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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돈, 다른 몽골인이 가져갔으면…"

석원정의 '우리 안의 아시아'<2> ATM에서 사라진 30만 원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생활이나 한국어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은 단지 불편하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때로는 모른다는 사실이 금전적인 불이익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절친한 친구를 의심하게 하기도 한다.

'모기'라는 24살의 몽골청년이 체불임금 때문에 상담소를 찾아왔다. 한국 온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한국어를 잘 하지 못했다. 31만여 원 정도 임금이 체불됐는데 회사에서는 차일피일 지불을 미뤄 결국 노동부에 진정까지 하게 됐다.

노동부에 진정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서 본인의 통장으로 임금을 송금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임금이 해결되면 노동부에 진정취하서를 보내야 하기에 모기에게 회사가 약속한 날짜에 입금을 했는지 확인해보라고 알려주었다.

통장을 확인했지만 입금이 돼 있지 않았다고 한다. 며칠에 걸쳐 여러 번 확인해보라고 연락했지만 계속 '돈 들어온 것 없어요'라는 말뿐이었다.

그러기를 20일. 그 날도 '돈 들어온 것 없어요'라는 모기의 말을 듣고 드디어 회사에 연락했다. 약간 따지는 말투로 "송금 안 하셨어요"라고 물었더니 회사에서는 펄쩍 뛰었다. 이미 보냈다는 것이다. 이상하다 싶어 송금증을 팩스로 보내달라고 부탁하고 다시 모기에게 전화했다. 그러나 모기는 여전히 '돈 들어온 것 없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보내준 송금증을 받아보니 분명히 모기의 통장으로 체불임금액이 송금됐다.

다시 모기에게 연락했다. 이번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물어보았다.

입금을 어떻게 확인했느냐고. 그랬더니 현금카드로 확인했다고 했다. 모기는 그 동안 카드로 잔액만 확인했던 것이다. 그래서 모기에게 통장을 가지고 은행에 가서 통장정리를 해보라고 일렀다. 한 시간쯤 지나 모기에게서 연락이 왔다. 입금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럴 리 없으니 다시 확인해보라고 일렀더니 이번에는 어떤 한국인을 바꿔주었다. 은행 창구직원이었다. 그 역시 입금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다시 회사가 보냈다고 말한 날짜에 입금된 돈이 없는지를 물었더니 '00기업 이름으로 31만원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아, 그럼 됐습니다"라고 하고 모기에게 돈이 입금되었던 것임을 알려줬다.

그리고 회사로 다시 전화했다.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본인이 통장정리를 할 줄 몰라서 확인이 되질 않았습니다. 저희도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질 못했습니다."

세 시간쯤 지나자 이번에는 모기가 사무실로 헐레벌떡 찾아왔다. "그럼 내 돈은 어디로 갔냐"는 것이었다.

모기가 가져온 통장을 보면서 모기에게 돈이 입금된 사실을 일러줬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회사가 돈을 입금하고 나흘 뒤 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30만 원이 인출됐다. 우리는 모기가 돈을 찾고나서 잊어 먹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기는 절대로 자신이 인출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돈을 몰래 인출한 것이 된다.

"통장을 누가 만들어줬느냐, 카드를 누군가에게 준 적이 있느냐, 비밀번호를 누군가 알고 있느냐."

차근차근 짚어 가는데 모기의 얼굴에 의혹과 함께 가벼운 절망이 스쳐가는 게 보였다.

'가장 친한 친구 두 사람이 비밀번호를 알고 있고, 한 열흘 전에 카드를 주면서 입금이 됐는지 확인해달라고 한 적이 있다. 가장 친한 친구인데 설마….'

꼼짝없이 모기의 가장 친한 친구가 뒤집어쓰게 되는 상황이 되고 보니 진실을 밝혀야겠다 싶어 다음날 은행을 찾아가 상담했다. 어느 지역에 설치된 ATM에서 인출된 것인지, CCTV로 촬영된 것을 확인할 수 있는지 등등 물어보는데, 그 와중에 모기의 기억이 하나하나 맞춰졌다.

30만 원이 인출된 그날, 모기는 현금 3만 원을 찾기 위해 가장 가까운 친구 두 명과 함께 한 은행의 '365일 코너'로 들어갔다. 거기에 ATM이 여러 대 있었는데, 현금카드를 넣은 모기가 3만 원을 누른다는 것을 실수로 30만 원을 누른 것이었다. 그러자 기계 안에서 '차라락' 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고, 세 몽골청년은 순간 당황했다. 한 친구는 강력하게 '이 기계는 고장났다'고 주장했고, 또 다른 친구는 '돈 세는 소리 같다'고 주장했다. 결국 강력한 친구의 주장이 먹혔고, 세 사람은 다른 ATM에서 돈을 인출하고 그 '365일 코너'를 나왔다. 주변에 어떤 한국인이 있었던 것 같다는 게 모기의 기억이었다.

모기는 상담소를 떠나면서 "그 돈, 다른 몽골인이 가져간 것이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그 말이 내게는 그날 옆에 있었을 한국인에 대한 야속함을 토로하는 것으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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