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면 가난한 지역에 있는 '공부방'은 평소와 달리 조금 특별한(?) 관심을 받습니다. 말하자면 방송이나 신문, 잡지에서 취재를 원한다든지 후원물품들이 들어온다든지 하는 것이지요. 물론 어느 공부방이나 다 비슷한 사정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공부방 아이들에게 이렇게 관심과 호의를 보이는 것은 참 고마운 일입니다. 추운 계절에 소외된 이들을 돌아보며 마음을 나누고자 하는 뜻일 테니까요.
실제로 공부방 아이들은 우리 사회가 큰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보살펴야 할 아이들입니다. 나라와 사회는 모든 아이들에 대해 그런 책임을 져야 하지만, 특히 공부방 아이들 또는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의 경우에는 가장 기본이 되는 울타리인 가정이 그 역할을 든든히 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 그렇다는 것이지요.
'가난'은 '총체적인 빈곤'의 문제
누구나 느끼듯 우리 시대 '가난'의 문제는 단순히 '돈이 없다'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돈이 없는 데서 벌어지는 엄청난 교육 · 문화의 격차, 가정불화와 생활의 불안정, 이러한 생활이 부르는 질병과 정서적 어려움, 그리고 이 사람들이 속하는 모든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는 차별들로 인해 '온 삶을 통틀어 빈곤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 공부방 아이들의 부모는 대부분 맞벌이를 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어머니나 아버지 가운데 한쪽과 살거나 조부모나 친척에게 맡겨져 지내지요. 어떤 경우건 어른들은 늘 먹고사는 일로 바쁘고 아이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아침 일찍 나오고 퇴근이 늦어 밤늦게야 저녁밥상 앞에 마주앉을 수 있습니다. 어쩌다 큰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교육비 때문에 어머니가 본업 말고도 다른 일을 더 하느라 자정이 넘어 집에 오기도 하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그나마 아이들끼리 자게 되기도 하지요. 어머니(또는 아버지)와 아이들이 숨바꼭질하듯 하느라 얼굴을 마주 대하기조차 어렵습니다.
형편이 이렇다 보면, 부모들은 마음은 그렇지 않아도 아이들을 자상히 돌보아주기가 무척 힘들지요. 고단한 몸으로 집에 들어와 밥 먹고 자기가 바쁜데, 숙제나 준비물을 챙겨 주는 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쉬는 날이나 시간이 좀 나는 때에는 밀린 집안일을 해야 하니 아이들과 놀아줄 시간까지 내기가 어렵고요. 그래서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아이들은 컴퓨터나 텔레비전이 없어서는 안될 친구입니다. 어머니가 늦는 날엔 혼자 라면을 끓여 먹거나 불량식품 군것질로 저녁을 때우기도 합니다.
부모의 손길이 다 못 미치는 곳에서도 아이들은 제 몫의 삶을 살며 날마다 자랍니다. 잘 놀고 제 할일 하며 제 나름으로 살아가지요. 하지만 적잖은 아이들이 외로운 처지인 건 사실입니다. 한 식구라 하기 뭣할 만큼 따로따로인 생활도 그렇지만, 함께 있는 시간에도 친밀한 대화나 민주적인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그것은 부모의 의사소통 방식이나 교육철학이 그러해서일 수도 있고, 팍팍한 삶에 지쳐 아이를 보살필 겨를이 없는 까닭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경제적 곤란 등으로 부부싸움이 잦거나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부모 밑에서 아이들은 자존감을 잃고 불안해하며 우울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러한 처지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좋은 학생'으로 인정받기가 쉽지 않지요. 특히 어렸을 적부터 여러 가지 자질이 충분히 드러날 수 있도록 알맞은 자극을 받고 자라지 못한 아이들의 경우, 학과 공부나 생활에서나 좋은 평가를 받기가 힘듭니다. 또 숙제나 준비물을 빠뜨리고 가 선생님한테 야단을 맞기도 쉽고, 가정 형편으로 여러 가지 문화경험의 폭이 좁은 탓에 친구관계의 폭도 덩달아 좁아질 수도 있게 되지요. 집에서도 책 보고 공부하는 대신 집안일을 도와야 하는 아이들과 학원을 몇 군데씩 다니며 공부만 하는 아이들은 어느 삶이 더 낫다는 판단을 떠나 최소한 성적에서는 차이가 확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정에서 충분히 지지받지 못하는 아이들일수록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많고, 자연히 학교생활도 즐겁거나 원만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상처 받아 힘겨운 아이들의 살아내기 몸짓들은 안타깝게도 제대로 읽히지 못한 채 선생님이나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더 큰 상처로 되돌아오기도 합니다.
공부방에서 저녁을 함께 먹지 않는 이유
우리 공부방에서는 학교급식이 없는 방학 동안에만 원하는 아이들과 함께 점심밥을 먹습니다. 하지만 학기 중에나 방학에나 공부방에서 저녁밥을 먹지는 않지요. 그렇게 하는 데는 우리 나름의 두어 가지 까닭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밤늦은 시간이라도 가족들과 둘러앉아 밥을 나눠먹는 소중한 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그렇게 합니다. 그리고 거저 받는 것에 너무 익숙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또 한 가지 까닭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저는 때때로 어떤 아이에겐 슬쩍 저녁밥을 줍니다. 와서 함께 먹자고 하지요. 여러 날 아이 혼자 먹는 라면은 맛이 없을 것입니다. 사실 이런 아이는 배보다 마음이 고픕니다. 교사는 라면보다 맛 있고 영양가 있는 밥과 반찬을 먹이고 싶고, 함께 먹는 즐거움도 나누고 싶습니다. 살아있는 먹을거리 교육은 밥상 앞에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많은 날 혼자 차려 먹는 밥상을 모른 척 할 수만도 없기 때문입니다.
연말 관심, 고맙긴 하지만…
연말이면 찾아오는 관심들은 고맙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다지 반갑지는 않습니다. 방송이나 잡지가 일년 내내 별 관심 없던 '불쌍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한꺼번에 다루며, 추운 연말 화면과 지면을 따뜻하게 달구고자 하는 모양이 별로 곱게 보이지는 않는다는 말이지요. 제 생각이 너무 꼬인 걸까요? 하지만 저는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과연 아이들이 참으로 잠시라도 행복할 수 있을까?' 그 생색내기 일회성 관심으로 말입니다.
'불우한 이웃'에 대한 텔레비전 특집 프로그램도, '실질적 요구와 상관 없이' 가끔씩 던져지듯 주어지는 프로그램 지원이나 물품 지원도 아이들을 행복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자존감을 떨어뜨리거나 의존성을 크게 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돕고자 한다면 제대로 도와야 합니다. 배고픈 어떤 아이와 밥 한 그릇을 나눠먹고 싶더라도 아이가 지금 나와 함께 밥을 먹고 싶어 하는지, 내 초대가 아이의 가정이 화목을 다지는 데 폐가 되지 않을지, 아이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해치는 밥상은 아닌지, 내킬 때 한 번 스쳐 지나가듯 베푸는 호의에 그치지 않고, 또 반대로 좋지 않은 습성을 키울 만큼 넘치는 호의가 되지 않도록 선을 지킬 수 있는지, 먼저 스스로 잘 살펴야 하는 것이지요.
새해에는 우리 아이들, 이 땅의 가난한 아이들이 모두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사회가 일상적으로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며 함께 하길 기대하고요. 구멍 내놓고 땜질하듯 복지혜택을 늘리는 쪽으로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바탕이 되는 문제들을 짚어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테면 '결식아동'을 파악해 도시락을 지원하는 일보다 더 절실한 건 어쩌면 날마다 엄마 아빠와 함께 마주 앉아 밥 한 끼 맛있게 먹는 거지요. 그런데 그러기 위해선 어머니, 아버지에게 안정적인 일자리가 보장되고 노동시간이 지켜져야 하며, 야근을 하지 않아도 먹고살 걱정, 아이들 교육시킬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사회적 역할, 가정의 역할 모두 중요
공부방 또는 지역아동센터를 활성화하는 일보다 더 절실한 건 경제적 곤란이나 고통 때문에 가정이 깨지는 일이 없어야 하는 거지요. 공부방이 아이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가정에서 채우지 못하는 부분을 아무리 열심히 채워낸다 하더라도 가정을 대신할 수는 없고 부모의 빈자리를 대신 다 채워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또 아직도 가부장적인 문화가 판을 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이 같은 권리를 가지며 평등하게 살아가는 분위기와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일도 무척 중요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비로소 평화롭고 민주적인 가정, 건강한 부모 역할도 기대할 수 있을 테지요.
안타깝고 안쓰러운 처지에 있는 우리 아이들을 지지하는 가장 확실한 길은 무엇보다 그 아이들의 부모와 가정을 지지하는 일이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물론 아이들에 대한 책임이 부모와 가정에만 있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다시 돌아가 이야기하자면, 지역사회를 비롯한 온 사회가 가난한 아이들을 '우리 아이', '내 일'로 껴안고, 아이들의 부모를 지지하며, 아이들을 함께 보듬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 글은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발행하는 <인권오름> 최근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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