숀 코너리가 주연하고 19세기 서구세계의 영웅들이 총출동(?)하는 영화 <잰틀맨리그>는 지난주 우리나라에서 흥행1위를 기록했지만 한 영화전문지는 이를 ‘쑥스러운 1위’라고 평가했다.
이 영화가 개봉 전부터 TV를 통해 엄청난 홍보전을 펴고 상영관수에서도 2위를 한 한국영화 <바람난 가족>을 훨씬 앞섰지만 실제 관객 수에서는 두 영화가 근소한 차이를 보였고 관객들의 냉정한 입소문을 볼 때 다음 주까지 ‘수성’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여름장사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는 영화계의 오랜 공식이 무너져내리고 있는 것이다.
***할리우드 대작, 대참패**
<사진1-터미네이터3>
올 여름 극장가는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블록버스터’(block burster) 영화들이 흥행에 돌풍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됐으나 막상 지난 7월21일 이후로 단 한 작품도 1주일 이상 흥행1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는 대혼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번 여름 최고의 흥행작으로 예상되던 <터미네이터3>의 경우 공포영화 시리즈물인 <여고괴담3>에 밀려 1주일 만에 1위 자리를 내주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터미네이터3>나 <나쁜 녀석들2>등은 그나마 1주일간 왕좌를 지켜 체면을 지켰지만 비디오게임의 여전사 ‘라라크로포드’를 앞세운 <툼 레이더 2>는 다양한 홍보에도 불구하고 개봉 첫 주에 3위를 한 후 일찌감치 간판을 내려야 했다.
영화계에서는 올 여름 국내시장에서 나타난 이런 현상이 '할리우드 영화의 부진'과 '한국영화의 성장'이라는 두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할리우드 상상력의 빈곤**
먼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할리우드의 부진은 올 여름 미국시장 내에서도 이어진 현상이었다.
<사진2-미녀삼총사2>
올해는 그 어느 해 보다 ‘블록버스터’들의 속편이 많이 개봉됐다. <미녀삼총사2>에서 <나쁜 녀석들2>까지 대부분의 속편영화들이 미국 국내시장에서도 블록버스터의 손익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는 첫 주 흥행수입 6~7천만달러를 넘지 못하고 4천만달러 선에서 ‘맥 빠진 1등’을 한 후 다음 영화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일이 계속됐다.
이들 영화는 홍보단계에서는 ‘더 크고, 더 세졌다’는 식으로 액션이 강화됐음을 선전했지만 관객들은 첫 주에 전편을 떠올리고 기대하며 극장을 찾았다가 진부한 내용에 실망해 다음주에는 다른 속편으로 다시 발길을 돌렸고, 그 다음주에는 또 한차례의 실망 속에 다시 새로운 영화를 찾아 헤매는 일이 계속된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이런 고전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가 개봉된 후 계속 이어져온 단순한 구조와 강한 액션을 중심으로 한 여름철의 물량공세가 이미 한계에 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비슷한 캐릭터와 흡사한 내용으로 만들어지는 액션과 폭파장면 위주의 영화들이 관객들에게는 진부하게 느껴져 더 이상 관객들에 흥미를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할리우드 영화가 비장의 무기처럼 사용해온 컴퓨터그래픽에 대한 식상함도 관객을 등돌리게 만든 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인터넷 입소문'이 흥행 결정**
한 영화전문 기자는 “우리나라는 여기다가 한국영화라는 대체제까지 지니고 있어서 올 여름에는 선택의 폭이 오히려 더 넓었고, 무엇보다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서 요즘에는 누군가가 ‘어제 <터미네이터3>를 보다가 지루해서 그냥 잤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면 바로 다음 주에 흥행이 ‘결단’이 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한 평론가는 “현재의 흥행혼전은 ‘공장’이라고 할 수 있는 할리우드의 대형 스튜디오들이 창조력 없이 안일한 속편 기획에 매달렸다가 국내시장과 수출에도 이상이 생긴 것”이라며 “올해는 미국 영화가 그 어느 해보다 진부했던 여름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영화사 관계자는 “한국에서 <여고괴담3>가 개봉하는 극장수도 적은 상태에서 <터미네이터3>를 1위에서 끌어 내린 것은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라며 “같은 속편이라도 한쪽은 제목만 남기고 전편의 진부함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 점이 관객을 움직인 반면 다른 한쪽은 요란하게 싸우고 돈을 들였지만 같은 캐릭터에 뻔한 내용으로 일관해 ‘재미없다’는 평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전에 <친구>나 <JSA공동경비구역>은 7~8주씩 1위를 차지하기도 했지만 <터미네이터3>나 <나쁜 녀석들2>는 단기 매표수익 때문에 '주말천하' 만 경험하고 간판이 내려지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여름장사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도 이젠 옛말**
<사진3-바람난 가족>
국내 영화계는 지난주에 개봉관 숫자에 밀려 아쉽게 2등을 한 <바람난 가족>이 제작사 ‘명필름’의 결단으로 이번 주말 상영관 수를 1백31개에서 1백51개로 확대하는 것을 주목하고 있다.
‘영화는 좋은데 개봉시기가 좋지 않다’거나 ‘배우의 흥행성이 약하다’는 평을 들었던 이 영화는 현재 평일관객 수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고 주말까지 흥행분위기를 이어간다면, ‘여름 장사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는 극장주나 배급업자들의 오랜 고정관념을 바꿔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상상력'이 '미국의 자본력'을 압도하는 양상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