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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아파트, 국가-재벌-중산층 '3각동맹'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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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아파트, 국가-재벌-중산층 '3각동맹'의 결과"

[화제의 책]프랑스 지리학자가 쓴 <아파트 공화국>

"한강변의 군사기지 규모는 정말 대단하군."

프랑스의 도시계획가가 서울의 5000분의1 축적 지번약도를 보고 한 말이다. 그가 지적한 '군사기지'는 반포의 아파트 단지였다. 이처럼 큰 규모의 아파트 단지를 상상하기 힘든 그는 반포 아파트 단지를 군사기지로 착각한 것이다.

왜 서구에선 빈민층의 주거 형태인 아파트가 한국에서는 도시 중상층의 거주 공간이 됐을까? 채 5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아파트는 어떻게 서울의 대표적인 주택 양식이 될 수 있었나?

한국을 연구하는 프랑스의 젊은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40. 마른-라 발레대학 교수)의 책 <아파트 공화국- 프랑스 지리학자가 본 한국의 아파트>(후마니타스 펴냄)는 이 같은 의문에 대한 답이다. "땅은 좁고 사람은 많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논리만으로는 한국의 아파트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50년 동안 서울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 ⓒ프레시안

삼성아파트가 아니라 '래미안', 엘지아파트가 아니라 '자이', 대림아파트가 아니라 'e-편한 세상', 롯데아파트가 아니라 '롯데 캐슬'…. 2000년대 들어 한국의 아파트는 또 한 번 환골탈태하고 있다. 최신 브랜드 아파트로 이름만 바꿔도 아파트 값이 수천만 원씩 오르는 일이 일어날 만큼 한국에서 아파트는 '욕망의 상징'이 돼 버렸다. 주택이 유행상품처럼 취급되는 놀라운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1970년 서울 마포의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가 일어날 때까지만 해도 선망의 대상과는 거리가 멀었던 아파트에 대한 인식이 '이상적인 주거 공간'으로 바뀐 데 대해 줄레조 교수는 빠른 경제성장과 도시화라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서울 주택난 등을 이유로 1971년 동부이촌동단지가 완공된 것을 시작으로 반포단지, 잠실단지 등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고, 1980년대 들어서는 주택 500만 세대 건설 계획이 발표되는 등 정부는 아파트 건설에 앞장서 왔다.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에 발맞춰 강남구와 송파구를 중심으로 부동산 투기가 활기를 띠었고, 이는 중동지역 전쟁으로 사업 침체를 겪고 있던 재벌기업 계열의 건설 회사들에게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 1971년부터 1996년까지 건설산업의 생산은 국민총생산보다 두 배나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권위주의 국가는 인구성장을 관리하고 봉급생활자들을 경제발전에 헌신하도록 가격이 통제된 아파트를 대량공급하려 했다. 중간계급을 대단지 아파트로 결집시키고 이들에게 주택소유와 자산소득 증가라는 혜택을 주었으며 그들로부터 정치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다.



결국 이런 상호 혜택의 구조 때문에 한국의 도시 중산층이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하층 계급으로부터 공간적으로 분리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 한국의 아파트 단지는 권위주의 산업화의 구조와 특성, 여기서 비롯된 계층적 차별 구조와 획일화된 문화양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이자 그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줄레조 교수는 한국의 대단지 아파트가 정부, 재벌, 중산층의 '3각 특혜동맹'의 결과라고 봤다. 이제 서울에서 아파트는 그 사람의 계급적 지위를 가장 명확히 드러내주는 상징이 됐다. 대단지 아파트는 그 자체로 사회공간적 차별화를 낳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런 차별화를 고착화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한국 최초의 아파트? 중앙아파트가 아니라 종암아파트

줄레조 교수는 이 책에서 한국 최초의 아파트를 기존 연구서 등을 통해 알려진대로 중앙아파트(서울 중구 주교동)가 아니라 종암아파트(서울 성북구 종암동)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1956년에 사원주택용으로 지어진 중앙아파트는 한 동짜리 12가구가 입주할 수 있는 공동주택으로 아파트라는 말만 붙여졌을 뿐 아파트라는 주거형태에 맞는 건물은 아니었다는 것. 이와 달리 1958년에 지어진 종암아파트는 5층짜리 3개 동에 152가구가 입주했다.

핵심적인 차이는 종암아파트는 주택공사의 전신인 주택영단이 아파트 건설사업을 주관하는 등 정부 주택정책의 결과로 지어졌다는 것. 이승만 대통령은 아파트 완공식에 참석해 아파트의 현대성과 수세식 화장실의 편리함을 역설하기도 했다.

그는 또 대한주택영단이 일부 책에는 1961년 7월에 건립된 것으로 나오지만 대한주택영단은 1941년 조선총독부가 세운 조선주택영단이 해방 후 이름은 바꾼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재건축의 일상화'하루살이 도시'가 된 서울

재개발과 재건축을 통해 한국의 아파트는 점점 더 고층화, 고급화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주택부문의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건설업이 경제 회복의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되면서 등장한 것이 강남의 타워팰리스 등 호화 대형아파트다. 음식 배달부 출입도 엄격하게 통제될 만큼 위부에 대해 매우 배타적인 이들 호화 주상복합주택은 미국 대도시의 주거양식인 '게이티드 커뮤니티'(외부인 출입제한 주거지역)의 형태를 닮았다.

줄레조 교수는 "이런 주거양식은 사회 전체적으로 거주 형태를 획일화시킬 뿐 아니라 점점 더 파편화된 도시를 만들어낸다"고 지적했다.

그는 "서울은 서구가 보여주고 있는 도심의 박물관화와는 근본적으로 대립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달려 나가고 변화하고 있으며 현재에 멈춰 설 수 없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듯 하다"면서 이런 서울의 미래에 대해 과히 밝지 않은 전망을 내놓았다.

"건물 수명을 20~30년으로 볼 때, 1970년대 아파트 단지의 개축과 재건축 문제가 이미 서울에서 시작됐다. 15년이나 20년 후엔 1980년대 중반 이후 대건설 계획으로 탄생한 모든 아파트들에 같은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아파트 단지는 이미 도시의 유산에 속하는 문제이자 당장 오늘의 도시 문제가 됐다. 재건축이 일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대단지 아파트는 서울을 오래 지속될 수 없는 하루살이 도시로 만들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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