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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력만이 아니라 문화도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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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력만이 아니라 문화도 들어온다"

석원정의 '우리 안의 아시아'<13>이주노동자 문화강사들

우리 단체는 2004년부터 초등학생들에게 아시아 6개국의 문화체험을 통해 국내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이해를 돕는 문화교육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와 함께 거론되고 있는 '다문화사회'로의 안착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느라고 개발한 프로그램인데 교육적 효과도 높은 프로그램이라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인기도 꽤 있다.

우리 단체 문화교육프로그램의 특징은 대상 국가를 한국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출신국가로 하고 강사는 이주노동자 혹은 이주노동자의 경험을 풍부하게 갖고 있는 이들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주노동자들 중에서 한국어가 어느 정도 되고, 자신들의 나라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가 있고, 문화적 감수성을 갖추고 있고, 이 수업에 대하여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고르고 골라, 나름대로의 체계를 갖춘 강사양성 프로그램을 거친 후, 초등학생들에게 문화강사로서 등장시켰다.

이들은 지금까지 70여 회에 걸쳐 초등학생들에게 한국어로 자기 나라의 문화에 대해 알려주면서 한국의 초등학생들과 직접 대화를 주고받고, 또래의 놀이와 노래도 가르치면서 낯선 외국에 대한 경계심을 풀고 호기심과 상상력을 고취시켜 왔다.
▲ 파키스탄 문화수업 중 한 장면 ⓒ석원정

이렇게 몇 년 동안 수업을 하다 보니 강사들도 서로서로 친근하게 되고, 그 인연으로 다른 활동들을 공유하기도 하면서 7개 국적(몽골-네팔-버마-필리핀-파키스탄-방글라데시-인도네시아)과 다양한 종교(불교-라마교-가톨릭교-이슬람교)와 문화를 가진 이주노동자 문화강사팀이 만들어졌다.

재미있는 것은 이 문화강사들의 면면을 보면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의 다양한 존재 양태를 모두 알 수 있다는 점이다.

강사들의 절반은 미등록노동자들이고 절반은 결혼이주자 혹은 미등록노동자로 생활하다가 결혼한 이들이다.

강사들 중 두 명 외에는 모두 한국에서 이주노동자의 경험이 있고 현재도 노동자들이다.

강사들 중 세 명은 록 밴드 멤버들이고, 다섯 명은 작은 TV방송국의 리포터로 활동하고 있다.

강사들 중 버마인 네 명은 한국정부에 정치적 이유로 인한 난민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강사들 중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 남성 세 명은 한국여성과 결혼했고, 필리핀 여성 두 명과 네팔여성 한 명은 한국남자와 결혼했다.

강사들 중에는 그 외에도 특별한 활동을 하는 이들도 있다.

필리핀 여성 네나는 우리 단체의 문화수업만이 아니라 초등학생인 자녀의 학교에서 필리핀 전통춤도 선보이고 방과후교실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영어선생님이기도 하다.

몽골에서 교육대학을 1등으로 입학해 초등학교 교사가 꿈이었던 아리온톡소는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에서 자국민 상담을 보조하고 있다.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버마인 아웅틴툰은 힘든 노동생활 중에도 성공회대학교의 노동대학을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수시로 한국어를 못하는 버마인들을 대신해 회사도 가주고 병원도 같이 가주고, 때로는 어떤 버마인이 사망했는데 산재라고 보아야 하는지 어떤지를 내게 전화해서 물어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살고 있다.

또 다른 버마인 뚜라는 버마의 민주화를 위한 여러 가지 활동으로 한국의 매스컴에 여러 번 보도됐고 버마민주화에 관심 갖고 있는 한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는 어엿한 민주화운동가이다.

'옷이 그게 뭐야'라는 내 핀잔에 '스타일'을 외치는 멋쟁이 인도네시아인 해리는 홈페이지도 만들고 홈페이지 관리도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강사들은 프로그램을 개발한 우리들보다 더 큰 의의를 이 프로그램에 두면서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조용하면서도 솔직한 성격의 파키스탄인 남성 알리는 한국어가 조금 미숙하지만 자신의 아이가 컸을 때 파키스탄에 대해 알려주겠다며 자기나라의 문화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수줍은 성격의 네팔여성 석띠는 남편의 전폭적인 지지와 우리 단체의 적극적 권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면서 조심조심 참여하고 있다. 그렇지만 조금만 더 지나면 훌륭한 네팔문화강사가 될 것이다.

잠시 몽골로 귀국한 빌랙은 좀 더 풍부하게 몽골의 문화를 한국 초등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추운 겨울에도 몽골 이곳저곳을 다니며 좋은 사진들을 찍어서 우리에게 보내주었다.

상품이 아니라 사람이 들어온다는 말이 있다.

우리들은 이주노동자들을 부족한 노동력을 대신하기 위한 노동인력으로만 들여오고 싶어하고, 적당하게 우리에게 도움을 주다가 제 나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그러나 사람으로서 한국에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의 정부가 그어놓은 울타리를 넘나들면서 이 땅에서 새로운 삶의 모습들을 보여주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들 문화강사들만 해도, 단지 노동자로서 혹은 잠시 한국에 들렀다 가는 사람들로 자신들의 젊은 삶을 한정짓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들이 '돈 벌러 온 사람들'이라는 한 가지 시각으로만 이들을 규정짓는 것과는 달리 한국에서의 생활을 자신의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시기로 여기고 이 시기가 자신들의 미래에 중요한 도약점이 되기를 바라면서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다.

때때로 한국어는 떨어지지만 눈빛과 행동거지를 보면서, 교육자로서, 예술가로서, 운동선수로서, 행정실무자로서 등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음이 짐작되는 사람들이 눈에 뜨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그들의 뛰어난 자질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고, 그들이 자신들의 자질을 드러낼 수 있도록 여건을 제공해주고 싶다는 강한 희망이 생긴다.

생각이야 그렇지만 그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으니 '이주노동자를 우리 사회의 인적자원으로 하자'는 주장만 버릇처럼 외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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