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집 고려대 교수가 한국의 언론에 대해 따가운 질책을 던졌다. 그는 "한국에서는 언론사 입사 시험을 '언론고시'라 부를 정도로 언론의 헤게모니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며 "영향력이 이처럼 크면서도 그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직종은 언론밖에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그는 "언론인들은 사회경제적 민주화에 대한 문제의식도 약하다"며 "민주적 성향의 언론인들조차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내용을 어떤 것으로 채울 것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고 신자유주의 등의 헤게모니를 쉽게 수용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최장집 교수는 지난 13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언론광장(상임대표 김중배) 송년의 밤' 행사에서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와 언론의 역할'이라는 특강을 통해 이 같이 주장했다.
"민주화 이후 언론의 역할은 일종의 패러독스"
최장집 교수는 "민주화 이후 언론의 역할은 하나의 패러독스(모순)"라며 "과거 권위주의 시기에 언론은 국가 권력에 대항해 투쟁하는 민주세력, 시민사회의 대변적인 역할을 했지만 어느덧 사회는 질적으로 전환됐고 이 가운데 언론은 굉장히 다른 성격의 역할을 맞게 됐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경제성장과 시장가치가 사회를 지배하고 거대 기업의 영향력은 커진 가운데 보수 담론은 지배적이 됐다"며 "언론이 민주주의의 수호자라는 것은 분명 지난 시기에 해당되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거대 언론은 여론을 형성해 정치를 특정방향으로 주도하고 있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며 효율성과 생산성이라는 생산가치를 전파하는 데 있어 주요 역할을 한다"며 "민주주의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내용적으로 권위주의화 되는데 거대화된 언론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거대 주류언론이 시민사회에서 헤게모니를 쥐고 여론을 주도하는 반면 비주류·비판 언론의 성장은 지지부진하고 잘 안되는 대조적인 특징이 드러나고 있다"며 "비주류 군소언론들은 '정조'를 유지하려 노력하지만 이들과 권력의 관계는 민주화 이후 상당히 불편하고 애매하게 보인다"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민주화 이후 언론인들은 실존적 고뇌를 갖게 되는 듯 하다"며 "헤게모니를 수용하는 경우에도 충분치 못하고, 용감히 거부하고 운동적 열정을 유지하려 노력해도 제대로 되지 않는, 두 편이 다 만족스럽지 못한 불편한 상황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대안으로서 이상을 말하려 할 때도 현실적인 실현성이 상대적으로 적고, 구체적 대안 잡아내기도 어렵다"며 "그 상황에서 과거의 운동적 열정의 관성에 의존하기 쉽게 되는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건설에 언론은 어떤 역할 했나?"
이어 최장집 교수는 "민주화 운동을 통해서 권위주의를 무너뜨리는 데는 세계적으로 한국이 가장 강하지 않았나"라며 "이렇게 강경한 민주화의 전통이 있는 운동이 정작 민주주의를 건설하는 데에는 상당히 약하고 무력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권위주의 체계에서 경제적으로 성장한 것은 나름대로 하나의 모델을 만들었다고 본다"며 "그러나 분배와 사회복지의 가치가 배제되고 노동이 소외된 부정적 측면 동시에 수반했고 이것은 IMF 금융위기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가 해야 할 일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만들어낸 부작용을 해소하고 성장과 분배를 같이 가게 하는 것, 효율성을 약화시키지 않으면서 공정성을 강화하는 것, 사회적 불평등이나 빈곤문제, 양극화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지만 현재 추세로는 기득권의 이익과 중산층의 이해관계만 대변하는 상층편향적인 민주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이처럼 한국의 민주화 운동은 사회경제적인 민주화에 굉장히 약해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어떤 내용으로 채우고 이룰 것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고 이는 언론인들도 마찬가지였다"며 "그 결과 민주적 언론인들조차 민주화 이후 신자유주의 등 사회지배적인 헤게모니를 쉽게 수용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언론의 '변형'이 일어났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최 교수는 "TV나 인터넷 때문에 종래 언론의 역할 줄었다는 말을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언론의 헤게모니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커졌다"며 "대학에서는 '언론고시'라 말할 만큼 언론인이 되면 특권적인 지위와 큰 역할을 갖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대학 교수의 입장에서 보면 불과 몇 년 전까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사회의 실상은 더 모르던 학생들이 기자가 되면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면에서 그 글의 영향력이 너무 크다"며 "언론사에 들어간다 해도 특별히 공부하는 것 같지 않다"고 꼬집었다.
"야당이 집권당 된다고 주류 언론들의 권력이 확장될까?"
최장집 교수는 "현 정부의 실책이 워낙 많아서 주류 언론들의 패러독스가 현재로서는 떠오르지 않고 있지만, 만약 다음 대선에서 야당이 집권당이 된다면 주류 언론들의 권력이 확장될까"라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민주화 이후 사회에는 복잡한 힘의 균형관계가 얽혀 있다"며 "지금의 집권정부가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것도 아니고, 사회 전체의 힘의 관계는 민주화에 의해 상당히 변화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어느 면에서 보면 권력이 보수적인 정치세력에게 넘어갔을 때 한국 사회의 민주화로 인해 변화된 사회적 힘의 관계는 지금보다 더 큰 힘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보수 언론들이 압도적인 헤게모니를 통해서 여러가지 힘을 향유하고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호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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