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9일 국민은행은 SK글로벌에 ‘대한 채권액 4천6백87억원 모두를 채권현금매입(캐시바이아웃, CBO)방식으로 정리하고 출자전환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CBO를 신청하면서 채권액의 30%만 현금으로 변제받고 나머지는 모두 탕감해 줘야 하기 때문에 국민은행은 당장 3천2백80억원의 손실을 보았다.
국민은행은 2000년 말 하이닉스 반도체에 대해 금융권이 지원을 할 때도 신규자금 지원에 참여하지 않고 발을 뺐다. 당시 국민은행은 채권액의 70%에 해당되는 4천3백억원 가량의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국민은행이 당시에 큰 손해를 보면서 발을 뺀 하이닉스는 결국 관련금융기관에 끔찍한 짐이 되고 있다.
이같은 국민은행의 선택은 ‘무수익 자산을 최소화하고 불확실성은 철저히 배제하라’는 컨설팅업체 ‘맥킨지’의 조언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에 대한 '실용서'**
최근에 출간된 도미니크 바튼, 로베르토 뉴웰, 그레고리 윌슨의 공저 <위험한 시장(Dangerous Markets)>은 맥킨지의 전략이 실제 금융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힘을 발휘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책 사진>
이 책은 어떻게 금융위기를 기회로 활용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지를 맥킨지의 한국사무소 소장인 도미니크 바튼과 그의 동료들이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직접 경험한 사례를 중심으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도미니크 바튼은 IMF위기후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으로부터 국가컨설팅을 비롯해 국민은행, 두산 등의 컨설팅을 맡았던 까닭에 누구보다 한국경제에 밝은 인물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논문이나 보고서가 아니라 접근법, 사례연구, 현실적인 해결방안, 일선경험 등 경제인과 정책담당자들이 알고 싶었던 내용들을 담은 ‘실용서’라고 볼 수 있다.
그런 만큼 기존 경제교과서의 통념을 여지없이 깨트리고 있다. 예를 들면 기존 통념과 학설로 볼 때 금융위기는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고 생존전략을 미리 짜는 것도 불가능하다. 금융위기라는 것은 특수한 경제, 문화, 정치 구조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러나 이 책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경험에 비춰볼 때 위기의 징조들은 나라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상당한 공통점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예측가능하다는 것이 필자들의 주장이다.
저자들은 금융위기의 발생, 진행, 종말에서 일정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고 따라서 위기는 예측가능하고 예방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피해 규모도 추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전략적 선택을 통해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에 따라 금융 위기의 실체, 대비책, 해결 방안까지 자세하고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다.
***현대, 주택은행 등 국내기업 사례로 증명**
이 책은 특히 우리에게 낯익은 국내기업들의 다양한 사례들을 예로 들어 이를 증명하고 있어 흥미를 돋군다. 이 책의 요지중 하나는 "CEO에게 위기는 곧 기회"라는 것이다. 요컨대 위기를 기회를 전환시킬 줄 아는 CEO가 유능한 CEO라는 주장이다.
IMF 당시 현대는 금융위기 초기에 부실기업으로 전락한 경쟁기업인 기아자동차를 매입해 자동차 시장의 80%를 차지할 수 있었고, 주택은행은 외환위기 이후 공격적 전략을 추구한 덕분에 한국내 선도은행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두산그룹과 LG의 사례도 금융위기가 타성에 젖어 있던 회사를 탄탄한 기업을 만드는 전화위복이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특히 LG가 금융회사들의 기법을 벤치마킹 해 회사내부의 회전율이 떨어지는 자산을 관리하는 별도 법인을 설립한 후 이를 처분하는 등의 노력으로 6개월 만에 4억달러 규모의 현금을 확보한 것은 위기극복의 좋은 사례라고 설명하고 있다.
***“부실은 곪기 전에 빨리 털어내라”**
저자들은 “금융위기라는 ‘용융과정’을 거치면서 부실자산 등 ‘경제의 불순물’이 제거되기 때문에 기과 국가의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고, 살아남은 금융시스템은 전 세계시장에서 높은 경쟁력을 자랑할 수 있다”며 금융위기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비판하고 이를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비즈니스 리더와 정책 담당자가 확고한 신념, 노하우, 과감함 등으로 무장하고 정력을 불사르며 대비·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금융위기는 한 차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브라질의 경우처럼 1994년과 1999년에 연거푸 찾아와 나라경제를 완전히 부수기도 한다.
현재 외국계 신용평가사들은 IMF 이후에도 줄곧 우리나라의 가계대출과 신용카드 문제가 다시 한번 한국경제를 위기 속으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우리 경제를 강타할 금융위기가 또다시 찾아오지 말라는 법이 없는 현실에서 이 책은 소중한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들이 말하는 가장 핵심적인 충고는 “부실은 곪기 전에 빨리 털어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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