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사전 집회 신고로 삼성 본관 앞마당을 독차지했던 삼성이 이번에는 45분 간의 의전(儀典)을 위해 법원 주차장을 22시간 동안 선점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피고발인으로 돼 있는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발행' 항소심 공판이 있던 15일 서울법원청사 내 작은 주차장은 새벽부터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승용차들로 가득찼다.
승용차 10여 대가 주차할 수 있는 이 주차장은 고등법원 법정으로 바로 연결된다. 공간이 협소해 평소에도 민원인들과 소송 당사자들이 주차를 위해 수백 미터씩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이날도 오후 3시 에버랜드 공판이 열리기 전까지 차량들이 줄을 길게 서 있었다.
그러나 공판 시작 몇 분전 법정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주차된 승용차 3~4대가 갑자기 움직이더니 곧바로 나타난 에쿠스 승용차 2대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에쿠스 승용차는 다름 아닌 에버랜드 사건의 피고인들인 허태학ㆍ박노빈 전ㆍ현직 에버랜드 사장이 타고 온 차였다.
수차례 공판을 거치면서 삼성은 법정으로 가는 가장 가까운 지리를 미리 파악했고 법원 주차장이 매우 혼잡하고 출입에 아무런 제재가 없다는 '허점'을 십분 이용했다.
삼성 에버랜드 관계자도 "의전을 위해 전날 오후 6시부터 회사 직원들의 차를 미리 주차시켜 놨다"고 시인했다.
법원 정문 바로 앞에는 넓은 주차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공영주차장이 마련돼 있지만 삼성은 '의전'을 위해 법정과 가장 가까운 비좁은 주차장을 고집했다.
이날 공판은 오후 3시에 시작돼 45분간 진행됐고, 전ㆍ현직 사장을 태운 승용차는 길게 줄 서 있는 차량들을 뒤로 한 채 유유히 주차장을 빠져 나갔다.
불과 45분간의 의전을 위해 무려 22시간 동안 법원 주차장은 삼성의 앞마당이었던 셈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법원 직원과 민원인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법원 직원 김모(33) 씨는 "평소대로 아침 일찍 법원에 나왔지만 주차 공간이 없어 이상하다 싶었다"며 "세계적 기업으로서의 삼성의 면모가 아쉽다"고 비판했다.
민원인 이모 씨는 "재판 피고인인데 자기 회사 앞마당처럼 의전하겠다는 것 자체가 납득하기 어렵다"며 "법원 주차장은 모든 민원인들과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지 어느 한 기업이나 개인의 전유물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삼성 관계자는 "지난번 공판 때 취재진들과 몸싸움이 발생해 이번에는 포토라인 설정을 위해 미리 공간을 확보했다"며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비판의 여지가 있는 만큼 주의하겠다"고 말했다.
삼성은 작년 12월 에버랜드 사건 구형 때에는 취재하는 출산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여기자 등 일부 기자들을 거세게 밀치며 취재를 방해해 물의를 빚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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