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1년 걸프전 때 미국의 이라크 공습을 서방기자로는 유일하게 취재했고 70년대 냉전시대에 남북한을 일주일씩 방문해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을 연달아 인터뷰하기도 했던 ‘스타’ 종군기자 피터 아네트(66)가 지난 14일 한국언론재단 초청으로 방한해 17일 오전 프레스센터에서 ‘전쟁보도의 진실과 국익’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가졌다.
피터 아네트는 “한국은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민주주의와 경제개발에 성공한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으며 전쟁과 정치적 갈등에 놓여 있는 중동 각국에 모범이 될 것"이라며 강연을 시작했다.
피터 아네트는 “한편에서는 테러를 증오하고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의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며 “우리는 (지구)다른 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보도통제는 "권리에 대한 위협"**
그는 정부에 의한 보도통제 문제에 대해“일부 미국 관료들은 ‘위기상황의 진실을 모두 알리면 대중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우므로 민감한 내용을 걸러 전달해야 국가안보상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나 이는 대중의 권리에 대한 위협이자 언론의 전문성에 대한 도전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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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 “모든 사람이 진실에 접근할 수 있고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 받아야 한다”며 “위성 안테나만 있으면 어디서나 아랍계 위성방송 ‘알자지라’를 시청할 수 있을 정도로 이미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고 다양한 채널이 형성됐기 때문에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피터 아네트는 한국의 군사적 대치상황 때문에 언론도 안보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미국 전쟁보도의 기준을 설명하며 ‘성역이 없는 비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미국은 단 하나의 예외, 즉 ‘군사작전이 노출됨에 따라 병력이 위험에 빠질지도 모를 경우’에 한해서 보도를 자제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과 정부는 긴장관계에 있는 것이 바람직**
피터 아네트는 지난날을 회고하며 한국전에 징집될 것이 두려워 조국인 뉴질랜드를 등진 자신이 종군기자를 ‘직업’으로 택하게 된 계기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징집을 피해 태국에 머물며 기자생활을 하던 중 2차대전과 한국전쟁의 종군경험을 지닌 동료들을 만나 깊은 감동을 받은 후 1966년 라오스의 쿠데타를 취재한 후 모든 통신시설이 두절돼 혼자 메콩 강을 헤엄쳐 건너 태국에서 전화로 쿠데타 사실을 특종보도 했고 이후 베트남전쟁을 취재하면서 자신의 자질이 어떤 쪽에 유용한지 깨달은 후 본격적인 종군기자의 길로 나섰다는 것이다.
그는 “내가 보수파로부터는 악명을 얻고 있고 반대쪽에서는 미국 정부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기자의 가장 큰 무기는 사실이며 언론과 정부는 긴장관계에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강연을 마쳤다.
***김정일이 독재자라고 해서 북한과 전쟁을 벌여야 한다고 보지 않아**
피터 아네트는 강연이 끝난 후 청중들과 일문일답을 주고받던 중에 “기자로서 가장 보람이 있었던 순간과 회의가 든 순간은 언제 였냐”는 질문에 가장 회의가 든 순간은 “베트남전을 함께 취재하던 사진기자가 숨졌을 때 그의 가족을 만나동료의 죽음을 설명하는데 그들은 왜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터에 뛰어들었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때”라고 답했고 가장 뿌듯했을 때는 “1997년 이라크 주민에게서 편지를 받은 뒤 종양으로 목숨이 경각에 달린 여섯 살짜리 소녀의 사연을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방송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후세인을 독재자로 평했는데 이라크 전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비친다”는 질문에는 후세인이 독재자라는 사실과 전쟁을 지지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지적하고 “김정일이 독재자라고 해서 북한과 전쟁을 벌여야 한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그는 이 질문과 관련해 “전 세계에 약 50여 명의 독재자가 있는데 원하지 않는 정권이라도 용납해야 할 경우가 있는 법”이라며 “후세인의 실각에 대해 분노하거나 슬퍼하는 이라크 국민은 많지 않으나 그들은 새로운 정부가 빨리 들어서지 않는 것,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것, 직업이 없는 것 등에 대해 화를 내고 있다”고 부연했다.
***종군기자에 필요한것은 "일에 대한 신념"**
그는 종군기자로서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일에 대한 신념, 즉 내가 하는 일이 목숨과 바꿀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 것”이라고 답했다.
피터 아네트는 지난 1966년 AP통신 소속으로 베트남전 보도로 ‘퓰리처상’을 수상한바 있으며 주로 전쟁의 부도덕성과 추악한 면을 고발하는 기사를 써 역대 미국 행정부나 군부로부터 ‘기피인물’로 낙인 찍혔고 이라크 전 당시 미국 NBC방송의 종군기자로 취재를 하던 중 이라크 방송에 출연해 미군에 불리한 인터뷰를 했다는 이유로 해고 된 후 영국 일간지인 ‘데일리미러’로 소속을 옮겨 취재를 계속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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