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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피해지원? 그거 내가 낸 돈입니다"

[한미FTA 뜯어보기 489 : FTA 이후 들녘을 가다<하>]노대통령의 '농업구조조정론'에 답한다

지난달 20일 열린 농업분야 국민과 함께하는 업무보고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노 대통령의 농업에 대한 '철학'을 잘 알 수 있다. 물론 그 이전부터 노 대통령은 한미 FTA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농업에도 충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었다.(관련기사 보기 : 노 대통령 "한미 FTA 통해 농업 구조조정 하자")

하지만 노 대통령은 이날 "지난 1994년 '10년 뒤 쌀 개방한다'고 약속했으면 거기에 맞게 구조조정을 했어야 하는데 하지 않았다"며 농업인들을 질타하며 "농업도 시장 바깥에 놓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이날 "식량안보라는 것이 가능하냐"고 묻기도 했다.

노 대통령의 이같은 농업 관련 발언은 아주 단순한 시장경제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경쟁력이 없으면 포기하는 것이 옳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난 10일 전라북도 부안의 들녘에서 만난 농민들은 노 대통령의 '농업구조조정론'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했다.

김규태 씨, 이현민 씨 등을 비롯한 농민들의 '농업구조조정론'에 대한 반론은 노 대통령처럼 분명하고 직설적인 화법도 아니고 구체적인 통계치를 들이대는 논리적 언어도 아니었지만 농촌 그 현장과 긴 경험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

저 먼 서울 땅에서 "수지가 안 맞으면 때려치우면 된다"고 얘기하는 나라의 지도자에게 그들은 "매번 정부가 하라는 대로 하다가 이 지경이 됐다. 농민들 사이에는 정부가 하라는 작물은 해서는 안 된다는 법칙이 떠돈다"고 반박했다.

부안 농민들과의 만남을 노무현 대통령과의 가상 좌담으로 정리해봤다. 한미FTA 협상 기간, 반대진영의 끝없는 문제제기에 '협상이 타결되고 나면 누구와도 무릎을 맞대고 앉아 토론할 수 있다'고 공언해 온 노 대통령이 농민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 "누구와도 토론할 수 있다"던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FTA 협상 타결 이후 아직까지 토론에 나설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는 농민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프레시안

"'수지 안 맞아도 살려내라 한다'고요? 나라님 말대로 하다 다 망했습니다"

노무현 : 수지 안 맞으면 때려치우면 되는 건데 '수지 안 맞아도 살려내라'는 기본전제가 이 농업에는 깔려 있습니다. 우리가 농업을 과연 방어하고 보호할 수 있을까요? (3월 20일 농업분야 국민과 함께하는 업무보고)

농민 : 농업이 수지가 안 맞는 게 다 농민들이 무능해서 그런 겁니까. 그간 정부의 농업정책이야말로 큰 맥락도 없이 갈지자처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습니다. 정부에서 호박 하라 그래서 호박 하면 너무 많이들 호박을 지어 쫄딱 망하고, 그러고 나면 또 다른 거 하라고 하고…. 그랬다가 다시 우루루 모두 망하고 지금까지 계속 그래 왔습니다.

농민들이 '수지 안 맞아도 살려내라'며 떼쓰는 것처럼 말씀하시는데 오히려 농민들은 '나라에서 하라는 대로 하다 다 망했다'고 합니다.

과연 농업을 방어하고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한 일이 무엇인가요? 단기간의 시각을 넘어 큰 틀에서 우리 농업의 비전이 어디에 있는지 제시해줘야 하지 않나요?

노무현 : 서비스업이나 농업에 한미 FTA로 인한 충격이 있어야 구조조정이 됩니다. 내가 경험해봐서 아는데 충격이 없었다면 하나라도 쥔 것을 안 놓으려고 합니다. (3월 29일 카타르 동포간담회)

농민 : 농업에 대해 경쟁력과 구조조정 얘기를 하시는데 그런 식이면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살아남을 사람은 상위 10%도 안 됩니다. 농업뿐 아니라 모든 산업에서 경쟁력 있는 사람만 살고 나머지는 다 죽으라고 하면 그렇다는 얘깁니다.

노무현 : 제 얘기를 잘못 들으면 '노무현이 이제 보니까 농업을 포기하자고 하더라'고 비약해서 전달할 수도 있지만 그런 뜻은 아닙니다. 농업도 시장 바깥에 놓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3월 20일 농업분야 국민과 함께하는 업무보고)

농민 : 우리 국토에서 '농업의 규모화'나 '농업 CEO 육성'으로 외국의 끝도 안 보인다는 농장을 이길 수 있을까요? 지금보다 몇 배를 넓히고 또 넓혀도 경쟁 자체가 안 되는 싸움입니다. 그런데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계속 몰아붙이는 건 '포기하겠다'는 말밖에 안 됩니다.
▲ "농업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비전을 보여줘야하는 것 아니냐." 김규태 씨(오른쪽)을 포함한 부안 농민들은 노 대통령의 '농업 구조조정론'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프레시안

"돈으로 지원한다 생색 내지 말고 비전을 보여줘야"

노무현 : 지난 10년간 들어간 돈이 119조입니다. 또 삶의 질 개선 5개년 계획으로 들어간 돈이 20조죠. 연간 농업 GDP가 22조입니다. 아무리 우리 농업이 소중하다지만 이렇게 계속 할 수 있습니까? 농림부에서도 계획해서 또 더 예산 편성 할거죠? 염치도 없어요. 이미 119조 지원할 때 다발적 FTA에 대비해서 한 것입니다. (3월 20일 농업분야 국민과 함께하는 업무보고)

농민 : 그렇게 많은 돈이 도대체 다 어디로 갔을까요? 농민들은 전혀 피부로 느끼지를 못하는데요. 물론 빚 내서 '규모화'하는 걸 도와주긴 했지만 그 돈도 지금 다 갚고 있어요. 피해 지원이라고 하는데 그 돈은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다 내가 낸 세금으로 다시 나한테 준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 돈이 원래 내 돈인 겁니다.

중요한 건 돈이 아닙니다. 원래 농림부 예산으로 들어가는 돈으로 농민 지원한다고 생색만 낸다고 농업에 없던 비전이 생기는 것이 아니지요. 당장 젊은이들이 아무도 농촌에서 일하려고 하지 않잖아요. '경쟁력 제고' 말은 좋은데 농업이 장기적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비전을 정부에서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盧 "어디서 피해 보나?"…농민 "어디서 이득을 보나요?"
▲ ⓒ프레시안

노무현
: 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농업과 제약 분야 이외에 어느 분야가 더 어려워지고 실업자가 나온다는 것인지 물어봤지만 아무도 분명한 대답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런 이득도 없습니다. 오히려 소신과 양심을 가지고 정치적 손해를 무릅쓰고 내린 결단입니다. (4월 2일 특별대국민담화)

FTA반대 진영에는 전략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이 있고 이념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4월 2일 하인츠 피셔 오스트리아 대통령과의 합동기자회견)

농민 : 나는 농사만 짓고 산 농민이라 전략이나 이념 같은 건 잘 모릅니다. 그냥 생존의 문제 때문에 걱정하는 거지요. 그래도 정부가 하는 말 가운데 거짓말이 많다는 건 신문만 봐도 알겠던데요. FTA로 일반 소비자들이 이득을 본다고 하던데 도대체 누가 이득을 본다는 건지 잘 따져봐야 합니다.

자동차에서 설사 이득이 있다 하더라도 그 이익은 다 차 파는 사람한테 가는 거지 우리 같은 사람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농산물 싸게 들어오면 농민은 다 죽는 건 당연한 거고, 소비자들보다는 중간 유통거래상이 이득을 보겠지요. 결국 장사치들만 돈을 벌고 열심히 일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한테는 별반 이득이 없습니다.

대통령은 '어디서 피해를 보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저는 오히려 어디서 국민들이 이득을 본다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이나 부안이나 통치자가 없는 건 마찬가지"

노무현 : 어민 700명의 피해로 어떻게 FTA로 어민들의 피해가 엄청나다는 식으로 보고할 수 있습니까. (4월 3일 고위급 FTA 워크샵)

농민 : 너무하십니다. 농어민은 국민이 아닙니까. 국민 없이 대한민국이 유지가 되나요? 게다가 농촌은 이미 다들 수지가 안 맞아서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은 농사 다 때려치우고 도시로 일하러 나갑니다.

우리 마을만 해도 몇 집이나 읍내로 농사 대신 딴 일 하러 나가요. 나이 70~80세 된 노인네들이 자기 농사는 접고 일당 벌어 먹고 살아야겠다고 감자 캐러 나옵니다. 이런 사람들을 더 벼랑 끝으로 내몰아야 된다는 것이 정부가 할 수 있는 말인가요?

부안이나 대한민국이나 똑같습니다. 군수의 선거법 위반 재판으로 몇 년째 군수 없이 지내는 부안이나 나라 전체를 고민하지 않는 대통령이 있는 대한민국이나 통치자가 없는 건 똑같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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