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은 지난 13일 박유하 세종대 교수(일문학)의 기고문을 실었다. 박 교수가 일본의 한 강연에서 했던 발언이 몇몇 언론을 통해 "위안부 문제, 한국도 책임 있다"는 제목으로 알려지면서 누리꾼들의 맹비난을 받게 되자, 그는 자신의 입장을 좀더 상세히 알리기 위한 글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던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국제적, 국내적으로도 다층적이며 복잡한 지형 위에 존재한다. 식민의 역사와 전후 보상 문제 등 해결되지 못한 역사적 과제, 전쟁의 가해와 피해에 기반해 형성된 감성적 민족주의, 또 이들을 전장의 성 노예로 전락케 한 가부장적 사회질서의 문제 등. 이 문제들은 과거와 현재, 또 한국과 일본 사회를 관통하면서 여전히 '진행형'인 과제들이다.
그런 와중에 국내의 대표적인 '지일파' 지식인인 박 교수는 한국인들이 감성적 민족주의에 입각해 '전쟁 피해자'로서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소재로 위안부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 위험성을 지적한 것이다.
이 같은 박 교수의 주장이 <프레시안>을 통해 소개된 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사이트에 한 일본인이 반론을 올렸다. 이 글의 필자는 자신이 일본에서 10년 이상 위안부 문제에 관계해 왔다고 소개하면서 박 교수를 향해 '화해'를 말할 자격이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한일 간의 국경을 넘어 최대한 피해자 입장에서 사태를 이해하려는 시각이 돋보이는 글이었다.
정대협의 양해를 얻어 리츠코 쇼지 씨의 반론을 소개한다. 이 같은 주장과 반론이 과거의 상처에 새로운 상처를 덧붙이는 방향이 아니라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건강한 담론 형성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편집자>
나는 친구와 함께, 그녀(박유하 교수)의 저서 '화해를 위해'를 읽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놀랐던 말은 '전 위안부'에 대해서 '피해를 강조하려고 하는 피해자의 욕망'이라고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나는 10년 이상 성 피해자 지원활동을 해 왔습니다만, 그녀들이 가장 괴로워하는 것은 자신의 피해를 나타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재판이든, 최근에는 '보호명령 신청'이든, 페이지 1장을 채우는 것도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나요?
나는 그러한 경험에서 그녀들이 우리들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은 전시하에서 성 피해를 당했지만 50년 이상이나 어떤 치료나 따뜻한 사회적 대응도 없이 살아 왔던 것에 비하면 100분의 1도 되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그녀들에게 언제나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또는 자신들의 희망이 사회의 차가운 눈빛으로 매도돼도 그들을 지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으로, 그나마 남은 짧은 여생을 얼마나 격려해 줄 것인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의견으로 나는 정대협의 활동을 대단히 존경하는 마음으로 지켜 봐 왔습니다.
'화해'는 피해자가 납득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서서 '화해'를 제언하는 것은 피해자의 시각으로 보면, 가해자의 측에 서 있는 듯 보입니다. 어디까지나 피해자의 측에 서야지만 '화해'를 제언할 수 있습니다.
박 씨는 '아프리카의 진실 화해 위원회'를 사례로 들고 있지만, 피해자의 감정을 배제한 그 해결방법에 대해서, 피해자가 슬픈 얼굴로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또한 일전에 돌아가신 필리핀의 도마사 살리노그 씨는 '아시아 여성기금'이 제공한 보상금으로는 자신이 여성으로서 당한 권리 침해, 자신에게 범해진 중대한 범죄가 희석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일본정부는 전쟁 중에 일본군이 나의 아버지나 나에게 행한 일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만 한다"고 아시아 여성기금에 보낸 거절의 편지에서 말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여성국제범죄법정에서야 정의가 달성됐다"라고도 말했습니다. 이 편지에서도 이해할 수 있듯이, 그녀가 구하고 있던 것은 돈에 의한 해결이 아니라 저지른 범죄에 합당한, 국가에 의한 정식 사죄와 배상, 그리고 두 번 다시 그 같은 일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약속 표시였습니다.
'아시아 여성기금'에 관계한 사람들은 대단한 사람들이긴 하지만, 피해자 측에서 해결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물며 박 씨처럼 피해자의 괴로움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화해' 같은 말을 말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아베 수상에 대해서 '이미 몇 번이나 사죄했다'고 생각하므로 '위안부 문제'를 문제 삼는 것에 부정적인 듯 쓰여 있습니다. 그렇지만 국가배상도 없이, 더군다나 교과서에 실린 기재도 삭제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세계 사람이 아베 수상의 사죄가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하더라도 할 말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위안부'의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게 본심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일본군에게 외국 여성을 성 노예로 삼았던 부끄러운 행위가 존재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박 씨가 말하는 '화해'는 문제를 애매하게 함으로써 피해자에게 더욱 상처를 입히는 한편, 가해자는 자신들이 저지른 일을 숨김으로써 죄를 인정하지 않고, 민족 차별과 성차별의 체질을 계속 지니고 가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단지 60년 전에 군인이 행한 일에 대한 속죄의 문제만이 아니라, 일본에 살고 있는 우리들 여성의 미래에 있어서도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위안부 문제'라는 것은 결코 타인의 문제가 아닌 일본인의 문제이기도 하며, 이 해결이야말로 '민족화해'의 열쇠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교조주의적인 운동으로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 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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