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협상 시한이 48시간 연장되자 정치권도 술렁였다. 한미 FTA 타결 시와 부결 시의 논평을 미리 준비해놓았던 각 세력은 부랴부랴 일정을 수정하는 등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한미 FTA 반대 진영의 목소리는 더욱 강경해졌다. 당초 협상시한 연장은 없다던 정부와 청와대의 공언이 미국의 요청에 의해 번복된 것 자체가 굴욕적 협상의 증거라는 주장이다. 31일을 협상 종료 시점으로 예상하고 농성을 풀 예정이던 정치인들도 전원 단식기간을 연장했다.
김근태 "굴욕감을 주체할 수 없다"
닷새째 단식 농성 중인 열린우리당 김근태 전 의장은 31일 "국가 간의 약속이 마치 공놀이처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유감스럽다"면서 "이런 해괴한 협상을 본 적이 없다"고 비난했다.
그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정한 TPA 시한에 구속되더니 이번에는 거기서 더 나아가 미국이 편의적으로 제시한 협상 시한 연장을 굴욕적으로 받아들이고 말았다"면서 "어제까지 협상 연장은 없다고 얘기한 청와대가 하루도 되지 않아 이렇게 번복하는 자세와 태도를 보면서 굴욕감을 주체할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김 전 의장은 "도대체 우리 국민의 자존심과 줏대는 안중에도 없다는 말이냐"며 "이렇게 굴욕적인 협상을 할 바에야 원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은 당초 이날 오전 중단할 예정이던 단식 농성을 협상이 종료되는 시한까지 연장할 방침이다.
천정배 "48시간 인질 된 것"
천정배 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민생정치준비모임도 이날 "지금은 협상을 연장할 때가 아니라 중단할 때"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모임을 갖고 "48시간 연장은 미국이 한국 측 협상단을 인질로 48시간을 추가로 감금한 채 더 뜯어내기 위한 술수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이들은 이어 "우리 정부가 갖고 있는 보따리도 모자라 입고 있는 옷가지마저 빼앗기는 굴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면 국정조사권을 발동해서라도 전모를 밝혀내고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대정부 공세의 수위를 높였다.
'협상 중단'을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 농성 중인 천 의원도 엿새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민노 "굴욕적 협상에 집착하는 盧 인정 못 해"
청와대 앞에서 24일째 단식 농성 중인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의 농성장도 분위기도 더욱 강경해졌다. 전날 TPA 시한 연장이라는 언론보도와 청와대의 연장 불가 방침 등이 어지럽게 쏟아지는 와중에 문 대표는 "협상 결과가 나올 때까지 (단식을) 고(GO)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표의 단식 농성장을 찾은 민생정치모임 이계안 의원은 "4월 2일로 연기하면 달라질 게 뭐가 있나. 밤새 술 먹고 새벽에 사인하는 저급한 수준의 단체협상을 진행하는 것과 같다"고 비난했다.
심상정 의원은 "이틀 연기한다는 얘기는 미국이 지금의 협상에 대해 노(NO) 사인을 보낸 것이고 전방위적으로 이틀 안에 해결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노당 김형탁 대변인은 "30일까지 협상을 종료한다는 정부와 협상단이 협상을 연장한다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행위"라며 "이런 식으로 협상을 연장한다는 것은 결국 타결을 위한 타결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김 대변인은 "미국의 요구에 의해 협상을 연장한다는 것은 미국의 요구에 무엇을 더 내줄 것인가만을 결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이런 상황인데도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 않는 정부의 소심함과 국민을 이토록 우롱하는 대범함에 놀랄 뿐이다"고 비난했다.
김 대변인은 "이처럼 양보밖에 없는 굴욕적 협상에 집착하는 대통령을 이해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임종인 "미국 협상전략에 놀아나"
한편 국회에서 농성 중인 임종인 의원도 이날 "한미 FTA 협상은 철저하게 미국의 일정에 따라 진행되고 있음이 드러났다"며 "미국의 협상시한에 연연하지 않겠다던 정부의 주장은 사실과 달랐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는 협상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준비나 목표가 대단히 부족했음이 드러났다"며 "이런 상태로 협상을 계속하는 것은 미국의 협상전략에 놀아나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며 "정부는 협상시한 연장을 수용할 게 아니라 협상중단을 선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임 의원도 닷새째 이어진 단식 농성을 협상 종료 때까지 계속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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