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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공화국' 책임은 정부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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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공화국' 책임은 정부에도 있다"

[화제의 책] <사치의 나라 럭셔리 코리아>

우리사회에서 소비는 놀이다. 몰두할 취미를 가질 만큼의 물리적, 정신적 여유가 없는 개인에게 가장 손쉬운 스트레스 해소 방법 중 하나가 쇼핑이다.

소비는 개인들 사이의 관계를 유지시키고 확인시켜주는 수단이기도 하다. 오고가는 '선물' 속에 개인 간의 정이 싹트고 사랑이 샘솟는다.

또 소비는 개인의 경제적 계급을 드러내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특히나 압축적 근대화 과정을 거쳐 부유층은 있으나 상류층은 없는 한국사회에서 소비는 상층 계급이 하층 계급과 '구별 짓기'를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편이기도 하다.

소비자본주의사회인 한국에서 소비는 개인이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과정이자 돈을 벌고 존재하는 이유가 됐다.

"나는 욕망한다, 고로 소비한다"
▲ ⓒ프레시안

"Protect Me From What I Want. (내가 욕망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지켜줘.)"

개념미술(conceptual art)가인 제니 홀저의 유명한 전광판 작품 중 하나. 욕망이 꿈틀대는 대도시 한 복판의 고층빌딩 전광판에 적힌 이 한 마디는 현대인에게 '소비'가 의미하는 모순된 속성을 잘 보여준다.

현대 사회에서 과도한 소비의 문제는 비단 우리 사회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 해 존재하지도 않는 브랜드 시계가 '180년 전통의 명품시계'로 둔갑해 엄청난 가격으로 팔리다가 뒤늦게 적발된 '빈센트 엔 코' 가짜 명품시계 사건 등은 소비를 둘러싼 우리사회의 병리 현상의 심각성을 드러내준다.

<사치의 나라 럭셔리 코리아>(김난도 지음. 미래의 창 펴냄)는 명품 소비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소비'의 의미를 심층 분석한 책이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인 저자가 지난 2002년부터 3년간 실시한 연구를 보완해 낸 책인 이 책에서 저자는 '진실은 불편하다'면서 소비를 재촉하는 자신의 욕망의 실체를 들여다 볼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이 책은 명품 열풍의 책임을 비합리적 소비를 하는 개인에게만 책임을 돌리지 않는다.

김 교수는 '국가경제를 살린다'는 목적을 위해 때로는 소비자를 옥죄고, 때로는 소비자의 주머니를 터는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재벌 등 초부유층을 등장시켜 '소비가 성공의 잣대'인 양 보여주는 대중매체도 '명품 열풍'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소비자의 희생을 담보로 성장한 '국가경제'

우리 정부의 소비정책은 1997년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큰 변화를 겪었지만, 공통점은 소비자의 희생을 담보로 소위 '국가경제'를 살리는 정책을 추진해왔다고 김 교수는 지적한다.

고속성장기 정부는 소비절약을 통해 저축을 증대하는 정책을 펴왔다. 소비자들의 저축을 담보로 형성된 자본을 가지고 정부는 대규모 국책사업을 벌이고 소수 대기업에 대출해 투자를 도왔다. 정부는 대기업 위주의 산업정책을 펴면서 과당경쟁방지, 중복투자 방지라는 명분으로 국내 산업의 독과점을 보장했다. 이 과정에서 정경유착을 통한 특혜와 부정부패가 있었다. 또 일부 기업은 투자보다는 부동산 투기를 통해 돈을 벌기도 했다. 이런 문제점은 경제성장을 위해 불가피한 필요악으로 여겨졌다.

결과적으로 정부 시책에 따라 저축을 많이 한 이들보다는 부동산에 투자한 사람들이 더 큰 이득을 보았다. 이런 경험은 국민들이 부와 성취에 대해 승복할 수 없게 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또 정부의 불균형 성장 전략 속에서 농업과 중공업간, 중소기업과 대기업간, 소비자들간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화됐다. 김 교수는 "소득격차가 커지고 경제가 양극화되면 경제 중심이 왕성한 소비를 하는 고소득층 위주로 재편되고 소비자들이 갖는 과시, 질시의 정서도 커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사치가 더 격화된다"고 주장했다.

IMF 구제금융 이후 정부의 정책 기조가 '소비 활성화'로 변화했지만, 이 역시 소비자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 <사치의 나라 럭셔리 코리아>(김난도 지음, 미래의창, 2007)

정부는 소비활성화를 위해 저금리, 증시부양, 가계 대출 확대, 세금 감면 확대, 신용카드 증진 등 활용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이중에서도 신용카드는 지금 당장 돈이 없더라도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도록 소비 관념을 '선구매-후지불'로 바꿨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2-36개월까지 할부가 가능하기 때문에 중하층 소비자가 자신의 소득 수준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고가의 '명품'을 사는 것도 가능하게 됐다.

김 교수는 국가가 과도한 명품 소비에 상당 부분 책임이 있지만 이를 직접 규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국민이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소득격차를 줄이고 경제정책의 정당성을 회복해 부의 분배에 대한 승복을 넓혀 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쇼핑 이외의 것으로 눈을 돌릴 수 있는 문화적 기반시설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로 지적했다.



명품은 지갑은 앏게 하지만 욕망은 두껍게 만든다

정부와 대중매체 등 개인의 사치를 부추기는 외부 환경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소비자 개인의 합리적 소비를 위한 각성과 노력도 중요하다.

김 교수는 이 책에서 명품 소비의 유형을 과시형, 질시형, 환상형, 동조형 등 4가지로 분류했다.

과시형은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고 다른 계층과 자신을 구별짓기 위해 사치품을 소비하는 것. 주로 전통부자의 2세, 벤처사업가, 연예인 등 신흥부유층에서 나타난다.

질시형은 자신이 선망하는 집단이 소비하는 물건을 구매하면 자신도 그 집단에 소속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명품을 소비하는 계층.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중산층에서 흔히 발생한다.

환상형은 명품을 사면 자신이 다른 자아로 변할 수 있다는 환상 때문에 소비하는 유형. 자기애 성향이 강한 20∼30대 젊은 소비자들이나 유흥업소 종사자에서 많이 발생한다.

마지막으로 동조형은 주위 사람들이나 좋아하는 스타가 사용하기 때문에 덩달아 명품을 사는 경우. 유행에 민감하고 또래집단의 영향력이 강한 10대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김 교수는 소비가 가져주는 만족감과 행복은 순간적인 것임을 강조한다. '명품'은 지갑을 얇게 만들지만 욕망은 더 두꺼워지게 만들어, 또 다른 명품을 욕망하게 만드는 '악순환'에 빠지게 한다는 것. 따라서 그는 "물건을 사는(買) 열정을, 삶을 사는(生) 열정으로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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