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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키나파소는 해가 어느 쪽에서 뜰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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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키나파소는 해가 어느 쪽에서 뜰까요?

석원정의 '우리 안의 아시아'<23>이주노동자 주변의 평범한 한국인들

며칠 전, 갑자기 궁금한 것이 하나 생겼다. 그래서 친분이 있는 초등학교 선생님들 몇 분에게 한번 확인해보았다.
  
  "선생님, 해는 동쪽에서 뜨잖아요? 그런데 방글라데시에서는 해가 어느 쪽에서 뜰까요?"
  
  선생님 1. "글쎄요? 어느 쪽에서 뜨나요? 서쪽에서 뜨나요?"
  (선생님 1은 갑자기 물어보니까 헷갈린다고 하였다.)
  선생님 2. "방글라데시가 어느 쪽에 있지요?"
  (선생님 2는 속으로 남반구인지 북반구인지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선생님 3. "아니 어느 쪽이든 무슨 상관이야. 지구에서는 모두 동쪽에서 뜨지."
  (선생님 3에게 나는 '아, 재미없는 선생님이네요'라고 말해주었다.)
  
  생뚱맞은 궁금증이고 질문이었지만, 평범한 한국인들이 국적불문하고 이주노동자들에게 자주 묻는 "너네 나라에도 해가 뜨니?"라는 질문의 배경을 생각해보다 비롯된 것이다.
  
  '너네 나라에도 해가 뜨니?'라는 질문을 이렇게 글로써 보면, 모두들 말이 안 되는 질문이라고 하겠지만 현실세계에서는 이런 질문들이 존재했었다. 그런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 한국인들만은 아니다.
  
  내게는 일본어를 잘하는 후배가 있는데, 이 후배는 한때 일본인관광객들의 가이드를 하였었다. 후배가 어떤 일본인 관광객 팀의 가이드를 하던 때에 일행 중의 어떤 아가씨가 후배에게 질문을 했다.
  
  "한국에서는 해가 어느 쪽에서 떠요?"
  "%*#@?"
  
  아가씨의 질문에 어이가 없어진 후배가 뭐라 대답할 말을 놓치고 아가씨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 아가씨는 일본어를 못 알아들은 줄 알고 이번에는 두 팔과 손으로 둥글게 원을 만들어 보이면서 "햇님 말이에요, 한국에서는 햇님이 어느 쪽에서 떠요?"라고 다시 물었다. 후배는 기가 막혀 '얘, 바보 아니야?'라고 속으로 뇌까리면서 그 아가씨를 쳐다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후배는 이어서 또 다른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어떤 버마출신 이주노동자가 야간작업을 하다가 한국인 동료와 잠시 쉬러 밖에 나왔단다. 바깥에는 달이 휘영청 밝았는데, 함께 쉬던 한국인 동료가 문득 그에게 물었단다.
  
  "버마에도 달이 뜨니?"라고.
  
  버마인은 기분이 나빠졌고, 그래서 퉁명스레 대답했단다.
  
  "우리나라에는 달이 두 개나 뜬다"고.
  
  그런데 그 말을 들은 한국인 동료가 다른 한국인에게 "야, 버마에는 달이 두 개래"라고 신기한 듯이 말을 전하더라고.
  
  두 개의 에피소드를 들려주면서 후배는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했던 일본인 아가씨와 한국인에 대해 툴툴댔다. 그런데 지금에야 고백하는데, 일본인 아가씨의 '한국에서는 해가 어느 쪽에서 떠요?'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나의 머릿속으로는 '서쪽에서 뜨던가?'라는 의문이 순간적으로 스쳐갔다. 그러다가 후배가 '얘, 바보 아니야'라고 뇌까렸다는 말을 듣고서야 '아, 어느 나라든 해는 동쪽에서 뜨지'라는 생각이 났었다. 아마 후배에게서 일본인 아가씨에 대한 얘기를 듣지 않았다면 나도 어쩌면 처음 들어보는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에게 "그 나라에서 해는 어느 쪽에서 뜨는가요?"라고 물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들이 가장 싫어하고 기가 막혀 하는 질문을 한 한국인 중의 한 사람으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얼핏 생각해보면 초등교육을 받았을까를 의심하게 하는 질문들이긴 한데, 희한한 것은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도 많거니와 그 질문을 받았을 때 나처럼 혼란을 일으키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 바보 아니야?'라고 고민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나이 좀 든 성인의 대부분은 한때 '선생님은 화장실도 가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좀 자라서는 넋을 빼앗아갈 만큼 어여쁜 여학생이 자신과 똑같은 생리현상을 겪고 있다는 것을 상상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자고 하면 무리한 일일까? 무리하거나 말거나 중요한 건 전혀 없지만, 그래도 짧게 '나는 바보인가 봐' 라고 자괴감에 젖었던 나를 포함하여 평범한 한국인들에게 위로의 말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차제에 모든 외국인들이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 불쾌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더라는 것을 알려주고도 싶다. 어떤 네팔사람은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순박한 사람들이다' 라면서 지식과 성품이 별개임을 간파하고서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심을 보여주어 나를 놀라게 하기도 했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삼면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대륙으로 연결될 육로는 DMZ로 막혀있는 이 한반도에서, 미국이나 일본이나 유럽이 아닌, 이상한(?) 국가에서 온 외국인을 매일매일 본다는 것, 아침저녁으로 얼굴 마주치고 밥도 함께 먹고, 말도 섞어야 한다는 것이 평범한 한국인 개인에게는 큰 사건이었을 것 같다. 외국인을 대면하는 것이 일인 나만 해도, 바다가 없는 땅에서 생활해온 몽골인들이 김도 싫어하고 회도 거의 먹지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 비로소 중등학생시절에 배웠지만 기억할 일이 없었던 '내륙국가'라는 단어나 그 땅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의 생활과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식이 순식간에 구슬 꿰어지듯이 종횡으로 엮여진 것이다. 내게서 몽골이란 나라를 덮고 있던 베일이 벗겨진 때는 그 때부터였다. 그러고 보면 초중등학생 시절에 쌓았던 세계사나 지리에 대한 지식은 죽은 지식이었던가 보다.
  
  요즘 우리 사회의 유행어 중의 하나가 '다문화사회'이다. 그런데 다문화사회가 제대로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평범한 한국인들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국가에서 온 외국인이 우리와 같은 생리현상을 겪는 사람이고 그가 살다 온 나라도 한국과 같은 자연현상이 일어나는 나라라는 것이 당연히 이해되는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비약이 너무 심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면, 주변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한번 물어보시기 바란다.
  
  "아프리카에는 부르키나파소(이 나라 출신 사람이 꼭 한 번 상담하러 왔었는데, 이런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한국인을 나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라는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에서는 해가 어느 쪽에서 뜰까요?"라고.
  
  즐겁게 한번 웃은 후에는 초중등학생 시절에 읽고 듣고 배우는 외국에 대한 지식을 살아있는 지식으로 만드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를 함께 고민해주시면 참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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