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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스포츠 스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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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스포츠 스타'가 아니다"

[별을 쏘다⑤] 하인스 워드, 우리가 열광한 흑인 혼혈 스타

스포츠 스타를 말하는 이 지면에서, 어쩌면 나는 정작 스포츠 얘기는 못할지도 모르겠다.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스포츠광이라고는 하지만, 솔직히 난 미식축구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미식축구를 접할 수 있는 통로라고는 <제리 맥과이어>를 비롯한 미국 영화 몇 편이 고작이었다.

미식축구 모르는 한국에서 '영웅'이 된 워드

나뿐만 아니라, 대개의 한국 사람들이 거의 그럴 것이다. 미식축구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다면 터치다운 같은 룰이 있고 공 모양이 럭비공하고 비슷하다는 정도가 고작일 테니 말이다. 또, 좀 안다고 하는 경우에도 쿼터백이나 와이드 리시버 같은 포지션 정도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하인스 워드라는 한국계 미국인 미식축구 스타가 우리 사회를 흔들었다는 것만큼은 꼭 짚고 넘어가야겠다. NFL(미국 미식축구 리그) 수퍼볼 MVP를 수상한 그가 한국에 왔을 때 공항에는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 많은 취재진들과 지미집이라는 무인 크레인 카메라가 동원됐다. 또 그는 체류기간 동안에 청와대를 예방했는가 하면 생방송 중인 <뉴스데스크> 스튜디오에 출연하기도 했다.

열풍이라는 말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이 열풍,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는 미식축구에 대해서 거의 아무 것도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를 스타로 취급하고 도를 넘어서 영웅으로 대접했다. 실제로 워드가 귀국하던 공항에는 한 혼혈 소녀가 'You're my hero'라는 문구를 들고 나와 환영했다고 한다. 어쨌든 논리적으로는 전혀 이해가 불가능한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미국이라서', '우리 민족이라서'…2% 부족한 설명
▲ 지난해 2월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제40회 미 프로풋볼(NFL) 왕중왕전인 슈퍼볼에서 우승하고 MVP를 차지한 하인스 워드가 한손에 아들을 안고 빈스 롬바르디컵을 높이 치켜세웠다. ⓒ로이터=뉴시스

많은 사람들은 그가 미국에서 성공했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영웅 취급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나도 동의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스포츠 민족주의 때문에 워드가 영웅시되었다고도 지적한다. 여기에 대해서도 나는 동의한다. '미국'에서 성공하고 성공 못하고의 차이는 정말 중요하다. 나와 같은 '한국인'이 세계의 중심부에서 주목 받는 스타로 우뚝 섰으니 어찌 자랑스럽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하인스 워드에 대해서 할 말이 참으로 많다. 만약 그가 중국에서 성공한 사람이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VJ특공대> 정도에나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난 워드에 대해서 좀 더 복잡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물론, 미국 문제니 민족주의 문제니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복잡한 생각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현상에는 우리가 그동안 보아 왔던 스포츠 스타들과는 뭔가 다른 점이 있다. 여태껏 우리에게 민족주의적 감정을 자극한 스포츠 스타들은 무궁무진할 정도로 많았다. 단적으로 우리는 미식축구를 모른다. 또, 곰곰이 생각해보면, (히딩크를 제외하고) 우리는 우리와 피부색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 이토록 신망해본 적도 없다. 게다가 워드는 미디어와 사회여론이 꺼리는 '흑인'에다 '혼혈'이기까지 하다. 그렇기에 그에게서 민족주의적 일체감 따위라는 건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만 보자면 워드는 이 지면에 더더욱 어울리지 않는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사실상 그가 우리의 문화와 일상에 깊은 인상을 심어준 것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세월이 더 지나서, 그를 회상하더라도 우리에게는 그를 추억할 거리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의 플레이에 어떤 테크닉(예컨대 지성턴, 니킥, 트리플 악셀 같은 것들)이 있는지 전혀 모른다. 우리가 워드에게 열광한 것은 매우 이상한 일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일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워드를 영웅으로 여긴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혼혈인 영웅'이 필요했다
▲ 지난해 5월 한국대표팀 평가전 경기에 응원을 위해 한국에 온 하인스 워드. ⓒ뉴시스

실제로 워드에게 열광했던 것은 일반적인 대중들이 아니라 미디어였다. 예부터 영웅은 하늘이 내린다고 했다. 때를 타고 난다는 것이다. 나는 워드에 대한 미디어의 열광은 다분히 사회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단적으로 말해, 그는 주한미군인 흑인과 한국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이다. 그가 미국에서 성공한 한국계 인물이라는 점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혼혈인이라는 문제, 즉 한국 사회의 인종적 소수자라는 문제 역시 절대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하늘이 그를 영웅으로 만들었던 것은(정확하게는 미디어가 그를 스타로 만들었던 것은), 그가 '혼혈인'이기 때문이었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약 2.5%, 거의 120만 명에 달하는 소수 종족(ethnicity)이 살아가고 있다. 그들 중에는 우리와 피부색이 다른 사람도 있고, 혈통이 다른 사람, 출생지가 다른 사람 등 여러 사람들이 뒤섞여 있다. 물론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낮은 수치이기는 하지만, 바야흐로 우리는 다인종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이들 인종적 소수자들은 갈수록 늘어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에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워드는 미디어를 비롯한 주류 사회가 정말 절실히 필요로 했던 '영웅'이 아니었을까. 물론 소수 인종에 대한 거부감이 없지 않겠지만(가령 KBS <미녀들의 수다>에 흑인은 서너 명을 넘지 않는다), 어쨌든 우리 사회는 다인종주의를 표방하지 않고서는 제 기능을 못할 수준에까지 이르고 있다. 따라서 워드의 출현은 그러한 사회를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시의적절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중요한 상징으로서 말이다.

이런 '열풍'은 계속돼야 한다

이런 저런 스포츠 스타들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워드는 분명 스포츠를 넘어서는 스타라고 할 수 있다. 그 어떤 인물도 워드처럼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게 만든 적은 없다. 워드의 방한을 계기로 국회와 정부는 혼혈인에 대해 대학입학 할당제 등 다양한 입법을 추진한 바 있었다(물론 워드 열풍이 가라앉자 거의 모두 도루묵이 되고 말았다). 그동안 혼혈인을 비롯한 인종적 소수자의 문제는 언제나 은폐의 대상이었다. 심지어 차별과 핍박의 대상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워드의 출현으로 인해 이 모든 문제들이 미디어와 행정 등에서 공론화되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워드라는 인물은 단순한 스포츠 스타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몇 백 년에 걸쳐 유지해 왔던 습관을 뿌리 채 흔드는 중요한 징후(symptom)이자 계기라 할 수 있다. 물론 다수의 혼혈인들은 워드 열풍에 대해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현재에도 국제결혼을 통해 수십만 명의 코시안(코리안+아시안)들이 태어나고 있다. 이들은 우리 모두가 '우리'의 일부로서 보듬어야 할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워드의 출현을 통해 이들에 대한 사회적 처우가 크게 개선됐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워드 열풍과 같은 증상(symptom)은 계속 나타나야 한다. 증상이 자꾸 쌓여야만 이것이 신드롬(증후군)이라는 걸 알 수 있고,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인종적/종족적 소수자들을 더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워드 이후, 또 다른 소수 인종 스포츠 스타의 출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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