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의 뚜껑을 열어 본 소감은 한마디로'정신없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거대한 예고편, 초라한 본론."
"난 데 없는 불청객들의 난교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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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영화계 인사들이 영화 '매트릭스-리로디드'(The Matrix-Reloaded)를 보고 내린 냉정한 평가다.
***오만한 '매트릭스 2'의 착각**
'매트릭스'의 감독인 워쇼스키 형제는 전편인 '매트릭스'에서 일본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오우삼의 홍콩느와르 그리고 쿵푸영화의 와이어 액션이 지니는 시각적 매력을 가져다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공간에 대한 철학적인 사유까지 더한 독특한 영화로 충격을 줬었다.
이들은 정직하게 자신이 보고 싶던 영화를 만들었고 관객들은 환호했다. '코드명 J'등에서 졸연을 펼쳤던 커누 리브스는 B급영화의 액션배우로 떨어지기 직전에 구원받았다.
하지만 기대 속에 개봉된 2편 '리로디드'는 블록버스터 영화와 2탄 영화가 보여주는 문제점을 대부분 안고 나타났다.
이 영화의 첫 실수는 처음부터 엄청난 규모로 두들기고 부수는 것을 관객들이 원한다고 생각한 점이다. 관객들이 매트릭스에 열광한 근본적인 이유는 실제와 사이버세계를 나누는 독특한 철학과 그 철학을 받쳐 준 새로운 시각효과였다.
하지만 '리로디드'는 그런 미덕들을 '재장전'하기보다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상투적 공식에 안주하며 '재장사'에 나서고 있다. 캐릭터는 더 단순해지고 폭발은 더 요란해지고 더 많은 등장인물을 죽이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영화의 구성도 3편의 연작 중 2번째라는 점을 감안해도 갑갑함을 떨치기 힘들다. 첫 장면의 어리둥절한 활극이 벌어진 후 관객은 본격적인 액션이 벌어지는 후반부가 시작되기까지 무려 한시간동안 끈질기게 참을성을 가지고 버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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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과 조연들은 진지하게 인류의 생존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목에 잔뜩 힘이 들어간 그들의 연기는 할리우드 연기패턴의 미덕이었던 사실감이 거의 실려 있지 않고 거만해 보이기까지 한다.
특히 사이버세계를 이겨낼 인간의 능력과 열정이 '시온'의 시민들이 모두 모여 벌이는 난교파티의 성적 에너지로 암시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관객들이 차라리 기이하게 타락한 '시온'보다는 정돈된 '매트릭스' 세계로 들어가고 싶어질 만큼 난감하게 만든다. 할리우드의 흥행공식중 하나인 섹스가 의도적으로 삽입되다 보니 생겨난 천박성이다.
***어설픈 쿵푸영화 베끼기**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이 영화는 점차 자신의 본연의 임무, 즉 흥행성을 찾기 위한 노력을 본격적으로 시도한다.
쿵푸영화의 상투적인 와이어 액션에 더해, 자동차를 칼로 베어 폭발시키는 사무라이 영화의 장엄한 검술시범까지 보이며, 전반부의 지루함과 맥 빠진 연출을 만회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그 노력이 1편에 열광한 영화 팬들이 기대한 방향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더 빠르고 더 세게 터지는 자동차와 정신없는 추격전은 짧은 액션장면에서도 주제와 연관된 의미를 찾게 하던 1탄의 매력을 실종시키고, 트럭위에서 펼쳐지는 어설픈 '사학비권'의 추임새와 '영웅본색' 같은 기관총 세례를 통해 도로위에서 벌어지는 '홍콩영화 회고전' 감상을 강요한다.
특히 홍콩영화의 경우 같은 와이어 액션이라 할지라도 배우들의 무술 기본기가 뒷받침돼 유연한 액션이 창출되는 반면, 매트릭스 2에 나오는 배우들의 경우는 유연성과는 거리가 먼 딱딱한 몸놀림 때문에 마치 인형극을 보는듯한 어색함을 느끼게 만든다. 홍콩영화를 접할 기회가 적었던 서구 관객들에게는 먹힐지 모르나, 동양 관객들에게는 실소를 짓게 만드는 장면들의 연속이었다. '헐리우드 상상력의 고갈'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대미를 장식하는 '하나님'을 상징하는듯한 프로그래머와, 영화속 '예수'로 상징화된 네오의 만남도 소피스트들의 말장난처럼 의미 없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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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논리의 희생물 '메트릭스 2'**
'리로디드'가 왜 이런 망가진 모습이 됐는지에 대한 원인은 '산업적 시각'에서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매트릭스'는 포화상태에 있던 비디오시장을 접고 DVD라는 신시장을 개척하는 척후병 노릇을 한 영화로, 소프트웨어의 새로운 형식과 하드웨어의 새 기술이 행복하게 교류한 드믄 사례였다.
'리로디드'는 '매트릭스'가 이런 기대를 넘어선 성공을 가져오자 그 열기를 더욱 증폭하고 돈다발을 안겨줄 다양한 파생상품을 팔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다.
그 과정에서 어깨에 힘을 빼고 만들었던 '매트릭스'에서 자유롭게 구사됐던 테크닉과 연출력이 '리로디드'에서는 3억달러가 넘는 제작비 속에서 현저히 줄어들었고, 영화는 전자오락 소프트웨어에서 핸드폰에 이르는 다양한 파생상품을 선전하기 위한 2시간여가 넘는 길고 지루한 광고로 변질됐다. 특히 영화 팜플렛 뒷면을 장식하고 있는 오락 소프트웨어의 "영화에서 볼 수 없는 장면들, 대거 포함"이라는 대목은 상업주의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리로디드'는 미국내 흥행성적은 불과 1주간 1위를 하고 물러났으나, 전 세계시장을 상대로 제작비를 상회하는 수익을 건졌으니 성공(?)한 셈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2탄의 패착으로 인해 영화를 만든 워쇼스키 형제나, 제작사가 내심 바라던 '스타워즈'나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능가하는 영화가 되긴 힘들어 보인다.
현재 이 영화는 흥행에서는 2주째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영화에 대한 인터넷평점은 '★★☆(5.94)'로, 개봉작 중에서 '부동의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영화관을 나서는 한 관객은 "과연 3편에도 이렇게 많은 관객들이 몰려올까 대단히 의문이다"라고 반문하면서 "'살인의 추억'에 볼 수 있는, 송강호의 인간적 매력이 물씬 풍기는 연기가 백배 낫다"고 말했다. 매트릭스 2의 초라한 현주소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관객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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