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한 아나운서의 이유있는 'FTA 반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한 아나운서의 이유있는 'FTA 반대'"

[한미FTA 뜯어보기 433 : 기자의 눈]"그들만의 철없는 자신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열린 서울 남산의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밤샘 취재를 한 뒤 귀가해 밀린 잠을 자다 3일 새벽 2시쯤 깼다. 라디오를 틀었다. <이주연의 FM영화음악>이 방송 중이었다.

비몽사몽간에 라디오를 듣다가 귀가 번쩍 뜨였다. '감기'에 걸렸다는 이 아나운서의 낮은 톤의 나레이션이 몽롱한 머리 속을 후벼파고 들어왔다.

"지금 세계 영화계가 멕시코를 주목하고 있다. <판의 미로>를 만든 '기예르모 델 토로', <바벨>을 만든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만든 '알폰소 쿠아론.' 평소 남다른 친분을 과시하며 '쓰리 아미고'(Three Amigos)란 별칭까지 얻은 이들 멕시코 출신 세 감독은 저마다 비상한 재주로 헐리웃 영화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있다. 바야흐로 멕시코 영화의 전성기가 도래한 것처럼 보였다.

세계 영화계가 멕시코를 주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체결된 직후에도 멕시코 영화계는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협정 체결 전 한 해 100여 편을 제작하던 멕시코가 협정 체결 이듬해 고작 4편을 제작했기 때문이다. 협정 체결 이전 극장 상영작의 50% 이상을 멕시코 영화와 중남미 영화를 상영하도록 규정한 스크린쿼터가 자유무역협정 체결과 함께 사라졌던 것이 원인이었다.

물론 그 후 10년 동안 상황은 조금 나아졌다. 하지만 정말 조금만 나아졌다. 지난해 멕시코에서 만든 영화 60편 중 극장에 걸린 영화는 30편에 불과했다. 힘들게 영화를 만들어놓고도 헐리웃 영화에 밀려 아예 상영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멕시코 영화들.

이제는 헐리웃 영화 감독이 된 '쓰리 아미고'들조차 멕시코 정부에게 "제발 자국 영화를 보살피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이것이 멕시코 감독의 전성기에 가려진 멕시코 영화의 우울한 현실이다.

한미FTA 협상이 타결됐다. 정부는 이미 지난해 146일에서 73일로 반토막 난 스크린쿼터를 '현행유보', 즉 다시는 원상회복할 생각도 안겠다며 마지막 남은 권리마저 스스로 포기했다.

대통령은 "그렇게 자신이 없느냐"며 영화인들에게 핀잔을 주지만 세계 역사상 자신감만으로 헐리웃 영화를 이겨낸 나라는 없다. 정치는 자신감으로 하는지 몰라도 문화는 자존심으로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2007년 4월2일 선진경제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하겠다고 선진문화로 가는 발판을 미련없이 포기해버린 우리 정부에게 영화는 스스로 꺾어버린 자존심. 그래도 얻은 게 더 많다고 좋아하는 그들만의 철없는 자신감이다."

'영화는 ○○이다'라는 형식의 코너였다. 주로 "영화는 '추억'이다", "영화는 '휴식'이다" 등의 정의가 내려졌지만, 이날 영화는 '그들만의 철없는 자신감'이었다.

▲ '도태될' 집단. 영화인들과 농민들이 한미FTA 반대 광고를 만들었으나, 온전히 전파를 타지도 못했다. ⓒ영화인대책위.

'적자생존'의 시대…숫자에 가려져 '도태'되는 인생들


1일 한 노동자가 분신을 했고, 3일 한 농민이 총기사고를 일으켰다. '적자생존'의 시대가 도래했다. 아니, 이미 도래해 있다. 적자생존(存, survival of the fittest)이란 모두가 바뀐 환경에 맞게 적응하는 것이 아니고, 바뀐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자만이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자는 도태돼 결과적으로는 사회 전체가 진화해나간다는 이론이다.

한미FTA는 이 '적자생존'을 더 심화시킬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도태'를 목격해 왔다.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와 화물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WTO 반대 시위를 하던 농민이 두 명이나 경찰에 '맞아' 죽었다. 이들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다. 과거 민주화 투쟁에서 많은 이들이 숨져갔지만,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경제적 소외계층이 숨져가고 있다.

아직 한미FTA의 결과가 어떠하리라고 뚜려한 그림으로 예측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자유주의적 무역 질서는 이 '적자생존'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에 경쟁력이 없는 분야는 분명히 도태되고 만다. 대한민국의 전체적 부는 한미FTA로 인해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약자들이 도태돼 사라진 세상에서의 부는 누구를 위한 부인가. 특히 '양극화' 시대에서 이 문제에 대한 물음은 더 각별하다.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경제학적 언술 뒤에는 저마다 소중한 저마다의 '인생'들이 가려져 있다.

기자가 보기에 한국 사람들은 착하다. 자신이 아무리 찢어지게 가난해도 나라가 잘 살면 나도 잘 사는 줄 안다. 홍세화 선생의 표현을 빌자면 '존재의 배반'이다. 그리고 정부는 광개토대왕이 등장하는, 국민의 세금 수십억 원을 들인 광고로 이 '없는 이'들을 현혹하고 있다.

정부는 한미FTA로 피해를 입는 부문에 대해 직접 지원을 하겠다고 한다. 그 재원은 한미FTA 이후 늘어날 소득세와 법인세로 충당하겠다고 한다. 마치 '세금'이 정부가 버는 돈인 것처럼 생색내고 있는 관료들과, 죽어가는 사람들 앞에서 '어디 따질 테면 따져보라'며 벼르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밤중에 그 아나운서가 꼬집었던 '철'에 대한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철.' 국어사전엔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힘"이라고 나와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몇몇 자유시장주의적 통상관료들에게 한미FTA가 '그들만의 철없는 자신감'이 아니냐고 묻고 싶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