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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한 달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르포] 새해가 무색한 청소 용역 노동자의 죽음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들은 고통의 순간 앞에서 늘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딱 한 달만 시계를 과거로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난해 말 갑작스런 사고로 누나 전영숙 씨를 떠나보내야 했던 유가족 전모 씨는 모두가 새로운 희망에 설레는 새해 첫날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누님이 그렇게 허무하게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딱 보름 만, 아니 아예 청소 용역 노동자로 취직하던 그 전까지 딱 한 달만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미안하다 말이라도 하는 것이 사람의 상식 아닙니까"

전 씨는 지난 달 15일 갑작스럽게 누나 전영숙 씨의 사망 소식을 전달받았다. 개인적인 어려움을 딛고 새롭게 살아보겠다며 전영숙 씨가 부천역의 청소 용역 노동자로 취직한 지 불과 20일 만이었다. 갑작스런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전 씨는 "당시의 놀라고 당황스런 마음이야 이루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그러나 전 씨가 더 괴로운 것은 누나의 생명을 앗아간 사고의 정확한 원인을 알 수가 없고 그 죽음을 책임지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5일 동안 치러진 장례 기간 동안 전영숙 씨가 속해 있던 청소 용역업체 (주)SDK 관계자는 물론이고 한국철도공사 직원 어느 누구도 장례식장을 찾지 않았다.

"어느 차량에 치인 것인지, 당시 기관사가 누구였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돌아가신 분이야 다시 살릴 수 없지만, 적어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철도공사든 용역업체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사람의 상식 아닙니까."

입사 20일 만에 싸늘한 시체로 일터에서 발견된 전영숙 씨
▲ 전영숙 씨가 시신으로 발견된 선로 변에 떨어진 단추. ⓒ여성연맹

이 기막힌 죽음은 도대체 어떻게 일어난 일일까? 부천역에서 청소 용역 일을 하던 전영숙 씨는 지난해 12월 15일 오전 8시경 부천역 선로 옆 수풀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부천남부경찰서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후 근무조였던 전 씨는 전날 오후 2시 경 출근해 청소일을 하고 쓰레기 분리수거장으로 정리를 하러 가다가 오후 5시45분에서 6시 사이 즈음에 전동차와 부딪혀 사고가 났다. 그가 쓰러진 선로는 동인천에서 용산으로 가는 급행열차가 다니는 선로 변이었다.

부천남부경찰서의 조사에서는 사고 차량과 당시 기관사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 씨의 죽음에 대한 정확한 진상조사와 안전대책 마련 및 보상과 사과 등을 요구하고 있는 민주노총 여성연맹(위원장 이찬배)은 이 죽음은 사실 예견됐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찬배 위원장은 "부천역은 경인선에서도 제일 큰 역사인데 수도권 전철역 60곳 가운데 부천역과 주안역 2곳 만이 분리수거장이 역사 내에 있지 않다"며 "용역 노동자들로 하여금 법으로 금지된 선로 무단횡단을 통해 일을 하도록 한 철도공사는 사고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방치해 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예고된 죽음' 방치한 철도공사, 용역업체는 모두 "…"
▲ 전 씨가 시신으로 발견된 부천역 철길. ⓒ여성연맹

하지만 부천역 관리의 1차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철도공사도, 지난해 수도권 전철 60개 역의 청소용역 도급업체로 선정돼 청소 일을 맡아 왔던 SDK도 이 '미궁의 죽음'에 대해 침묵하며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철도공사는 사고가 난 후 일주일 여 만인 12월 20일 "이번 사고는 용역업체가 안전교육을 시키지 않은 가운데 무단횡단으로 철길을 건너다 사고가 난 것으로 본인 과실의 사고"라며 철도공사가 책임질 내용이 아니라는 공문을 여성연맹 쪽으로 보내왔다.

전 씨가 소속돼 있던 용역업체 SDK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인의 동생인 유가족 전 씨는 "철도공사는 SDK로 책임을 떠넘기는데 그 용역업체는 지난해 말로 도급 계약이 만료돼 업체도 더 이상 철도공사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전 씨는 "둘 다 성의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한숨을 내뱉었다.

죽어서도 차별받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

이찬배 위원장은 "사람이 죽었는데 다들 모르쇠로 일관하는 이 기막힌 상황은 모두 고인이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라서 생기는 문제"라며 "같은 비정규직이라도 철도공사 직접 소속이면 이렇게까지 공사에서 무관심하게 나오겠느냐"고 말했다.

철도공사는 철도노조와의 단체협약에서 정규직 노동자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으면 2억 원, 공사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는 1억 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해 놓고 있다.

그러나 전 씨는 이 둘 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 외주위탁업체 소속의 비정규직 노동자다. 그렇기 때문에 철도공사와 용역업체의 묵인 속에 하루에도 몇 차례씩 '불법'인 선로 무단횡단을 하며 청소일을 하는 '상시적인 위험'에 노출돼 있던 전 씨는 죽어서도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사고 직후 부천역 측은 기존에 3개의 선로를 건너서 가야 했던 쓰레기 분리수거장을 1개 선로만 지나면 되는 곳으로 옮겨놓았다. 그 위험도가 과거에 비해 다소 나아졌다 하더라도 어떤 상황에서 또 어떤 일로 불의의 사고를 당할지 알 수 없는 것이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이다.

모두가 지난해의 일을 다 정리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연초에 유가족과 여성연맹이 전 씨의 죽음을 그저 덮어두고 넘어갈 수 없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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