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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나라로 돌려보내겠다"는 농담 같은 협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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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나라로 돌려보내겠다"는 농담 같은 협박

석원정의 '우리 안의 아시아'<17> 이주노동자가 사업주를 불신하는 이유

밧트라는 28살 된 몽골청년이 있었다. 미등록노동자인데, 한달치의 임금이 체불되어 있었다.

회사에 연락해보았더니 목소리가 꽤 포근하게 들리는 실장이라는 여성이 "체불된 것이 아니라 본인이 몰래 도망간 후 연락이 끊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회사로 오라. 오면 주겠다"고 약속했다. 어투로 보아서는 약속을 지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본인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밧트는 한사코 회사 방문을 거절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을 때, 밧트는 그 회사에서 일할 때 사업주가 '잡아서 몽골에 보내겠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실제로 다른 몽골인들에게 그렇게 한 적이 있는가 하면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밧트는 끝끝내 회사를 찾아가 사업주를 만나기를 거절했다.

그런가 하면 자게라는 몽골 여성은 산업기술연수생으로 취업중인데, 회사에서 자게를 포함하여 다섯 명의 몽골여성을 사실상 해고했다. 정황을 확인해보니 회사가 급격히 상황이 나빠진 것 같았다.

회사에서는 이들 여성들에게 1주일 정도 기숙사에 기거할 것을 지시했고, 그 이후 다른 회사로 옮기게 될 것이라고 고지했다. 산업기술연수생들은 이들의 한국생활을 관리하는 관리업체를 통해 사업장 변경 절차를 밟게 되어 있다.

우리 단체를 찾아온 자게는 눈에 띄게 불안해하고 있었다. 자게의 말에 의하면 그 관리업체는 "한국체류기간이 1년이 남지 않은 사람들은 몽골로 잡아서 보낸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앞으로의 체류기간이 1년이 안된다는 것은 공장에서 일 시킬 기간이 1년이 안 남았다는 뜻이고 그런 노동자는 회사에서 꺼려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다고 관리업체에서 합법체류자격을 가진 사람을 강제로 돌려보낸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아 "그럴 리가 없을 것이다"고 말했지만 잘 믿지 않았다. 이미 그 소문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고 실제로 '자게가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관리업체를 방문했다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신고돼 잡혀간 적이 있다는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뭐라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몹시 불안해 하는 자게에게 일단 회사에서 기숙사에 있으라고 한 날짜까지는 잘 지내보고 만약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연락을 주고받기로 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자게와 몽골여성들은 취업할 다른 회사를 물색하고 있었다.

이주노동자로서 힘들고 상처받는 일들이 얼마나 많겠는가마는 그 중에서도 이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고 또 이들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말이 "본국으로 돌려보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역으로 이주노동자를 채용한 사업주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협박도 그 말이다.

많은 사업주들이 이주노동자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본국으로 돌려보내겠다"는 말을 아주 쉽게 내뱉는다. 그리고 그런 말을 입에 담은 사업주와 어떤 문제로 얘기를 해보면 실제로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업주는 애국애족심이 충만해 "다른 회사에 가면 또 누군가가 피해를 볼 테니까 저런 애는 본국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아주 당당하게 말하기도 한다.

어떤 사업주는 "농담이었다"고 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업주는 기억도 못하고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고 펄쩍 뛰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이든, 농담이든 진담이든 한번 뱉은 "돌려보내겠다"는 말은 합법체류자이든 미등록노동자이든 이주노동자들에게는 가장 치명적인 협박이고 목줄기를 겨누는 칼끝이다. 이런 두려운 협박을 누가 농담으로 들어넘길 수 있을까? 그러기에 단 한번이라도, 스쳐지나가는 것이었다 해도 그런 말을 들은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주를 불신하게 된다.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에게 일을 시키는 사업주의 고충도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만약 채용한 이주노동자가 "노동자로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근태도 불량하다"면 노사간의 계약을 끝내면 된다.

그런데 많은 사업주들이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노동자의 인생을 재단하려 들고 "남의 나라에 와서 일하려면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고 싶어한다. 그리고 나름대로 가르쳐보다가 안된다 싶으면 상품 반품하듯 되돌려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들은 "남의 나라 사람에게 일을 시키려면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자기점검들은 하지 않는다. 이건 도대체 무슨 심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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