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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주체적 의식 형성'에 노력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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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사회, '주체적 의식 형성'에 노력하고 있나"

홍세화 "댓글 문화는 한국 교육과 언론의 합작품"

"2001년에 귀국해서 택시를 탔을 때의 일이다. 감회가 남다르지 않겠나. 그래서 내가 먼저 기사 양반에게 실은 저도 택시기사 출신이라고 말을 건넨다. 그럼 파리와 서울의 택시 노동에 대한 질문이 오고가며 동지적인 화기애애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러다가 택시 노동자가 나에게 꼭 질문을 던진다.

'지금은 뭐하십니까?'
'저 <한겨레신문>에 다닙니다.'

그 순간부터 갑자기 분위기가 썰렁해진다. 예컨대 <조선일보>에 다닌다고 하면 이야기를 더 이어나갈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지 않은 거다. 그러면 내가 거꾸로 질문을 던진다.

'기사 양반은 <한겨레>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긍정적인 답은 열의 하나 정도다. 그 외의 경우 내가 기대하는 답이 있다.

'내가 <한겨레>를 읽지 않아서 그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소.'

그러나 대부분 이런 말을 한다.

'그거 여당지죠?', '색깔이 이상한 신문 아닌가요?'

그럼 나는 짓궂게 다시 묻는다.

'기사 양반은 <한겨레>를 읽으시나봐요.'

택시 노동자는 황당해한다. 나도 황당해하긴 마찬가지다. 바로 이 부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면서 다 알고 있다고 믿는다. 이미 형성된 의식을 고집하는 거다. 여러분도 그 함정에 빠져 있지 않나? 그 의식세계를 형성하는 정보를 제공한 주체는 대체 누구일까?"


지난 24일 저녁 서울 안국동 참여연대 강당. 홍세화 <한겨레> 편집인석 기획위원의 강연을 듣는 대학생들의 열기가 좁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이날 강연은 참여연대가 대학생 및 청년을 대상으로 마련한 시민운동 현장체험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지난 9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현장체험에는 30여 명의 학생들이 참가하고 있다.

"옛날에는 '내가 무식하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 ⓒ프레시안

홍세화 기획의원은 인터넷을 통한 정보 유통이 활발해지면서 오히려 한번 형성된 자신의 '의식'을 고집하는 풍토가 과거에 비해 심해졌다고 꼬집었다.

"옛날에는 적어도 자기가 무식하다는 것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책을 안 읽어도 유식하고, 다 알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인터넷으로 정보가 홍수를 이루며 그렇게 변했다. 옛날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것에 대해서만 고집을 부렸다면 이제는 모르는 것에 대해서도 고집의 정도가 더욱 심각해진 거다.

황우석 사태에 대해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보인 태도는 어땠나? 정부가 아무리 어중이떠중이로 밀어붙이고 쏠림 현상을 보였다 해도 조작된 것이 밝혀졌다면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되는데 대부분은 다른 쪽의 탓으로 돌린다. 합리화다. 사람은 합리적 동물이 아니라 '합리화'하는 동물이다."


"국가권력과 대중매체의 객체가 되어버린 '의식'"

그는 이 같은 '고집'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주체적인 의식 형성' 노력을 게을리하는 한국 사회의 풍토가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신의 의식세계를 자기가 형성하지 않는 문제가 심각하다. 정보의 홍수를 통해서, 교육과정에 의해서 주입될 뿐이다.

우리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교육과정과 대중매체인데 교육과정은 국가권력이, 대중매체는 자본이 갖고 있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지배세력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우리에게 어떤 의식을 주입하려 하나? 바로 이들에 대한 자발적 복종이다.


국가권력은 주로 교육과정을 통해 일제 때는 황국 신민화, 분단상황에서는 안보와 반공이고, 지금은 신자유주의 아래서 국가 경쟁력과 효율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자본은 끊임없이 물신주의를 통해 결국은 반민중적이며 반인간적 의식을 형성한다.

한국 사회 구성원의 절대 다수는 자라오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의식 자체가 반민중, 반인간적인 가치관으로 형성돼 있다, 그것이 바로 한국 대학가의 모습에 반영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노조가 좋으냐 나쁘냐를 따지는 수준"

홍세화 기획위원은 사회 곳곳에서 이 같은 한국 교육과정과 대중매체의 폐해가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강연을 듣던 한 참석자가 '왜 한국 사회에는 진보와 보수를 확연히 가르는 이분법적 사고가 만연하게 됐을까'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간단하다.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프랑스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의 토론주제 중에 노동조합이 민주주의 발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것이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노동조합이 좋으냐, 나쁘냐를 갖고 이야기하는 수준이다.

이런 교육의 폐해는 댓글을 통해 알 수 있지 않나? 댓글 문화를 보면 정말 절망적이다. 좋은지, 싫은지에 대한 의견밖에 없고 또 싫으면 감정적인 배격을 한다. 사회문화적 소양이 얼마나 낮은 단계인지 볼 수 있다."


악의적인 인터넷 댓글 문화는 최근 한 연예인의 자살의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될 정도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익명성과 집단성의 그늘에 숨어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를 되풀이하는 현상은 인터넷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지금과 같은 한국 사회에서 성찰은…안 하는 편이 다행"

현재 한국사회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극단적 분열과 대결구도 양상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개개인이 스스로의 합리성을 되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성숙한 개인이 모여서 성숙한 사회가 만들어 질 수 있다는 '진리'를 벗어난 특효약은 없는 듯 했다.

"네 가지 정도라고 본다. 첫째는 폭넓은 독서다. 둘째는 열린 자세로 많은 토론을 해야 한다. 셋째는 여행을 통해 여러가지 경험을 쌓아야 한다. 넷째는 성찰이다. 그렇게 형성된 의식 세계라면 고집부릴만 하다. 긍지를 가지고 책임도 느낄 수 있을 거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은? 월 평균 가구당 도서구입비는 1만2369원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신문 대금도 포함돼 있다. 토론? 안 한다. 여행? 하긴 하지만 경험을 쌓는 게 아니라 사진을 찍는다. 이런 상황에서 성찰은…차라리 안 하는 편이 다행이다."


한시간 가량 이뤄진 강연에 이어 그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질문과 답이 오갔다. 참석자들은 강연 내용에 대한 질문과 함께 한국 사회 전반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조중동의 구독률은 왜 높을까?', '1970~80년대와 지금의 사회 변화와 의식은 어떻게 바뀌었는가', '언론과 인간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등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의 강연을 듣고 스스로 되돌아봐야 할 사람들은 대학생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닌 듯 했다.

한국 사회와 NGO에 대한 대학생과 청년들의 이해를 돕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이번 프로그램에는 홍세화 기획위원을 비롯해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 등이 함께한다.

참가자들은 입법 청원안 만들기, 재판 방청과 모의판결 등 모의 정치과정에 참여하며 오늘 26일에는 미군기지 확장이전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오랫동안 투쟁해 온 평택 대추리를 방문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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