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한국 UCC 담론, 네티즌을 '바보'로 여겨"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한국 UCC 담론, 네티즌을 '바보'로 여겨"

민경배 교수 "한국 UCC에 없는 세 가지"

"오늘날 동영상 UCC(User Created Contents·이용자 생산 정보)에는 3가지가 없다. 첫째, UCC의 주체인 '사용자'가 없다. 단지 잘 포장된 상품으로서의 UCC, 선거홍보 수단으로서의 UCC만 있을 뿐이다. 둘째, '철학'이 없다. UCC 개념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웹2.0이 표방하고 있는 '참여', '개방', '공유', '집단지성'(Collective Inteligence), 그리고 네티즌들 사이의 '신뢰'는 사라진 채, 오직 흥행만을 고려한 엽기적이고 자극적인 영상만 난무할 뿐이다. 셋째, 사용자와 철학의 부재는 당연히 '공론장'의 부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UCC 담론에 대해 경희사이버대학교 NGO학과의 민경배 교수가 따가운 비판을 던졌다. 그는 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언론광장 창립 3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왜곡된 UCC 담론 진단: UCC 공론장은 가능한가?'라는 발제문을 발표한다.

민 교수는 "지금 한국은 '왜곡된 UCC 담론의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며 "UCC가 뭐 그리 새로운 것이라고 이 호들갑인지, 애초에 한국의 인터넷 공간에 UCC가 아니었던 것이 얼마나 있었다고 새삼 이 난리들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왜곡된 UCC 인식 퍼트리는 언론"

민 교수는 "지난 2월 8일자 <중앙일보> 에 실린 'UCC, 인터넷 새 권력…대선 판도 변수'라는 제목의 기사는 UCC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고스란히 녹아 들어 있는 잘못된 기사의 표본"이라며 UCC 담론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당시 이 기사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팬클럽인 MB연대는 올 들어 인기 개그 프로그램 '마빡이'를 패러디한 '명빡이'를 비롯, '꼭지점 댄스' '무조건' 등 3건의 UCC 동영상을 배포해 인기를 끌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미디어 담당인 이춘상 보좌관은 '동영상 전담팀을 만들어 네티즌의 관심을 끌어당길 수 있는 콘텐트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지난해 '100일 민심 대장정'을 UCC로 중계해 짭짤한 재미를 봤다"는 등으로 서술한 바 있다.

민 교수는 "이 기사에서 UCC란 기껏해야 '네티즌들에게 인기를 끌만한 재미있는 동영상을 전담팀이 제작하여 배포하거나 중계하는 것'쯤으로 간주된다"며 "한마디로 이 기사에서 말하고 있는 UCC란 과거 선거운동 시기만 되면 흘러넘치던 홍보영상물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이 기사는 결국 UCC의 의미를 '동영상'으로 협소하게 이해하고 있으며, '이용자생산정보'란 본래의 의미가 무색하게 'Top-Down 방식으로 제작해 배포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 교수는 이처럼 한국 언론이 마치 새로운 현상인 듯 소개하는 UCC에 대해 "수많은 게시판에 끝없이 올라오는 네티즌들의 게시글과 댓글, 포털의 지식검색에 쏟아지는 무수한 질문과 답변들, 네티즌들의 온갖 디카 사진들과 촌철살인의 시사 패러디물,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블로그들에 매일같이 포스팅되고 있는 글과 사진들은 UCC가 아니고 무엇이었단 말이냐"고 물으며 "UCC 자체가 새로운 개념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수많은 댓글과 사진들은 UCC가 아니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왜 최근에 들어서야 UCC라는 단어가 급속하게 퍼지게 된 것일까? 이에 대해 민 교수는 "UCC란 신조어의 급작스러운 확장은 이용자들의 인식과 인터넷 기업들의 상업적 전략이 적절하게 들어맞은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는 "기술적으로 다소 복잡한 원리와 설명이 필요한 다른 개념들과 달리 UCC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용어"라며 "이에 더해 기존에 이미 폭넓게 퍼져 있던 '이용자생산정보'에 기업들이 UCC라는 이름을 덧씌워 상품화하기 시작하면서 이 개념은 마치 새로운 인터넷 트렌드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UCC가 새로운 트렌드처럼 받아들여지는 또 하나의 요인은 바로 '동영상 UCC'라는 보다 진일보한 형태가 인터넷 시장에서 차세대 킬러 콘텐츠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밝혔다.

그는 △인터넷 회선 속도가 빨라져 고용량의 동영상 파일이 끊김없이 스트리밍(streaming)될 수 있을 정도로 안정적인 인터넷 환경이 구축된 점 △굳이 캠코더가 아니더라도 핸드폰이나 디지털 카메라만으로도 간단한 동영상을 찍을 수 있게 될 정도로 개인 미디어 사용이 일반화된 점 등이 바로 'UCC=동영상'이라는 왜곡된 인식이 형성될 정도로 동영상이 열풍을 끌게 된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선거에 자극받은 국내 언론과 정치권, UCC 열풍에 '발동'

민 교수는 "국내 언론과 정치권이 동영상 UCC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 본격적인 계기는 지난 해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이 민주당의 승리에 기여했다는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면서부터였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버지니아 주에서 우세를 보이던 조지 앨런 공화당 상원 의원은 자신을 근접 촬영하고 있는 인도계 청년을 보고 "저 친구는 마카카(macaca, 원숭이를 뜻하는 인종차별적 발언)로군"이라고 말했다. 이 장면은 동영상으로 인터넷에 올라왔고 이로 인해 그는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여 결국 낙선했다.

몬테나 주의 콘래드 번스 공화당 상원의원 역시 육류가공단체가 주최한 농장법안 공청회에서 10초 정도 졸았던 장면이 '번스의 낮잠'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으로 퍼지면서 여론이 악화돼 역전패를 당했다.

정반대의 사례도 있다. 지난 1월 23일 부시 대통령이 의회에서 연두교서를 발표하는 도중 존 맥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이 졸고 있는 듯한 모습을 찍은 동영상이 '졸린 맥케인 의원'이란 제목으로 미국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YouTube)'에 소개되자 "맥케인 의원이 조는 것이 이해된다", "부시의 지루한 연설을 그렇게 오랫동안 보고 있을 필요는 없다", "어쩌면 맥케인은 졸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제발 부시의 연설을 멈추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등 맥케인을 옹호하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 왼쪽에서부터 동영상으로 제작, 배포됐던 '조지 앨런의 Macaca 발언', '번스 의원의 낮잠', '맥케인의 졸음' ⓒ민경배

이용자 사라진 UCC 담론, 성공할 수 있을까?

민 교수는 국내 정치권이 미국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똑같이 공식 석상에서 조는 장면이 공개됐던 번스와 맥케인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이 상반되게 나타난 것을 통해 "네티즌들이 항상 제작자나 배포자가 애초에 의도했던 바대로 이끌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 네티즌들은 단지 몇 분짜리 동영상 안에 담긴 장면만을 통해 반응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 전후의 상황적 맥락과 배경 속에서 동영상을 해석하고 반응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는 것.

그는 "한국의 대권 주자들이 팬클럽 회원들을 경쟁 후보의 파파라치로 풀어 치명적인 약점이 될 만한 장면을 찍기에 혈안이 된 모습은 치졸하기 짝이 없다"며 "생뚱맞게 마빡이 흉내를 내거나 철 지난 꼭지점 댄스를 추면 네티즌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줄 수 있다는 식의 발상은 여전히 네티즌을 '수동적 바보'로 여기는 어리석은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 한나라당 대선 후보들의 정치 동영상. ⓒ민경배

그는 "한국에서 번지고 있는 UCC 담론에서는 UCC를 선거 전략의 핵심적인 수단으로만 간주하고 있을 뿐"이라며 "이용자들의 자발적 참여로 생산되는 UCC 본래의 의미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의 UCC 담론은 '이용자제작정보'를 말하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이용자'는 사라졌다"며 "그러니 UCC를 통한 네티즌 공론장의 잠재적 가능성은 애초부터 염두에 두지도 않고 있음은 물론"이라고 밝혔다.

민 교수는 "한 마디로 UCC에 대한 현재의 담론은 언론과 정치권의 왜곡된 인식이 합작해 낸 빗나간 담론들"이라고 지적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