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국회는 시끄러웠다. 사학법, 전효숙 헌재소장 임명동의안 등이 쟁점이었다. 하지만 이런 정치적 소음에 사회 약자에 대한 관심이 묻히고 말았다. 국회가 통과시킨 내년도 정부 예산에서 장애인, 빈민, 독거 노인 등을 위한 복지 예산이 대폭 삭감된 것이다.
"'노인 폄하' 비난하더니 노인 복지 예산 깎더라"
국회는 27일 새벽 본회의에서 163조3500억 원 규모의 새해 예산안(일반회계+특별회계)을 처리했다. 사학법 공방으로 공전을 거듭하느라 미뤄졌던 예산안 처리를 연말을 앞두고 벼락치기로 진행한 것이다.
이날 국회는 당초 정부가 제출한 일반회계(158조 원)와 특별회계(6조7000억 원)를 포함한 총 164조7000억 원 규모의 새해 예산안에서 1조3500억 원을 순삭감했다. 이런 삭감폭은 국회 예산안 심사 이래 최대 규모다.
그리고 예산 삭감의 후폭풍을 뒤집어 쓴 것은 복지 예산이다. 특히 노인 복지 관련 예산의 삭감이 두드러졌다. 삭감된 복지 예산 678억 원 중 89%인 603억 원이 노인 복지 관련 예산이기 때문이다. 이는 '고령화 사회'의 도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논란을 부를 수 있는 대목이다.
우선 독거노인 도우미 파견사업 예산이 176억 원 삭감됐다. 도우미 숫자가 2800명 줄었고, 고용기간도 당초 9개월에서 7개월로 2개월 단축됐다. 노인 돌보미 바우처(정부가 교육, 주택, 의료 따위의 복지 서비스 구매 비용을 보조해 주기 위해 지불을 보증하여 내놓은 전표)예산도 68억 원이나 삭감돼 7300여 명의 소외노인이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없게 됐다. 노인수발보험 시범사업 예산도 19억 원이 삭감돼 2개 지역이 사업에서 제외되게 됐다. 이밖에도 노인생활시설 기능보강을 위한 149억 원, 소규모 다기능시설 신축 142억 원, 노인 그룹홈 신축지원 15억 원 등이 각각 삭감됐다.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삭감된 복지예산 중 대부분이 노인복지예산"이라며 "(예산 삭감을 주도한)한나라당은 타당 유력인사의 '노인폄하발언'을 비난할 자격도 없다"고 비판했다
내년 7월부터 동네 병원에서 무료 예방접종 받을 수 있다고 홍보하더니…
장애인 관련 예산도 줄었다. 특히 장애인주민자치단체센터 도우미 사업 예산 74억 원 중 25억 원이 삭감돼 600명의 도우미를 줄여야 할 형편이다. 도우미 고용 기간 역시 기존의 9개월에서 7개월로 단축됐다. 또한 아동복지, 모부자 예산이 각각 36억 원, 8억 원씩 줄었다.
만6세 이하 아동의 무료예방접종 확대를 위한 예산 458억 원이 새해 예산에 반영되지 않은 것 역시 비판을 피하기 힘든 대목이다. 이런 무료예방접종 확대 사업은 지난 8월 말 국회에서 결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국회는 전염병예방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무료예방접종 범위를 보건소에서 일반 병의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도 내년 7월이면 동네병원에서도 무료예방접종을 받을 수 있다고 홍보해 왔다. 하지만 국회가 관련 예산을 누락하면서 시행이 어려워졌다.
이에 대해 국회와 복지부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느라 바쁘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의원들은 애당초 복지부가 마련한 예산안 자체가 잘못됐다고 이야기한다. 담뱃값 인상을 전제로 예산을 짜면서 무리가 생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복지부는 "관련 법을 국회가 통과시킨 만큼 예산 확보까지 국회가 책임져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병원 무료예방접종이 시행되면 현행 70%에 머물고 있는 예방접종률이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약 45만8000원씩 부담하던 가계부담이 줄어들 것이라고 홍보해 왔다. 결국 시행도 안 될 장밋빛계획을 선전하느라 애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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