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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XX? 검둥이? 이름을 불러주세요"

석원정의 '우리 안의 아시아'<9> 현장에 만연한 인종비하

이주노동자로서 생활해 본 적이 없으니 짐작만 할 뿐이긴 하지만, 어느 나라나 노동 현장의 분위기는 거칠 것이다. 그렇게 믿으면서도 가끔 '외국은 한국보다 더 할까? 덜 할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한국인들이 이주노동자들에게 모멸감을 안겨주는 상황이 발생할 때면 그런 궁금증이 든다. 어떨 때는 정작 이주노동자들은 뭐가 뭔지 모르지만 듣는 우리들이 오히려 모멸감에 가슴이 차갑게 내려앉을 때도 있다.
  
  37세의 우간다 남성 데이빗은 정치적인 문제로 조국을 떠나 한국에 난민신청을 한 사람이다. 그가 우리 단체를 찾아온 이유는 임금체불이었다. 그가 본국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떤 정치적 문제를 안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표정과 행동거지로 가늠해본 그의 성정은 온화하고 조용해 보였다. 그는 한달치 월급 120만 원이 체불됐다고 주장했고 수없이 사업주를 방문했지만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우리 단체에서도 몇 번 연락해보았지만 그때마다 사업주는 전화를 끊어버리곤 해서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기 위해 노동부에 진정하게 됐다.
  
  노동부 출석일, 공교롭게도 데이빗과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이주노동자 상담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이유로 연락두절이 돼 결과적으로 단체가 골탕 먹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는데, 이유가 어찌됐건 일을 진행해야 하는 것은 단체의 몫이 된다. 마침 다른 사람의 진정 건으로 같은 노동청에 가야 해서 데이빗이 없었지만 담당 근로감독관을 만났다. 그런데 진정 전에는 연락도 제대로 되지 않던 사업주가 어쩐 일인지 시간에 맞춰 출석했고, 사업주와 나는 나란히 근로감독관 앞에 앉아서 시시비비를 따지게 되었다.
  
  사업주는 데이빗의 주장을 거의 다 부인했다.
  
  "그래, 걔, 어느 나란지 모르겠는데, 얼굴은 기억이 나는데, 내가 다 줬는데…. 하루 일당도 3만 원이고…. 여기 내가 다 써놨는데…"하면서 사업주는 뭔가 적힌 작은 수첩을 뒤적이며 반박했다. 사실 그의 반박은 정황적 반박이었지 결정적인 것은 없었다. 그런데 사업주가 뒤적이고 있던 수첩을 곁에서 보고 있던 내 시선에 단어 하나가 잡혔다.
  
  나는 '잠깐만요' 하면서 그의 노트를 잡고 가까이 보았다.
  
  '검둥이.'
  
  거기에는 '검둥이'라고 쓰여 있었다. 내 눈이 의심스러워 다시 보았다.
  
  분명 '검둥이'였다. 그리고 '검둥이'라고 쓰여진 부분은 두 군데가 있었다.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확인된 순간 내 입은 저절로 딱 벌어졌고, 갑자기 핏대가 선 나는 그만 제3자로서의 냉정함을 잃어버리고 사업주에게 소리를 빽 질렀다.
  
  "아니 사장님, 검둥이가 뭐예요? 검둥이가? 감독관님, 이것 좀 보세요. 검둥이라고 써놨어. 어떻게 검둥이라고…."
  
  말도 채 맺지 못할 정도로 내 기세는 험악했는데 정작 사업주는 "나 혼자서 보는 수첩에 내가 써놓은 건데, 그럼 안 됩니까? 뭐가 문제지? 아무한테도 안 보여주고 나 혼자 보는 건데"라면서 눈을 둥그렇게 뜨고 따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근로감독관이 "외국인 이름이 뭐냐"고 물었더니 사업주는 "전혀 기억 못한다"고 답변하더니, 감독관이 이어 "일을 시킬 때는 뭐라고 불렀을 것 아니냐"고 재차 물었더니 "이름은 무슨 이름? 그냥 야, 너, 했다"고 아주 태연하게 대답했다.
  
  보다보다 이런 사업주는 또 처음 보았다. 그 사업주를 보면서 지금까지 만나고 접촉했던 수천 명의 사업주들 중 특별히 내 기억에 남아 있는 몇몇 사업주들이 떠올랐다.
  
  입에 담기 민망할 정도로 마구 욕설을 퍼붓던 사업주들, 아주 매끄럽게 혀를 놀리면서 나를 약 올리던 사업주, 친절한 척 대꾸해주면서 핸드폰 요금만 수만 원 날리게 하던 능구렁이 사업주, 너무 뻔한 거짓말이 들통 날 때까지 말짱한 얼굴로 딱 잡아떼던 사업주, 임금을 체불해놓고는 경찰 불러서 불법체류자 잡아가라고 하던 사업주….
  
  그래도 그 사람들은 자신이 채용한 이주노동자의 이름은 불러줬고, 우리 단체와 티격태격할 때에도 'xx'를 남발할지언정 이름을 불렀다. 하기야 나라 이름에 'xx'를 붙여서 부르던 사업주도 있었는데 그와 비교하면 '검둥이'가 더하다고 말할 수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에 어떤 파키스탄 노동자의 체불임금 때문에 회사로 연락한 적이 있었는데 그 사업주는 일상적으로 그를 '파키xx'라고 불러댔었다. 그런 식으로 이주노동자를 부르는 경우를 처음 보았다. 그 당시 사업주가 내뱉은 '파키xx'라는 단어로 가슴이 콱 막히는 것 같았고, 내가 파키스탄인이 아니었음에도 그 말에 담긴 강한 모멸감이 그대로 내게 전달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몽골 노동자들의 상담을 자주 하게 되면서 이번에는 '몽골 xx'라는 말을 가끔 전해 듣곤 한다.
  
  분위기가 험악한 A 사업장에서 일하는 바야르라는 34세의 몽골 남성이 우리 단체를 찾아왔다. 전직이 호텔 종사자였다는 그는 '자신의 직업이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나를 남에게 맞춰주는 일이었기에 웬만하면 상대방에게 맞춰줄 수 있는데, 이 회사 분위기에는 정말 맞추기 힘들다. 계속 있다가는 내가 뭔가 일을 낼 것 같다'면서 사업장을 옮기고 싶어 했다. 그는 자신과 동료들이 겪은 몇몇 사례를 알려줬다. 얼마 전에는 공장장이 어떤 몽골인 노동자를 폭행하기도 했었다는 것이다. 그 외에는 딱히 무슨 사건이 발생한 것은 아니고 다만 분위기가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매우 불편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바야르 씨의 희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몇 가지의 조치를 통해 상황이 조금은 개선되면서 마무리됐다. 그런데 바야르 씨가 돌아가고 나서 A사업장의 몽골 노동자들이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우리 단체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희망은 하나같이 '회사를 옮기고 싶다'는 것이었지만 이런저런 조건들로 쉽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이들은 회사, 정확히 회사의 한국인들에 대한 불만과 불쾌감들을 내게 쏟아내고 돌아가는 양상이 됐다. 그러다가 네 번째로 찾아온 몽골 노동자에게서 바야르 씨가 얘기했던 폭행의 전말을 듣게 되었다. 그가 바로 그 피해자였는데 폭행의 빌미가 된 것이 '몽골xx'라는 말이었다.
  
  공장장의 그 인종비하의 말에 격분한 그가 '우리 몽골xx 아니다. 몽골사람이다'라고 하면서 대들었다가 공장장에게 얻어터진 것이다.
  
  그의 얘기를 듣다보니 내 머릿속에서 자연히 '한국xx'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내 앞에서야 전혀 내색하지 않았지만 A 사업장의 몽골노동자들은 자기들끼리 있을 때면 '한국xx'라고 할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이주노동자에게 멸시의 감정을 담아 부르는 한국인들은 이주노동자들이 그 반작용으로 우리를 어떻게 부를지에 대해 한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아마도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적어도 국가 이름 뒤에 'xx'를 붙여서 부르는 한국인이라면 그들에게 '한국xx'라고 불릴 각오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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