 실상을 잘 안다면 노조가 회사가 제안한 '직무급제'를 못 받는 이유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런데 심지어 노동부조차도 '노조가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하는 것은 제대로 된 실태파악을 안 했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이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또 "우리가 모든 비정규직을 하루 아침에 정규직으로 전환해달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노조의 요구는 '우선 2년 이상 비정규직부터 법의 취지대로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3개 월 이상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고용보장 후 입사 2년이 되는 시점에 단계적으로 정규직화하자'는 것이다.

"법을 피해갈 생각만 하지 말고 최소한 법대로라도, 법의 취지대로라도 하라는 것이 우리의 요구다"라고 김 위원장은 몇 차례나 힘주어 말했다.
▲ "'가짜 정규직' 직무급제 철회하라."ⓒ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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