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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입에 담아선 안되는 이야기라고요?

[화제의 책] <나는 조용히 미치고 있다>

얼마 전 서울 도심 한 복판의 공공장소에서 퍼포먼스를 했다는 이유로 두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매주 조사를 받으러 경찰서에 간다는 한 장애인 인권활동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경찰은 그에게 "배후가 누구냐"며 집요하게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이 이야기를 들은 인권활동가들은 크게 웃었다. 순수한 의도로 그런 행동을 했을 리 없다고 믿는 경찰과 그 인권활동가는 서로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다.

1970년대 한국의 인권유린의 현장들을 그려낸 <나는 조용히 미치고 있다>(길찾기 펴냄)의 이정익 작가 역시 '경찰식 사고'로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다. 1978년생인 그는 70년대를 경험하지도 않았고 대학시절 소위 운동권도 아니었다. 만화를 좋아하는 말없는 소년이었던 그는 '두렵고, 아팠던 군인들의 독재시대를 견뎌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작가는 1970년대 전반에 걸쳐 일어났던 인권유린의 현장에 하나씩 다가간다. 1장에서는 광주(廣州) 대단지 사건, 2장에서는 동일방직 분뇨 사건과 인혁당 재건위 사건, 3장에서는 권언유착의 현실, 4장에서는 유신정권의 고문, 5장에서는 광주 민주화 항쟁을 각각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너무나 두려워서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 ⓒ프레시안

"광주에서만 학살이 있었던 건 아니었을 거야. 이라크에서, 팔레스타인에서, 보스니아에서, 베트남에서, 또…. 그것들은 어느 날 난데없이, 예고 없이 덮쳐오는 지진이나 해일과도 같아. 준비하거나 방비할 틈도 없이...더없이 냉혹한- 피와 살이 튀는 전장과 곳곳에서 눈 번뜩이는 잔혹한 권력을 상상할 때면 나는 너무나 두려워! 너무나 너무나 두려워서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프롤로그에서 작가는 먼저 폭력과 전쟁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독백처럼 풀어놓는다. 작가가 생각하는 전쟁이란 준비한 적 없는 실연과 생각해본 적 없던 가족의 병환과도 같다. 광주와 이라크, 팔레스타인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폭력은 어느날 갑자기 들이닥쳤던 것이다. "어느 만큼 나이를 먹기 전까지 혼자만의 슬픔과 고민으로도 너무 벅찼다"고 고백한 작가는 "하지만 서서히 내 아픔의 진폭은 내가 아닌 다른 것들로 옮겨가기 시작했다"며 자신이 어떻게 '고통의 연대'를 느끼게 됐는지 고백한다.

증언과 자료를 들춰가며 그가 이야기하는 1970년대 상황은 그 당시가 얼마나 끔찍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인권침해의 현장을 떠오르게 만든다. 그 강도는 이제 약할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상식 이상으로 인권이 침해되고 있는 현실은 여전히 다를 바 없다. 인권의 역사는 상식의 역사보다 늘 뒤처져 움직이는 듯하다.

1970년대와 2000년대, 시간을 뛰어넘은 '닮은 꼴'

1976년 동일방직의 여성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노동권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댓가로 매서운 한겨울에 더러운 분뇨를 온몸에 뒤집어써야 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06년 겨울, 1년 내내 철도공사의 불법파견에 맞서 투쟁을 벌이고 있는 KTX 여승무원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정당한 고용절차를 요구하는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대답 없는 한국철도공사와 길바닥에서 맞는 매서운 한겨울 찬바람이었다.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이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며 서울에서 경기도 광주(현 성남시)로 강제 이주시킨 판자촌의 빈민들은 땅과 일자리를 마련해준다는 사탕발림이 거짓임을 알게 된다. 수도도 도로도 놓여져 있지 않은 황무지에서 빈민들은 대정부투쟁을 벌였고 이는 '광주 대단지 사건'으로 기록돼 전해져오고 있다.

2007년 미군기지 확장이전을 해야 한다는 정부는 '내 땅에서 농사지으며 살고 싶다'고 외치는 경기도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의 농지에 철조망을 두르고, 빈집을 부수며 나가라고 강요했다. 정부는 '이 땅을 떠나면 일자리도 주고 농지도 주겠다'고 하지만 그 같은 '보상'은 전혀 현실적인 대안이 아님을 주민들은 이미 떠난 이들을 통해 너무 잘 알고 있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주도의 외자 의존 수출주도형 공업화 정책으로 '수출의 전쟁화'를 야기했다. 이는 과도한 노동력의 착취로 이어졌고 결국 전태일 열사와 같은 노동자와 빈민층의 저항으로 이어졌다. 또 '끝이 잘되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도 되며 인성이 파괴돼도 괜찮다'는 뻔뻔함이 우리 사회에 자리잡게된 시대이기도 하다.

한미 FTA 체결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2006년의 한국 정부 역시 FTA 체결에 반대하는 여론을 어떻게든 차단하려 애쓰고 있다.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농민들이 만든 광고에 대해서는 '사실상 불허' 결정이 나도록 했고 FTA 반대 집회는 '불법 시위'로 규정짓고 참가자들을 사법처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나는 소소한 일상과 사사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70년대 현실을 적나라게 묘사했던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원고를 끝낸 작가는 한 선배에게 이런 타이름을 들었다고 한다.

"도대체 니가 소리치고 주장하고 싶은 주의가 뭐야? 없어? 몰라? 그럼, 니 지점은 어디라고 생각하냐? 좌파냐, 중도좌파냐, 중도우파냐, 그런거 있잖아. 그런거 모른다고? 이거 봐. 넌 기본이 없잖아. 함부로 입에 담아서 되는 게 있고 안되는 게 있는거야."

작가의 선배가 던진 말들은 인권활동가에게 '배후'가 누구냐고 묻던 경찰을 떠올리게 만든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사람들의 요구는 '배후'나 '무슨무슨 주의'가 아니고선 나올 수 없다고 믿는 사회. 1970년대 인권을 외치는 이들에게 씌워졌던 '국가보안법 위반'의 혐의처럼, 노동권 보장을 요구했던 이들에게 씌워졌던 '난동 조장'의 혐의처럼, 그 시절 뼈아픈 유산은 2000년대 한국 사회를 아직도 지배하고 있다.

만화 속 작가는 선배의 호통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향할 뿐이다. 작가가 건너려던 횡단보도는 끝없는 외길로 변하고, 작가는 혼자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이며 책을 마무리짓는다. 그가 선배에게 해주려던 대답은 이미 프롤로그에서 밝혔던, 바로 그 말이 아니었을까?

"나는 소소하고 그저그런 일상과 사사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 숱한 질곡의 역사가 인간에게, 민초에게, 가족에게 무엇이었는지. 어머니들에게는 또 어땠고 자식에게는 그랬는가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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