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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베컴, 처벌받고 구원되다"

[별을 쏘다⑩] 증오의 신드롬을 극복한 '위대한 킥'

2002년 4월 영국에서 개봉한 <슈팅 라이크 베컴>의 성공은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450만 달러 정도의 제작비가 들어간 이 영화는 영국 내에서만 그 네 배에 가까운 175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으며 전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서 이 영화를 수입했다.

스타가 출연하지 않는 저예산 영화가 이토록 확산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영화의 힘이 있었겠지만 단순히 그런 이유만으로 영화가 배급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린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베컴의 이름값이었다.

스타 베컴에 대한 언론의 '처벌'

영국 런던 로햄턴 연구소의 스포츠발전연구 센터의 소장을 역임한 개리 워널은 최근 데이비드 베컴(David Beckham)에 관한 글을 발표하며 그 제목을 "대중언론의 처벌, 구원 그리고 찬양"으로 잡았다. 스포츠와 미디어의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 온 그의 연구 궤적을 볼 때 자연스럽고도 꽤나 흥미로운 제목이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언론이 왜 숱한 선수들을 제쳐두고 유독 베컴만을 처벌하고 구원하고 또 찬양했을까'라는 점이다.

이에 대해 워널은 베컴에 대한 '처벌'을 널리 알려진 현상적(잘생긴 외모, 페어플레이의 관습을 어긴 1998년 월드컵의 퇴장 사건) 이유가 아닌 "다중적으로 발현되는 대중의 욕망"이라고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베컴에 대한 처벌은 "그가 축구라는 노동계급의 문화가 지닌 방어적인 보수주의를 불안하게 하는 성공한 부자인 동시에 남성성의 관습들에 순응하지 않는 '대범한 스타일'의 소유자라는 이미지로서 '실재'하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간에 그는 축구 선수 중에서는 가장 잘생겼고, 한 번은 사롱(허리에 감는 천·유럽에서는 거세당한 남자를 표현하는 상징으로도 쓰인다)을 입은 적도 있으며, 최고 명문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는데다가(그는 리튼스톤에서 태어났지만, 고향을 배신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인생을 바치고 있다), 팝 가수와 사귀고 있다. 정말 이 모두가 하나같이 교수형 감이다. - 1999년 3월 31일자 영국 주간 타블로이드 <타임아웃> 중

교활한 메트로섹슈얼의 아이콘

베컴은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유명한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 아이콘이다.
▲ 데이비드 베컴 ⓒ로이터=뉴시스

1994년 <인디펜던트> 기고에서 '메트로섹슈얼'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했던 영국의 문화평론가 마크 심슨(Mark Simpson)은 이를 "대도시에 살거나 일하며 가처분 소득이 많아 패션에 민감하고 외모에 관심이 많은 남성으로, 외모 가꾸기를 자연스럽게 생각해 피부와 헤어스타일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며, 쇼핑을 즐긴다"고 정의했다. 또 그는 "메트로섹슈얼들은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GQ>와 같은 패션잡지나 게이 바에서 볼 수 있었지만 1990년대엔 어디서나 볼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그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메트로섹슈얼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입장들이 전개되고 있지만 대개 '찬양' 일색이다. 고리타분하고 진부한 가부장적 마초주의의 해체를 반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뿐일까? 그렇다면 왜 베컴은 처벌받았던 것일까?

메트로섹슈얼에 대한 논의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소비'의 측면이다. '메트로섹슈얼'이란 호명 자체가 '소비 자본주의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베컴이 자신을 남성/여성의 경계에서 자유로운 메트로섹슈얼로 '연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도 구매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췄기 때문이었다.(실제로 '웃자란 양귀비(tall poppy)'라는 베컴에 대한 조롱은 '고액의 연봉을 받는 사람'이란 뜻이다)

문화평론가 서동진 씨는 메트로섹슈얼에 대해 "캔맥주를 훌쩍거리며 프로야구 경기나 즐기고, 헤진 청바지에 싸구려 골프 셔츠를 걸친 채 방바닥을 뒹구는 마초적인 이성애자 남자보다 훨씬 '교활한' 남성"이라고 강조했다.

1998-99 시즌 맨유의 트레블은 베컴의 발끝에서 왔다

여기서 잠깐, 문화적 상징으로서의 베컴이 아닌 '축구선수 베컴'에 대해 언급해보자. 올 시즌 '라이언 긱스-크리스티아누 호날두-웨인 루니'로 이어지는 맨유의 환상적인 스쿼드는 한편의 잘 짜여진 전자오락 게임같은 파괴력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트레블(프리미어리그·FA컵·유러피언 챔피언스리그 우승) 달성에 실패하는 것을 보며 새삼 1998-99 시즌 트레블을 달성한 맨유의 성과에 놀라게 된다.

베컴은 그 믿을 수 없는 시즌 당시 맨유의 주역이었다. 월드컵 퇴장 이후였던 98-99 시즌은 그에게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스포츠 브랜드 CF의 표현대로 '관중석의 모욕적인 야유'를 견뎌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가 공을 잡으면 경기장은 관객들의 야유로 엉망진창이 됐다. 그러나 그해 베컴은 리그 34경기에 출전해 6골을 기록했고, UEFA(유럽축구연맹) MVP에 올랐다.
▲ '언론이 왜 숱한 선수들을 제쳐두고 유독 베컴만을 처벌하고 구원하고 또 찬양했을까.' ⓒ로이터=뉴시스

특히 그는 맨유의 트레블을 결정짓는 마지막 경기였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축구사에 길이 빛날 '누캄프의 기적'을 연출했다. 당시 맨유의 상대는 분데스리가 선두를 질주하고 있던 바이에른 뮌헨이었고 경기장은 FC바르셀로나의 구장인 '누캄푸 스타디움'이었다. 전반 6분 뮌헨 바슬러의 프리킥이 맨유의 골네트를 갈랐고, 전후반 90분 내내 1:0의 스코어에는 변함이 없었다.

기적이 시작된 것은 인저리 타임 3분으로 경기가 마감되나 싶었던 후반 45분, 코너킥을 얻은 베컴의 발끝이었다. 그가 올린 코너킥을 셰링엄이 차 넣어 스코어를 1:1로 만들었다.

동점으로 끝나는가 싶던 경기는 93분 다시 맨유의 코너킥으로 절정을 맞았다. 주인공은 다시 베컴이었다. 그의 코너킥은 솔샤르의 발을 거쳐 다시 골네트를 갈랐다. 결과는 2:1 맨유의 승리. 누캄프에 모인 10만 관중은 열광했다.

외부적 상황들에 의해 평가절하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누가 뭐래도 베컴이 9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전 세계를 지배했던 '축구선수'라는 데 이의를 달기는 힘들 것이다. 베컴의 치밀한 프리킥은 축구가 미학의 영역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한 피구의 드리블, 상대 선수를 단숨에 지워버리는 지우개 같은 지단의 스루패스(through pass), 카메라의 앵글을 벗어나 휘감기는 카를로스의 '무중력 슛'과 함께 영원히 잊지 못할 감동이었다.

씁쓸한 뒷맛 남기는 베컴의 '상투적 선택'

많은 이들은 1975년 생으로 축구인생의 황혼기를 맞은 베컴의 행선지가 어디가 될 것이냐는 데 주시하고 있다. 이런 질문은 그에 대한 끝나지 않은 관심을 상기시키면서도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베컴의 이름으로 가장 최근의 기사를 검색해보니 미국 영화배우 '톰 크루즈'와 호화저택을 둘러싼 자존심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기사가 보인다.

베컴이 미국에서 어떤 시즌을 보낸다 해도 세계적인 메트로섹슈얼 아이콘을 둘러싼 선정적 미디어의 '소용돌이'를 벗어날 순 없어 보인다. 그가 발을 디딘 곳은 축구에 대한 근대적 낭만과 노동자주의의 감수성이 살아 있는 유럽이 아니라 소비와 과시를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치로 삼은 미국이기 때문이다(스페인 레알마드리드에서 활약하던 베컴은 지난 1월 미국프로축구(MLS) LA갤럭시 이적을 결정했으며 오는 8월부터 출전한다-편집자).

메트로섹슈얼 아이콘으로 호명되어 신드롬이 돼 버린 남자, 부와 명예를 얻었지만 정작 근대적 남성들에게 증오의 대상이 된 남자,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게 하는 위대한 킥을 소유했던 남자에게 미국은 너무도 상투적인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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