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현장에서의 파졸리니 감독 ⓒ프레시안무비 | |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 거장인 파졸리니 감독은 국내 영화팬들에게는 주로 사드 백작의 원작을 영화로 옮긴 <살로, 소돔 120일>로 알려져 있다. 타락한 귀족들의 온갖 가학적인 변태 성행위를 묘사한 이 영화가 당시 파시스트들을 극단적으로 풍자한 영화임은 잘 알려져 있지만 주로 '엽기' 코드의 일환으로 지하에서 통용되면서 파졸리니 감독의 영화세계가 지나치게 협소하게 오해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동성애자이자 이탈리아의 공산당원, 독실한 카톨릭 교도라는 다소 모순된 아이덴티티를 함께 가지고 있었던 파졸리니 감독의 주된 관심사는 가난한 도시의 뒷골목과 농촌에서 사는 사람들과 이들이 접하게 되는 폭력과 위협의 삶이었으며, 고대신화를 현대적으로 풀어내며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과 혁명의 의지를 겹쳐서 선보이는 것이었다. 예컨데 <메데아>와 <외디푸스 왕>은 모두 고대 그리스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영화이며, <천일야화>는 [아라비안 나이트]를, <데카메론>과 <켄터베리 이야기>는 각각 보카치오와 초오서의 원작을 파졸리니 식으로 영화화한 작품이다. 또한 파졸리니 버전의 <마태복음>은 신화화된 영웅으로서의 예수가 아니라 꼬질꼬질한 옷을 입고 제자들에게 "나는 평화가 아니라 분쟁을 주러 왔다"고 외치는 가난한 예수의 모습을 그려낸다. 시인으로, 그리고 소설가로 먼저 문단에서 주목을 받은 그는 자신의 동명소설을 영화로 옮긴 <아카토네>로 감독 데뷔를 했고, 1975년에 "미성년자를 강간하려다가 정당방위로 살해"됨으로써 53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총 13편의 장편과 13편의 중, 단편을 남겼으며 그 중 몇 편에는 배우로 직접 출연하고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다. 공식적인 사인은 그리 영예롭지 못했지만, 정작 그를 정당방위로 살해한 소년이나 증인들의 진술이 앞뒤가 맞지 않은 채 번복과 엇갈림을 계속해 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파졸리니 감독을 지지했던 수많은 이들은 "가장 극단적인 상상력과 예술적 방식"으로 조롱당한 파시스트들이 분노 끝에 그를 암살하고 불명예스러운 누명을 씌운 것이라고 지금도 굳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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