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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사용자에겐 최소한의 예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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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사용자에겐 최소한의 예의가 있다"

[일과 희망⑩]한-일 비정규직, 같지만 다른 이름

요즈음 일본을 다시보자는 논의를 흔히 접하게 된다. 일본 경제가 되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젊은이들이 전쟁같은 취업난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에 비해 일본 젊은이들은 회사를 골라가며 취업한다고 한다. 이런 차이는 경기순환 주기의 차이 때문일 수도 있고 노동력 연령 구성의 차이 때문일 수도 있으므로 무턱대고 부러워할 일만은 아니다.

그렇지만 일본이 오랜 불황에도 불구하고 종신고용 관행을 버리지 않은 것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버블 붕괴 이후 한동안 종신고용은 시대에 맞지 않는 관행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지만 일본 사용자들은 끝내 미국식 고용체제를 따라가기를 거부했다. 이것이 굳건한 노사협조 체제의 기반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비정규 노동, 일본도 똑같다"

종신고용으로 대표되는 일본 고용체제에도 아킬레스건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비정규 노동이다. 일본에서도 비정규 노동자는 정규 노동자에 비해 차별적으로 대우되는 일종의 2등 시민이다. 문제는 이런 비정규 노동의 규모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체 노동자 중에서 비정규 노동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5년에 32.5%에 이르렀으며 여성만 보면 이미 절반을 넘었다. 정규 노동자와 비정규 노동자 간 대우의 격차도 크다.

한국과 일본의 통계자료들을 분석해 보면 임금이나 사회보험, 기타 기업복지에서 정규 노동자와 비정규 노동자 간 격차는 양국에서 비슷하다. 일전에 일본 노조 관계자들이 한국의 비정규 노동 문제에 대해 조사하러 온 길에 필자에게 들러 면담을 한 일이 있었다. 한국 비정규 노동자의 실태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난 그들의 첫 번째 반응은 "일본도 똑같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비정규직에게는 고용 불안이 없다
▲ 같은 이름의 비정규직이지만 일본의 그들은 고용불안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 한국의 비정규 노동자와 다른 점이다. ⓒ프레시안

그렇지만 자세히 보면 한국과 일본의 비정규 노동자가 처한 상황에는 차이가 많다. 우선 일본 비정규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을 별로 느끼지 않는다. 일본 비정규 노동자들도 대개 기간제로 채용되고 감원 시에는 정규 노동자보다 먼저 감원의 대상이 된다. 그럼에도 고용불안을 별로 느끼지 않는 것은 본인이 아주 큰 잘못을 하지 않거나 회사가 정말 위기에 처하지 않는 한 해고되지 않기 때문이다. 직무만족도 조사 결과를 보면 고용안정성에 대해 만족한다는 비정규 노동자가 만족하지 않는다는 사람에 비해 훨씬 많다. 이에 비해 한국 비정규 노동자들이 극심한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일본 비정규 노동자들이 대부분 자발적 비정규 노동자라는 점도 한국과 대비되는 점이다. 일본 비정규 노동자의 핵심 층인 여성 파트타이머의 경우 노동시간이 짧다거나 편리한 시간에 일할 수 있다거나 통근시간이 짧다는 것 등이 비정규 노동을 선택한 주요 이유다. 정규직으로 일할 회사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비정규직으로 일한다는 사람의 비율은 그보다 낮다. 한국에는 이와 똑같은 방법으로 조사한 자료가 없어서 정확히 비교할 수 없지만 일본에 비해 비정규 노동자의 자발성이 크게 약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일본 파트타이머의 자발성이 높은 이유는 파트타임 노동이 가사와 양립하는 고용형태로 자리매김되어 있기 때문이다. 파트타이머들은 대개 노동시간이 정규 노동자보다 짧다. 그리고 회사가 파트타이머에게는 연장근로나 교대근무를 시키지 않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정규 노동자와의 노동조건 격차를 부당한 차별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이는 파트타이머들이 많다. 이에 비해 한국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정규 노동자와 별 차이가 나지 않지만 대우는 크게 차이나기 때문에 차별을 아주 분명하게 느낀다.

사용자들이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조 활동을 존중하는 정도도 양국에서 현저히 다르다. 몇 해 전 필자는 일본을 방문한 길에 주로 비정규 노동자를 대상으로 활동하는 지역일반노조 간부를 만나 이것저것 묻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 노조는 개인 가입을 많이 받는데 그러다보면 한 회사 내에 이 노조 조합원이 한두 명밖에 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도 회사 측에 단체교섭을 요청하면 보통은 교섭에 응한다는 것이었다. 교섭에 응하지 않는 회사도 간혹 있지만 노동위원회에 제소하면 거의 해결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개인 조합원을 위해 어느 건설회사와 맺은 단체협약서도 보여주었다. 협약서의 내용은 간단했지만 노동3권의 현주소를 보여주기에 충분한 문서였다. 대표적 재벌그룹이 노조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 익숙한 필자로서는 놀랍고 부러운 일이었다.

노동자의 과격성 탓하기 전에 일본 사용자의 예의부터 배워라
▲ 일본 비정규 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 비해 인간다운 대우를 받는 이유는 일본 사용자들이 갖고 있는 최소한의 예의 때문이다. ⓒ프레시안

요컨대 일본 비정규 노동자는 정규 노동자에 비해 차별은 받지만 인간다운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이것은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보호 법제가 잘 되어 있어서가 아니다. 일본의 비정규 노동자 보호 법제는 유럽은 물론 한국에서보다 약하다. 일본 비정규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대우를 받는 이유는 사용자들이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기 때문이다. 인간존중의 규범이 정규 노동자는 물론 비정규 노동자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다. 일본에서 비정규 노동자가 급증하는데도 이들이 주도하는 노사분쟁이 거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의 과격성을 탓하기 전에 일본 사용자에게서 이 최소한의 예의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한국 사용자들은 기회만 있으면 비정규직 증가가 세계적 추세라거나 정규직 고용경직성 때문에 비정규직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했을 뿐 이들을 어떻게 인간으로서 대우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시장논리로 미화된 탐욕과 폭력의 화신이 되길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사용자들이 잃어버린 품위를 되찾을 기회는 있다. 이제 곧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된다. 그러면 사용자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과연 우리 사용자들이 법의 취지에 따라 비정규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거나 인간답게 대우하여 사회통합에 기여할 것인지 아니면 법을 회피하거나 악용하여 비정규 노동자들의 극단적 저항을 더욱 부채질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물론 여기에는 공공부문 사용자로서의 정부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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