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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야구의 로망, 불혹의 '타자' 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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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야구의 로망, 불혹의 '타자' 호세

[별을 쏘다③] 그의 미덕은 '객관적 수치'가 아니다

도밍고 펠릭스 호세. 한국에서의 별명은 '검은 갈매기'. 1965년 도미니카 출생으로 키 186cm에 몸무게 100kg. 1999년과 2001년, 2006년 시즌에 롯데자이언츠에서 활약했으며, 2007년에도 재개약으로 활약 예정. 미국 프로야구 오클랜드 어슬레틱스(88~90),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90~92), 캔자스시티 로얄즈(93~95), 뉴욕 양키스(2000),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02~03)에서 뛴 바 있으며, 2000년 도미니칸 윈터리그 MVP 및 타격왕 수상. 한국에서는 '빈볼 시비'와 '방망이 투척사건'으로 팬들에게 각인됨.

펠릭스 호세의 대략의 약력이다. 10년 남짓한 한국프로야구 용병사를 샅샅이 조사하지 않더라도 호세가 '톱클래스'의 용병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2001년 삼성 배영수와의 빈볼시비로 퇴장당한 이후 2006년 다시 롯데와 계약하기까지, 매년 바닥의 성적을 유지하던 롯데자이언츠를 응원한 부산 야구팬들의 가슴 한 구석에는 항상 호세가 자리잡고 있었다. 단 2시즌 만에 '구도(球都)' 야구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호세. 그의 활약(?)과 복귀가 한국프로야구와 용병사, 그리고 '부산과 롯데'라는 역사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용병, 자본과 국경의 경계

용병 혹은 외국인 선수의 가치는 어떻게 따질 수 있을까. 용병의 가치를 매기는 척도로는 대략 2가지 정도를 핵심적인 문제로 꼽을 수 있다. 첫째는 자본의 논리에서의 가치다. 구단과 감독, 스카우터들은 같은 값이면 성적이 좋거나 '피지컬(physical)'이 좋은 선수를, 비슷한 실력이면 가급적 싼 선수를 데려오게 마련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가격 대비 성능'의 문제. 프로스포츠에서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덕목(?)이다.

두 번째 척도는 '적응' 문제. 선수 개인의 이질적인 문화에 대한 적응이나 한국 프로야구가 가진 형식과 내용 상의 특징(스트라이크존, 투수와 타자들의 성향 등)에 대한 적응은 기본이거니와 단일민족국가임을 자랑스러워 해야 한다고 배우며 자라 왔던 선수와 팬들. 튀는 건 좋지 않고 과묵하게 자기 일 열심히 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한국 문화에 대한 적응 문제도 고려 대상이다. '국경 밖에서 오는' 용병들에게는 사실 이런 문제로 인한 갈등도 작지 않다.

이런 기준으로만 본다면 두산의 타이론 우즈나 한화의 데이비스 등은 성적 면에서나 혹은 한국 야구에 대한 적응과 꾸준함의 면에서 '톱클래스'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호세는 객관적인 수치만으로도 특별한 선수임에 분명하다.

2001년 시즌 호세는 117게임에 나와서(배영수 선수와의 빈볼시비가 일면서 시즌 마지막을 징계로 출전하지 못했다) 3할3푼5리의 타율에 36홈런, 장타율 0.695와 출루율 0.503을 기록했다. 같은 시즌 삼성의 이승엽이 127게임에 나와 2할7푼6리의 타율에 39홈런을 기록했고, 두산의 타이론 우즈가 118게임에서 34홈런에 2할9푼1리의 타율을 기록했다. 이뿐이랴. 나이 40이 넘어선 이후 '한 물 갔다'고 평가받으며 한국으로 복귀했던 지난해, 호세는 자신의 피지컬을 의심했던 사람들에게 시위라도 하듯이 홈런 2위(22개), 타점 4위(78개), 장타율 4위(.487), 타율 22위(.277)이라는 준수한 성적을 올렸다.

'튀지 않는 선수'의 미덕을 과감히 깨버린 '호세의 미덕'
▲ 펠릭스 호세 ⓒ뉴시스

하지만 호세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가치는 객관적인 데이터에서 나오는 것만은 아니다. 무법자적인 이미지와 '유세윤(KBS <개그콘서트> 개그맨)삘'은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건방진 카리스마, 경기장 내외에서의 액션(?), 그리고 부산 야구팬들의 '잘 나갔던 과거'에 대한 로망 등이 합쳐진 결과물이 바로 펠릭스 호세다. 인상깊었던 몇 가지 장면을 돌이켜보자.

장면 하나. 2006년 롯데와 계약하며 한국으로 돌아온 호세의 인터뷰. 인터넷을 통해 인터뷰 기사를 본 기억이 나는데, 거기서 호세는 매우 충격적인(?) 발언을 한다. '1999년 골든글러브 수상 등 한국에서 많은 상을 탔는데, 트로피는 어떻게 보관하고 있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호세는 "부산의 자주 가던 술집에 다 줘버렸다. 지금은 하나도 없다."라고 대답했다. 예의 그 삐딱한 자세의 사진과 함께 실린 인터뷰 기사. '다 늙은게…', '싸가지 없네…' 등의 댓글이 달렸다.

장면 둘. 99년 플레이오프 7차전 '방망이 투척사건'. 2대 0으로 뒤지던 상황에서 호세는 1점 홈런을 치고, 3루 베이스를 도는 호세를 향해 물병 등이 날라오더니 결국 삶은 계란 하나가 호세의 사타구니를 가격하게 되고, 흥분한 호세는 결국 방망이를 관중석에 투척하고야 만다. 당시 TV를 통해 이 장면을 봤는데, 그물 위로 방망이를 힘껏 던지는 호세의 흥분한 표정이 너무나 리얼했다.

장면 셋. 배영수와의 빈볼시비와 신승현과의 난투극. 그뿐만 아니라 작년에는 판정에 불만을 품고 심판에게 욕하고 퇴장당하는 등 호세는 거침없는 언사와 액션으로 야구에 대한 볼거리와 말할거리를 만들어냈다.

여기서 호세는 언론과 팬들이 야구에 대해 '말할거리'를 제공해주었다는 점에 주목하자. 첼시의 무리뉴 감독과 맨유의 퍼거슨 감독의 논쟁, 전지훈련 기간 동료인 리세를 골프채로 폭행한 사건을 골세리머니로 승화시킨 리버풀의 벨라미, AC밀란의 카카가 호나우디뉴를 자기팀으로 오도록 설득하겠다며 나선 인터뷰…. 외국의 프로스포츠는 '그들 스스로가' 끊임없이 논란거리, 기삿거리를 만들며 대중들의 관심을 자극하기 위해 노력한다. 또 이런 과정을 통해 프로스포츠에 대한 팬들의 호응을 확대한다.

하지만 한국은 이런 측면에서의 '팬서비스'가 부족하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류의 짦은 인터뷰. 묵묵하게, 튀지않게 운동하는 것이 최고의 미덕으로 여겨지는 전통. 호세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야구팬들과 대중들의 관심을 야구로 모아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선수다.

마케팅 용병, 마스코트 용병

며칠 전 호세를 '마케팅 용병'으로 표현한 기사가 나왔다. 자본이 지배하는 프로스포츠에서, 더군다나 국내의 프랜차이즈 스타도 아닌 '국경 너머의 타자'를 두고 '마케팅 용병'이니 '마스코트'니 얘기되는 것 자체가 바로 호세의 특별한 가치를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물론 그 기사대로 '나이를 먹어가며 하체로 내려간 부상 부위' 때문에 그는 제대로 성적을 내지 못할 수도 있다. 혹은 기사 표현대로 '대타 요원', '은퇴'라는 말이 더 적합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 그대로라면, 롯데는 이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서 호세를 데려왔다는 것 아닌가? 호세를 통해 롯데와 부산 야구팬들은 무엇을 원하나.

부산의 롯데 팬들의 로망은 "가을에도 야구하자"라는 구호에 모두 녹아 있다. 역사를 돌이켜보자. 84년과 92년 롯데자이언츠는 두 번의 우승을 경험한다. 1984년, 롯데는 최동원의 거짓말 같은 4승1패(7전 경기)와 유두열의 역전 쓰리런(!) 홈런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게 된다. 그 뒤 1989년 리그 꼴찌로 바닥을 친 후 1992년 롯데는 3위를 차지,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그 이후 삼성과 해태, 빙그레를 차례로 꺾으며 롯데는 다시 한 번 거짓말같은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군다.

사실 "가을에도 야구하자"라는 말에는 부산 야구팬들의 푸념과 희망이 한꺼번에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1992년 이후 우승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푸념, 전준호 등 주요 선수들의 트레이드와 박정태 등 프랜차이즈 스타들의 은퇴와 함께 '소총', '근성'으로 표현되던 롯데자이언츠 특유의 야구가 사라진 것에 대한 불만, 그러나 한편으로 플레이오프에만 진출하면 우승할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 이 모든 것이 "가을에도 야구하자"는 외침에 녹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롯데는 이러한 로망을 실현하기 위한 마침표로 호세를 선택했다. 어쩌면 롯데와 부산은 그의 실력보다는 사람들의 시선을 야구장으로 모을 수 있는 독특한 카리스마와 '한 건' 터트릴 것 같은 '포스' 때문에 그와 재계약 했는지도 모른다.

'타자(他者)'에서 '마스코트'로…그가 가진 그 '무엇'

이렇게 가을야구와 우승이라는 롯데 팬들의 로망은 40대의 '타자' 호세를 다시 불러냈다. 도미니카 출신의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40대의 야구선수가 롯데와 부산의 마스코트(?)로 다시 그라운드에 선다. 물론 발목 부상으로 시범경기도 출장하지 못하고 있는 호세가 얼마나 활약할지는 미지수다. 그가 변변한 성적을 내지 못한다면, 프로스포츠의 냉혹한 현실이 호세를 그라운드 밖으로 내몰지도 모른다. 그 역시 자본과 국경의 경계에 있는 용병타자, 그리고 타자(他者)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세를 그라운드에 서게 한 부산의 롯데 팬들의 특수한 열망과 그의 캐릭터가 만나는 특별한 지점이 분명 존재한다. 그것이 타자(打者)이면서 타자(他者)인 외국인 야구선수를 마케팅 용병, 마스코트 용병으로 둔갑시키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호세가 박정태 등과 같이 부산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불혹의 나이, 가을야구, 강병철, 염종석, 박정태, 전두환과 3S정책, 84년과 92년 한국시리즈 우승, 국경, 지역감정 모두를 가로지르는 '무엇'이 2007년 롯데와 부산, 그리고 호세에게 흐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2007년에는 야구장에 더 많은 팬들이 찾기를 희망하며, 또한 40대의 호세가 '준수한' 활약과 함께 공격적인 인터뷰와 액션(?)으로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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