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부터 다시 본격화된 개신교계 보수 세력의 움직임일까. 그렇지 않다.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목회자협)가 주최한 이날 기도회는 사립학교개혁국민운동본부(사학국본)이 함께 준비했다. 또 이날 모인 이들 중에는 정진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김한성 전국교수노조 위원장 등도 눈에 띄었다. 사학법 재개정을 막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그런데 이날 기도회와 같은 종교계 내부의 사학 개혁 움직임을 낯설어 하는 이들이 많다. 지난해 성탄절을 앞두고 집단 삭발을 하는 등 사학법 재개정을 주장해 온 목사들의 인상이 너무 강렬했던 탓이다.
"예수님은 개정 사학법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이날 모인 이들이 안타까워한 것도 이런 점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은 개정 사학법을 결코 반대하지 않습니다", "사학의 부패와 전횡에 대해 참회합니다"라는 등의 구호를 내세웠다.
이날 기도회를 주최한 목회자협에 소속된 개신교 목회자들은 상당수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소속이었다. 목회자협 총무를 맡고 있는 임광빈 목사(의주로 교회)는 이날 발표한 결의문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사학법과 관련하여 진실을 왜곡하지 말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예장통합 소속 노회장과 산하 학교 이사장 등이 "현행 사학법에서 개방형 이사제 등 독소조항을 철폐하지 않을 경우 학교 폐쇄를 불사하겠다"며 비상기도회 등을 연 것을 가리킨 말이다.
이날 기도회에 모인 이들은 왜 개신교계의 지도적 인사들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일까? 4일 저녁 기도회가 끝난 뒤, 임 목사의 생각을 보다 자세하게 들어봤다.
개방형 이사제가 종교적인 건학이념을 해친다고? 천만에!
〈프레시안〉: 지난해 사학법 재개정을 요구하며 삭발 시위를 한 목사들이 "진실을 왜곡했다"고 말한 취지는 무엇인가?
임광빈 : 당시 삭발한 목사들은 2005년 말 개정된 현행 사학법 속의 개방형 이사제 조항이 독소조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종교계 사학의 건학이념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배재, 숭실, 이화, 연세 등 전통 있고 건실한 사학들은 이미 개방형 이사제를 별 무리 없이 받아들여 운영하고 있다. 종교계 사학을 자처하지만 실상은 정체가 불분명한 사학들이 주로 반발하고 있다.
반발하는 측의 주장처럼 개방형 이사제가 건학이념, 선교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면 왜 오래된 종교계 사학들이 개방형 이사제를 수용했겠나. 종교계 사학인 경신 학원의 경우, 개방형 이사제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사가 모두 목사들이다. 종교적인 건학 이념과 개방형 이사제는 결코 상충하는 게 아니다.
〈프레시안〉: 사학법 재개정을 요구하는 종교인들이 종종 이야기하는 게 2004년 서울 대광고 강의석 학생 사건이다. 지금까지 관행으로 받아들여져 왔던 학교 내 종교교육이 위기를 맞았다는 것이다. 이런 위기감이 그들을 강경하게 몰아간다는 해석도 있다.
임광빈 : 설득력이 약한 해석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현행 사학법은 종교교육과 배치되지 않는다. 종교교육에 적대적인 인사가 개방형 이사로 들어올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나.
또 이번 기회에 획일적인 종교교육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강의석 학생처럼 원하지 않는 학생에게 억지로 종교교육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종교인들이 강의석 사건을 교훈을 제대로 얻지 못한 듯해서 안타깝다.
'종교의 자유' 내세운 목사들의 천박한 정치 선동
〈프레시안〉: 그렇다면 종교계, 특히 개신교계의 지도적 인사들이 그토록 강경하게 사학법 재개정을 요구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임광빈 :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사학이라는 거대한 기득권을 놓치기 싫어서다. 아무래도 기득권을 쥔 입장에서는 개방형 이사제 등이 도입돼서 사학 운영이 투명해지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지 않겠나. 물론 제도적 투명성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우리를 비리집단 취급하느냐"는 정서적 반감도 있다. 하지만 상당수 개신교 사학에서 비리가 드러난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자성의 목소리를 앞세워야 할 때다.
두 번째 이유는 상당히 불순한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싫어하는 목사들이 '종교의 자유'라는 명분을 내세워 사학법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그들도 현행 사학법이 종교교육을 방해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선동을 위해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 실제로 설교를 하면서 '장로 대통령' 운운하는 목사들이 있다. 천박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기득권에 솔직한 그들, 자기 희생의 '십자가 정신'은 어디에?
〈프레시안〉: 사학법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목사들을 지켜보는 심경이 괴로울 것 같다.
임광빈 : 참 힘들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다. 자기 부정과 희생을 정체성으로 삼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학법 재개정을 외치는 목사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순교를 각오한다며 삭발과 단식을 했지만, 정작 과거 독재정권이 약자의 인권을 짓밟을 때는 편안히 지내던 그들이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던 예수님의 말씀대로 자기를 부정하기는 커녕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 대해 아주 솔직한 태도다.
가슴에 십자가를 세우기보다 화려한 교회 건물이라는 우상에 집착하는 개신교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 다행스러운 것은 많은 신자와 목회자들이 이런 모습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일시적으로는 개신교 인구의 감소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길게 보면 이런 어두운 현실은 새로운 희망을 잉태하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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