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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 땅', 0.07%만…친일재산 첫 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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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 땅', 0.07%만…친일재산 첫 환수

친일재산조사위, 친일파 9명 재산 환수결정

친일파의 재산에 대한 국가의 첫 환수 결정이 내려졌다. 하지만 친일파의 후손들이 반발하고 있어 법정분쟁이 불가피할 전망이고, 이들이 물려받은 땅 대부분이 이미 처분된 것으로 알려져 친일재산 환수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위원장 김창국, 친일재산조사위)는 2일 정오 서울 퇴계로에 위치한 친일재산조사위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원위원회를 개최해 위원 9명 전원 찬성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 이완용, 송병준 등 9명의 토지 25만4906㎡(약 7만7000여 평)에 대해 국가귀속결정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공시지가로만 36억 원어치의 땅이고, 추정시가로 계산하면 약 63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첫 환수결정의 대상은 고희경, 권중현, 권태환, 송병준, 송종헌, 이완용, 이병길 ,이재극, 조중응 등 9명이고, 이 중 고희경과 권태환이 후손에게 물려준 재산이 각각 17억2400만 원과 13억300만 원으로 가장 많았다.

▲ ⓒ프레시안

그 많던 땅 팔아 금괴로 바꿨는지, 고려청자로 바꿨는지…


반면 '한일합방'의 주역이었던 이완용의 경우 환수 대상이 된 토지가 1만928㎡(약 3300평)이고 공시지가가 7000만 원에 불과해 위 두 인물과 대조적이다.

이는 이완용이 일제시대 여의도의 1.9배에 달하는 면적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땅을 처분해 시세차익을 남기며 현금으로 재산을 보유해왔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됐다.

친일재산조사위에 따르면 이완용은 1907년 고종의 강제퇴위와 '정미칠조약'의 대가로 10만 원(현시가 금값기준 20억 원)을, 1910년 '한일합병조약'의 대가로 15만 원(30억 원)의 은사공채를 일제로부터 받았다.

이후에도 이완용은 여러 차례 일제로부터 각종 하사금을 받고, 국유 미간지나 국유임야를 무상 대부받아 이를 제3자에게 매각해 차익을 챙기는 방법을 이용해 재산을 축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완용은 특히 군산이나 김제, 부안 일대의 비옥한 논을 집중적으로 매입해 일제 초기 여의도 면적의 약 1.9배에 이르는 1573만㎡(약 475만8300평)의 토지를 보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번 재산환수 대상 토지는 달랑 3300여 평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친일재산조사위는 "이완용은 많은 땅을 일제로부터 사정(1913~1914년) 받은 후 5년 내에 소수의 일본인 대지주에게 거의 대부분(약 98%)을 매각했으며, 이후 토지를 재매입하지 않고 대부분 현금과 예금으로 보유하고 있었다"며 "1925년 조사에 따르면 '경성 최대의 현금부호'라는 명칭에 걸맞게 재산이 최소 300만 원(현시가 약 600억 원) 이상인 것으로 기록돼 있다"고 밝혔다.

친일재산조사위는 "이완용과 이완용 후손은 해방 이후까지 남은 토지는 보유하고 있던 전체 토지의 약 2.5%에 불과하고 이 토지도 해방 이후 1990년대 중반까지 꾸준히 제3자에게 매각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이는 송병준, 권중현, 이재극, 조중응 등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들 대부분이 1920년대에 토지보유량이 급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창국 위원장은 "이들이 땅을 팔아 챙긴 현금이 금괴로 바뀌었는지 고려청자로 바뀌었는지 알아낼 방법이 없다"고 친일재산 조사의 한계를 시인했다.

특별법 시행 이후에도 땅 처분한 친일파 후손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시행 이후에 땅을 처분한 친일파 후손도 있었다. 친일재산조사위에 따르면 이번 귀속결정이 내려진 친일파의 후손 중 송병준의 후손은 송병준의 명의였다가 1983년 국가 명의로 소유권이 보존된 강원도 철원 땅 868평을 1993년 소송을 통해 명의를 되찾아간 뒤, 특별법이 시행된 2005년 12월 29일 다음날인 12월 30일 매각했다.

고희경의 후손은 경기도 연천의 땅 5200여 평(공시지가 약 1억7000만 원)을 특별법 시행 이후인 2006년 8~10월 사이 제3자에게 매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친일재산조사위는 "특별법 시행 이후 제3자에게 처분된 경우에도 모두 조사개시 결정을 거쳐 친일재산으로 인정되면 제3자가 친일재산인 줄 몰랐다고 하더라도 국가귀속결정할 예정"이라며 "다만 특별법 시행 이전에 처분된 경우에는 친일재산임을 몰랐을 경우 보호를 받게 된다"고 밝혔다.

▲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김창국 위원장 .ⓒ프레시안

"'반민특위' 와해 58년 만의 성과"


김창국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1949년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가 와해돼 활동이 좌절된 지 58년 만에 친일청산작업의 복원에 나서 첫 가시적 성과를 거두게 됐다"며 "친일재산의 국가귀속이야말로 100년 전 일본제국주의와 친일반민족행위자들에 의해 유린됐던 우리 민족의 존엄성을 되찾고 친일잔재청산이라는 시대적 소명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친일재산조사위는 친일반민족행위자 452명의 명단을 파악하고 이들 후손에 대한 가계도를 작성해 친일재산을 조사하고 있으며, 지난 4월까지 친일반민족행위자 93명의 토지 1317만㎡(약 398만4000여 평, 공시지가 약 1185억 원)에 대해 임의로 처분할 수 없도록 법원에 보전처분한 뒤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한편 친일재산조사위는 "국가로 귀속된 친일재산은 독립유공자 지원 등 독립운동 관련 사업에 우선적으로 쓰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친일재산조사위의 결정에 불만이 있을 경우 조사위에 행정심판을 청구하거나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어 친일 재산과 관련된 분쟁이 늘어날 전망이다.
▲ 1차로 국가귀속 결정이 내려진 친일재산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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