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인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3불 정책에 바탕한 현행 대학입시제도를 비판했다."
KBS,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이 9일과 10일 보도한 내용이다. 국책연구기관이 현 정부의 3불 정책(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금지)을 비판했다면 당연히 '뉴스'가 된다. 하지만 이런 보도는 이들 매체가 344쪽에 달하는 KEDI의 연구보고서에서 특정문장만을 뽑아 재구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연히 KEDI 연구보고서의 내용 및 결론과 배치된다.
"대학별 고사, 최소화하자는 내용이 3불정책 반대 주장인가?"
이들 매체의 보도가 나온 직후, 전교조 부설 기관인 참교육연구소는 해당 보고서를 구해 검토했다. 문제의 보고서는 KEDI가 지난해 12월 발행한 '고교-대학 연계를 위한 대입정책 연구보고서'다.
보고서를 검토한 결과가 전교조 기관지인 <교육희망> 10일자 인터넷판에 실렸다. <교육희망>에 따르면 이 보고서에서 KEDI 연구진이 '3불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한 내용은 단 한 군데도 없다.
실제로 이 보고서는 결론 부분(235쪽)에서 "대학의 입학사정은 '가르친 자가 평가한다'는 평가의 원칙에 따라서 고교 내신 성적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대학별 고사는 최소화해야 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KEDI가 보고서를 통해 본고사를 금지한 3불 정책을 비판했다"는 언론 보도와 반대의 내용이다.
권재원 참교육연구소 연구기획실장은 <교육희망>과의 인터뷰에서 "이 보고서의 핵심은 대학교육은 고등학교 교육과 연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학이 고등학교 교육과 무관하게 자의적인 전형을 실시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권 실장은 "일부 언론이 주목한 3불 정책 관련 나머지 내용은 저자의 주장이 아니라 단지 여론조사 결과일 뿐"이라면서 "그 설문내용도 대학별 고사의 필요성을 물어봤을 뿐인데 3불 정책 폐지와 직접 연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KEDI "정정보도 안 하면, 언론중재위 제소하겠다"
논란의 당사자인 KEDI도 나섰다. 보도가 나간 직후, 정정보도를 요청하며 KEDI는 언론 보도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정부가 3불 정책 고수를 연일 강조하고 있는 때 국책기관이 다른 목소리를 내 적잖은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는 보도에 대해 KEDI는 "전혀 근거없는 보도"라며 "보고서의 어디에서도 3불 정책 폐지를 언급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또 "입시에서 대학의 자율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이 보고서는 주장했다"라는 보도에 대해서도 KEDI는 "보고서의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내용"이라며 "연구자의 핵심주장은 대학별 고사 대신 고등학교에서 생산한 다양한 전형요소를 중심으로 공정하고 종합적인 전형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입시에서 대학의 자율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이 보고서는 주장했다'고 한 대목은 여론조사결과는 물론 연구자의 결론과도 배치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국책기관 한국교육개발원, 정부 '대입 정책' 정면 비판 보고서 내" 등의 제목으로 보도한 것에 대해서도 KEDI는 "연구보고서의 내용 및 취지와 반대되는 제목"이라며 "이 연구는 고교의 교육과정과 대학의 모집단위별 연계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두고 있으므로 내신비중 강화를 통해 고교교육의 정상화를 추구하는 정부의 2008년 대입정책과 기본목표가 일치한다"고 밝혔다.
정정보도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KEDI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는 한편 민ㆍ형사상 책임도 물을 방침이다.
한편 보고서 내용과 전혀 다른 보도가 나간 이유에 대해 KEDI 관계자는 "한국 언론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라며 "기자들이 보고서를 제대로 읽지 않은 상태에서 데스크의 주문에 따라 기사를 작성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