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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을 향해 날리는 '희망의 종이비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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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을 향해 날리는 '희망의 종이비행기'

[르포] '새해맞이 희망여행' 떠난 장애인들의 꿈

지난 28일 아침, 경남 거제도의 한 바닷가에서 16개의 종이비행기가 떠오르는 해를 향해 높이 솟아올랐다. 종이 비행기를 날린 이들은 서울농학교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6명의 청각장애 학생을 비롯한 16명의 장애인들이었다.

재활전문병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비영리단체 푸르메재단(이사장 김성수)이 지난 27일과 28일 1박2일에 걸쳐 거제도 일대에서 진행한 '2007년 새해맞이 희망여행'에서의 일이었다. 이 행사는 거제도에 위치한 중앙씨푸드(대표 장석)가 후원했다.

이 여행에 참가해 남들보다 며칠 일찍 빌었던 장애인들의 새해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대학교 수업에 수화통역자가 있게 만들어주세요"
▲ 거제도 앞바다에서 소원을 적은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새해맞이 희망 여행' 참가자들 ⓒ프레시안

28일 아침, 해돋이를 보기 위해 참가자들은 깜깜한 새벽녘에 숙소를 출발했다.

"아직 2007년이 되려면 며칠 남았지만 조금 일찍 소원을 적어봅시다."

푸르메재단의 임상준 운영관리팀장이 노란 종이를 나눠주며 2007년 새해 소망을 적어 종이비행기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이번 여행 중 해맞이를 가장 기대했다는 농학교 학생들은 졸린 눈을 비벼가며 종이에 또박또박 무언가를 적어내려갔다. 기자가 어떤 소망을 적었는지 묻자 종이를 손으로 가리며 쉽게 보여주지 않는 모습에서 농학교 학생들의 순수함을 엿볼 수 있었다.

이번 여행에는 서른 명 남짓되는 서울농학교 졸업반 학생 중 참가의사를 밝힌 일부만 참가했다고 한다. 거제도에 가보고 싶어서, 바다를 보고 싶어서, 해돋이를 보고 싶어서 등등 아이들이 신청한 이유는 다양했다. 학교에 졸업여행이 따로 없다고 하니 이번 여행이 이들에게는 졸업여행인 셈이다.

대구대 패션디자인학과 07학번 새내기가 될 박혜원 양은 거제도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1년 동안 짜증나고 답답했던 것 날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고 싶다"며 이번 여행에서 가장 바라는 것이 있다면 고3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다가가 새해 소망을 다시 물었다. 혜원 양은 종이 양면에 각각 개인적으로 바라는 소망과 사회에 바라는 소망을 각각 적었다며 수줍게 종이를 내밀었다.

"대학교에 가면 공부를 할 테니까 힘들어도 참을 수 있다. 장애인이라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불가능은 없다. 아자아자 화이팅!"

"대학교 수업에 수화통역자가 있게 만들어주세요. 장애인들이 공부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해주세요. 친구들이 졸업한 뒤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도록…."

"노력하는 사람들을 통해 조금씩 바뀔 수 있다면 말이죠"
▲ 새해맞이 여행 참가자들 ⓒ프레시안

혜원 양의 소망은 농학교 학생들이 공통으로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학생들과 함께 이번 여행에 참가한 서울농학교 김민 교사는 "강의에서 수화통역을 하는 대학은 극히 일부이기 때문에 농학교 학생들의 진학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직업선택 역시 제한요소가 많은 것은 마찬가지다. 청각장애인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직업은 혼자서 반복적인 일을 할 수 있는 단순 제조업이라고 한다. 웨딩드레스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혜원 양도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몇 배 이상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직업에 대한 높은 관심은 농학교 학생들뿐만 아니었다. 진로선택의 폭이 좁은 장애인들의 관심은 자연스레 고용문제로 쏠렸다. 여행 중 방문했던 대우조선 공장에서 "작업의 특성상 장애인은 아직까지 고용된 이가 없다"는 설명을 듣자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김 교사는 "학생들이 대학교에 가서도, 사회 속에서도 자기자리를 확실하게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라며 "남들보다 어렵게 사회생활을 시작할 학생들이 걱정된다"고 털어놓았다.

"여행에서 가장 아쉬운 게 있다면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는 거죠. 사실 장애를 극복하는 일이 비행기를 하나 날렸다고 해결되는 그런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2007년 한해 동안 사회가 얼마나 많이 바뀔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이렇게 노력하는 사람들을 통해 조금씩 바뀔 수 있다면 언젠가는 우리 학생들이 공부하기에 좋은, 일하기에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그럼 바램입니다."
"난 바보가 아니다. 단지 이름만 바보다"
▲ 바닷가에 도착하자 농학교 학생들은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즐거워했다. 이번 여행이 졸업여행과 마찬가지라는 학생들은 하나라도 더 많은 추억을 남기고 싶은 듯 쉴새없이 웃고 떠들며 즐거워했다. ⓒ프레시안

"학생들을 생각할 때 가장 걱정되는 일이요? 의사소통 문제가 무엇보다 힘들죠. 남들보다 정보를 뒤늦게 얻을 수밖에 없는 문제도 있어요. 청각장애인들은 아무래도 소리로 쉽게 전해질 수 있는 소식을 남들보다 힘들고 어렵게 접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김민 교사는 청각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사회로 진출할 때 마주치는 가장 큰 어려움이 의사소통이라고 지적했다.

의사소통의 어려움은 이번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행 내내 참가자와 학생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수화 통역을 해야 했던 김민 씨는 여행 막바지에 가서는 꽤 지친 표정이었다. 참가자들 역시 농학교 학생들과 많은 대화를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청각장애인들만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정신지체와 소아마비장애를 안고 있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프랜드케어의 김상진 씨와 박영권 씨의 처지도 마찬가지였다. 생각과 달리 뒤틀린 입과 손짓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들은 말을 하는 중간중간 유달리 크게 웃었다.

앳된 얼굴과 달리 삼십대를 훌쩍 넘은 나이라는 영권 씨가 8년 전 지었다며 기자에게 보여준 시는 장애로 인해 타인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답답함을 잘 보여줬다.

<나의 이름은 바보>

나의 이름은 바보다.

바보스런 이름 때문에

사람들에게 놀림받는다.

또 사람들은 나를 피한다.

난 바보가 아니다.

단지 이름만 바보이다.

사람들은 내가 필요한 게

동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름만 바보인 나에게 동정은 필요없다.

난 단지 이름만 바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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