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의 일이다. 유네스라고 하는 29살의 잘생긴 이란 청년이 있었다. 한국에 온 지 5년 정도 되고 꽤 친하게 지냈었는데 이 친구가 한국에 오기까지의 경위를 들은 적이 있었다. 유네스와 열댓 명의 이란청년들은 유도선수로 둔갑해 한국에 입국했다. 한국의 어떤 유도 관련 단체의 초청장을 소지하고서. 그런데 인천공항에서 비자 심사를 하던 법무부 직원이 이들을 휙 훑어보더니 유도를 시범적으로 해보라고 주문했다. 예상치 못한 법무부 직원의 주문에 이들은 시범을 보이지 않을 수 없었고 아주 쉽게 들통이 났다.
입국을 거절당한 이들은 제3국으로 갔고 거기서 두 달 동안 열심히 유도를 배웠다. 그리고 다시 입국을 시도했다. 이번에도 지난번과 똑같은 법무부 직원이 비자심사를 했는데 이번은 무사통과! 그리고 이들은 마중 나온 한국의 유도 관련 단체 관계자의 안내로 공항을 빠져나온 후 각자 흩어졌다.
이번에는 2006년의 일.
용인에 있는 모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의 대표는 아주 황당한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일요일이었는데, 인도네시아 사람 2명이 인천공항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온종일 있는데 와달라는 내용이었다. 차를 끌고 공항으로 달려가 이들을 인수(?)해 일단 단체로 데려다놓고 자초지종을 알아보았더니 정말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들은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사람들이었다.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어 시험을 쳐서 합격했고 약 40여 명의 사람들과 함께 한국입국 전 교육을 받았고, 한국에 입국한 것이다. 그들이 알기에 이 모든 과정은 불법이 아니라 정상적인 시스템 속에서 움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인천공항에 마중 나와 있어야 할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사람은 오지 않았고, 어찌 해야 할 바를 모른 이들이 본국으로 전화해 한국에 있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연락처를 알아내고, 사정을 들은 한국의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의 대표에게 연락해준 것이다. 이 지원단체의 대표는 한국산업인력공단에 전화하여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보았다.
그런데 고용허가제로 입국하는 외국인들은 일요일에 입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입국예정 인도네시아인 명단에 이들의 이름은 없었다. 이 모든 것이 브로커의 농간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파악한 바로는 한국에서 이들을 인수(?)하기로 한 사람은 행정사(얼마 전부터 행정사라는 직업이 생겼다. 잘 모르겠지만 여러 가지 행정절차를 대행해주는 것 같은데, 이들 중 일부가 이주노동자들의 입국과 취업 및 채용의 시스템 속으로 흘러들어오고 있다) 명함을 내민 한국인이었다.
그런가 하면.
어트커와 어기라는 몽골청년 두 사람이 우리를 찾아 왔다. 한국에 온 지 1년 남짓 된 이들은 2006년 10월경에 관할 고용지원센터를 찾아갔다. 그곳에는 몽골인 통역자가 있었는데, 그가 이들에게 어떤 한국인을 소개해주고 '이 사람을 따라가라'고 일러주었다. 통역자가 소개해준 사람을 따라갔더니 그가 어떤 승용차로 안내하였다. 두 몽골인과 한국인은 승용차 안에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좀 있으니 두 사람의 한국인이 승용차 안으로 들어왔다. 그 한국인들은 이런 절차를 대행해주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어떤 서류에 서명하게 하고 두 사람의 여권과 외국인등록증을 가져갔다. 두 사람은 비자연장기간을 놓쳐 법무부에 벌과금을 내고 비자를 연장하여야 할 상황이었는데 벌과금 20만 원을 주면 비자 연장절차를 해준다고 하여 돈을 주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A회사로 가서 일하기 시작했다. A회사에서는 두 사람의 외국인노동자가 필요했고, 그에 필요한 행정절차를 대행해주는 대가로 1인당 10만원씩의 수수료를 대행사에 지급했는데 이들 역시 행정사라고 하였다.
여기까지는 서로간의 편의를 봐주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고용지원센터의 알선을 통해서만이 이주노동자를 채용할 수 있고 취업할 수 있다는 법조항을 위반하기는 했지만, 노동부의 전산망에는 아무 이상 없이 A회사와 두 몽골인이 정상적인 채용-취업으로 등재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 행정사 사무실에서 비자연장을 해준다고 가져간 여권과 외국인등록증, 그리고 벌금 문제는 그 뒤 시간을 질질 끌고 있었다. 여권과 외국인등록증이 걱정이 된 두 사람이 여러 차례 연락하였지만 '보내준다' '보내준다' 하더니 두 달 정도 지나자 15만원의 비용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하여 받아갔다. 그러고도 또 3개월이 흘렀다. 그러더니 벌과금이 더 필요하니 이번에는 50만원을 더 내라고 하여 이 돈을 또 주었다. 그 이후 이 한국인들은 연락이 뚝 끊어졌고, 처음 고용지원센터에서 이들과 연결해주었던 통역자에게 확인해보았더니 '그 사람들이 범법행위를 하여 경찰에서 찾고 있다'는 기가 막힌 말만 전해주었다.
고용허가제가 되면서 예전보다는 브로커들의 기승이 덜 하다고 한다. 또한 노동부에서 송출브로커를 근절하기 위해 상대국가의 송출기관 감독을 나름대로 하는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한국에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에게 물어보면 '예전보다 덜하다'는 반응이니 사실인 것 같다. 그렇긴 하지만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브로커들은 존재한다.
거의 모든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불법 취업을 하거나 불법체류를 하게 되는 주요 이유가 한국입국과 취업을 위해 이들이 쏟아 부은 비용 때문이다. 특히 한국 입국을 위해 이들이 브로커들에게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수백만 원에 달한다. 그리고 그 비용을 다 갚고 앞으로 먹고 살 돈을 벌려면 허용된 3년의 기간은 부족하다는 것이 이주노동자들의 공통된 상황이다.
이런 딱한 상황이야 사실, '안타깝다'라는 말로 표현할 상황인데, 우리들 인권활동가들의 심정은 안타까울 뿐만 아니라 분노와 착잡함이 뒤섞여 대단히 복잡하다.
이들이 이렇게 본국에서 치른 막대한 이주비용은 누구의 호주머니로 들어갈까? 현지의 자국민 브로커들의 호주머니로만 들어갈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들, 인권단체들은 아주 속편하게 그들을 비난하고 딱한 처지의 이주노동자들을 안타까워 하기만 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여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입국하여 취업하고 출국하기 전까지 매 단계단계마다, 즉 본국에서 한국에 입국하기 위해 준비할 때, 한국에 입국할 때, 사업장을 찾을 때, 사업장을 옮길 때, 심지어는 임금이 체불되거나 산재를 당해서 행정처리가 필요한 경우에도 이들을 거들어주는 '그 누군가'가 반드시 한국에 있다. 이들이 인권단체와 다른 점은 그런 처리를 해주는 대가로 금품을 요구한다는 것이고, 당장 당면한 일의 해결은 시급하고 달리 방법을 모르는 이주노동자들은 그 요구에 따른다. 때때로 일처리를 잘못하는 브로커들을 만나면 어트커와 어기처럼 돈만 날리는 기막힌 상황에 처해지기도 한다.
한국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합법체류자-불법체류자 모두 합하여 42만여 명 정도 된다고 한다. 그 중에서 어려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전국에 있는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를 찾아오는 이들은 한 해에 잘해야 5만~6만여 명 정도이지 않을까?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아무런 문제가 없어서 우리들을 찾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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