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언론들은 앞 다퉈 2명의 예비 우주인에 관한 이야기를 보도했다. 고 씨와 이 씨의 상세한 프로필과 인터뷰는 '필수'였다. 나이, 직업, 학력은 물론 혈액형, 별자리까지 공개했다. 치열했던 선발 과정과 앞으로 남은 과정도 생생하게 소개했다.
머릿기사 교체, '영웅 예고'…바람몰기 앞장 선 언론들
몇몇 언론은 1면 머릿기사를 서둘러 교체하기도 했다. <한국일보>는 '노대통령과 난타전…차별화 부각 고건 지지율에 약 되나'라는 기사를 가판 1면 머릿기사로 배치했으나 배달판에서는 우주인 관련 기사로 교체했다. <서울신문> 역시 가판 1면 머릿기사는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 전매제한'이었으나 배달판에서는 '한국 첫 우주인 후보 고산·이소연 씨 확정'으로 바뀌었다.
언론의 관심은 우주인 후보들이 우주에서 돌아온 뒤 어떤 대우를 받게 될지 추정하는 데까지 미쳤다. <국민일보>는 "우주여행을 다녀온 뒤에는 일단 신분에 상관없이 '우주 영웅'으로 추앙받을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 최초 우주인은 정상급 광고 모델로도 각광받을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우주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성공적으로 귀환하면 이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우주인들이 원래의 직업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다면 말릴 수는 없지만 이미 공인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뜻"이라며 이들의 앞날을 예측했다.
<경향신문> 역시 '61년 가가린 이후 456명 우주여행'이라는 기사를 통해 "각국의 1호 우주인들은 부와 명예를 한몸에 누렸다"며 외국의 우주인들이 '국가영웅'으로 정계진출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이런 신문의 보도에 앞서 분위기를 띄운 데는 단연 우주인 선발행사의 '주관 방송사'인 SBS가 돋보였다. 지난 25일 SBS <8뉴스>가 보도한 30꼭지 가운데 우주인 관련 꼭지는 13꼭지였다. 경주 첨성대 앞에서 스튜디오를 차린 SBS는 '한국 첫 우주인 후보 그 영광의 얼굴들', '우주인 후보는 지·덕·체 겸비한 '최우수 한국인', '한국의 우주 영웅 몸값은 과연 얼마?', 'SBS, 생생한 우주소식 전 과정 독점 생중계', '베테랑 우주인이 꼽은 '우주인'의 조건은?' 등의 기사를 줄줄이 내보냈다.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 260억 원짜리 '홍보대사' 아닌가?
그러나 우주인 선발에 언론이 보이는 호들갑에 비해 정작 우주인 탄생과 국내 항공우주 과학기술의 연관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과학기술부는 한 명의 우주인을 국제우주정거장에 올라갔다 오게 하는 데 드는 총비용이 약 260억 원이며 이 중 주관 방송사가 부담하는 50억 원을 제외하면 정부 예산은 210억 원이 든다고 밝혔다. 한 명의 우주인이 러시아 우주왕복선 소유스 호를 타고 약 열흘간 우주정거장에 머무는 대가로 정부는 러시아에 180억 원을 지불하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막대한 예산을 들이는 우주인 사업의 실상은 일회성 이벤트일 뿐이다. 단적으로 몽골,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우주인도 이미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언론이 이처럼 '국가적' 경사처럼 보도하는 것이 민망할 지경이다.
심지어 이번 우주인 사업이 이벤트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과기부도 인정하고 있다. 과기부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과학기술 홍보 대사로 활용하기 위해서 막대한 국가 예산을 들여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며 이번 우주인 사업이 항공우주 과학기술의 진흥과는 별반 관계가 없음을 선선히 인정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누리꾼의 시선도 곱지 않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한 누리꾼(jtxanadu)은 "최초로 국내에서 만든 우주선을 이끌고 갈 사람이 가져야 할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이라는 영예가 상업성에 눈이 먼 언론에 의해 마구잡이로 난도질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평소에 정부 정책이라면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던 언론이 우주인 사업 앞에서는 한 목소리로 찬양 일변도로 호들갑을 떠는 것을 꼬집은 것이다.
번지수 잘못 짚은 비판들
이 중에는 정부가 대대적으로 주도한 우주인 사업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물론 번지수를 잘못 짚은 비판이었지만 말이다.
<중앙일보>는 이날 사설을 통해 "우주인 사업이 값비싼 일회성 '우주 관광'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정부는 지금부터 우주인 훈련과 사후관리의 전 과정을 세심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라며 "첫 우주인이 황우석 사태 이후 침체된 과학계에 활력소가 되고, 우주과학 발전의 초석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황우석 박사와 같은 '스타 과학자'를 띄우는 기존의 과학기술 정책이 황우석 사태의 근본 원인이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이런 식의 비판은 한참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정부의 스타 과학자 띄우기에 언론이 부화뇌동한 결과가 황우석 사태였다는 것을 금세 잊은 것이다.
그나마 <한겨레>가 우주인 사업을 항공우주 과학기술과의 연관성 속에서 비판했을 따름이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명심해야 할 것은 우주개발의 중요성"이라며 "국민에게 꿈을 주는 '한국인 우주인 시대'를 맞으려면 몇 사람을 우주로 보내는 것보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훨씬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런 비판에서조차 지금 시점에 우주개발이 한국의 과학기술 정책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은 없다. 우주개발은 새로운 과학기술이니 발달시켜야 한다는 뿌리 깊은 과학기술 중심주의의 흔적만 보일 뿐이다.
결국 정부의 이벤트성 우주인 사업에 언론이 철저히 발을 맞춰 줌으로써, 정부가 제대로 된 과학기술 정책을 펴는지 감시와 비판의 역할을 해야 할 언론은 황우석 사태에 이어 한 번 더 '공모자'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황우석 사태는 괜히 일어난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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