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전문가가 뽑은 최고 시인에 김신용씨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전문가가 뽑은 최고 시인에 김신용씨

'2007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 발표

지난해 문예지에 발표된 작품 가운데 가장 좋은 시는 김신용(62) 시인의 연작시 '도장골 시편'이라는 선정 결과가 14일 나왔다.
  
  도서출판 '작가'가 시인, 평론가, 편집인 등 150명을 대상으로 작년 발표된 시편 가운데 가장 좋은 시를 설문 조사한 결과 김신용 시인의 '도장골 시편'이 20회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다.
  
  도서출판 '작가'는 "내면과 현실의 지극한 싸움의 기록이기도 한 이 시편은 소멸과 폐허를 뛰어넘어 새로운 정신적 지경을 열어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신용 시인은 어린 시절부터 소년원, 갱생원 등을 드나드는 생활을 하다가 1988년 무크지 '현대시사상'으로 등단했다. 김 시인은 등단한 해에 지게꾼 등 밑바닥 생활체험을 다룬 첫 시집 '버려진 사람들'로 문단에 충격을 준 바 있다.
  
  시집 부문에서는 유홍준 시인의 '나는, 웃는다'가 21회 추천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도서출판 '작가'는 '도장골 시편'을 포함해 추천된 시 76편과 시조 13편 등을 엮어 단행본으로 펴냈다. 책에는 '좋은 시집'으로 평가받은 22권의 시집(시조집 2권 포함)에 대한 서평도 함께 실었다.
  
  다음은 김신용 시인의 '도장골 시편-넝쿨의 힘' 전문.
  
  집 앞, 언덕배기에 서 있는 감나무에 호박 한 덩이가 열렸다
  
  언덕 밑 밭 둔덕에 심어 놓았던 호박의 넝쿨이, 여름 내내 기어올라 가지에 매달아 놓은 것
  
  잎이 무성할 때는 눈에 잘 띄지도 않더니
  
  잎 지고 나니, 등걸에 끈질기게 뻗어 오른 넝쿨의 궤적이 힘줄처럼 도드라져 보인다
  
  무거운 짐 지고 飛階를 오르느라 힘겨웠겠다. 저 넝쿨
  
  늦가을 서리가 내렸는데도 공중에 커다랗게 떠 있는 것을 보면
  
  한 여름 내내 모래자갈 져 날라 골조공사를 한 것 같다. 호박의 넝쿨
  
  땅바닥을 기면 편안히 열매 맺을 수도 있을 텐데
  
  밭 둔덕의 부드러운 풀 위에 얹어 놓을 수도 있을 텐데
  
  하필이면 가파른 언덕 위의 가지에 아슬아슬 매달아 놓았을까? 저 호박의 넝쿨
  
  그것을 보며 얼마나 공중정원을 짓고 싶었으면―, 하고 비웃을 수도 있는 일
  
  허공에 덩그러니 매달린 그 사상누각을 보며, 혀를 찰 수도 있는 일
  
  그러나 넝쿨은 그곳에 길이 있었기에 걸어갔을 것이다
  
  낭떠러지든 허구렁이든 다만 길이 있었기에 뻗어 갔을 것이다
  
  모랫바람 불어, 모래 무덤이 생겼다 스러지고 스러졌다 생기는 사막을 걸어 간 발자국들이
  
  비단길을 만들었듯이
  
  그 길이, 누란을 건설했듯이
  
  다만 길이 있었기에 뻗어 가, 저렇게 허공중에 열매를 매달아 놓았을 것이다. 저 넝쿨
  
  가을이 와, 자신은 마른 새끼줄처럼 쇠잔해져 가면서도
  
  그 끈질긴 집념의 집요한 포복으로, 불가능이라는 것의 등짝에
  
  마치 달인 듯, 둥그렇게 호박 한 덩이를 떠올려 놓았을 것이다
  
  오늘, 조심스레 사다리 놓고 올라 가, 저 호박을 따리
  
  오래도록 옹기그릇에 받쳐 방에 장식해두리, 저 기어가는 것들의 힘.
  
  
  
  ('창작과비평' 2006년 봄호 수록)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