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로 폭력을 휘두르는 형을 피해 다른 가족들이 몰래 이사를 갔다. 그러나 평온은 잠시뿐. 형은 곧 새로운 집으로 찾아와 행패를 부렸다.
형은 가족이 이사간 집 주소를 어떻게 알아냈을까? 간단하다. 동사무소를 찾아가 주민등록 등본만 떼면 된다.
"주민등록 등ㆍ초본을 가족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면…"
이런 사연을 담은 진정이 지난해 10월 국가인권위에 접수됐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개인이 자신의 주민등록 등ㆍ초본을 가족에게 공개하지 않기를 원하는 경우, 발급을 제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5일 행정차지부장관에게 권고했다.
인권위는 이날 "현행 주민등록법에 따르면 주민등록법상 직계 혈족 및 배우자 또는 동일호적 내 가족은 본인의 위임 없이 주민등록 등ㆍ초본을 발급받을 수 있으나 이를 제한할 장치는 마련돼 있지 않다"며 현행 주민등록전산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현행 주민등록법도 문제…주민등록전산시스템은 현행 법령 취지에도 못 미쳐
이런 문제 제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러나 행정자치부는 "주민등록표 전산관리 일원화 관련 규정을 정비하는 한편, 현행 제도의 운영상 나타난 일부 미비점을 개선·보완"하는 등 노력해 왔다며 더 이상의 개선은 어렵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현행 주민등록법에 주민등록 등ㆍ초본의 임의 열람·발급 제한 관련 조항이 있고(제18조 제5항) 동법의 시행령에도 '사유를 기재한 신청서 및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하여야 하며'라는 단서조항이 있지만, 이런 조항의 내용이 추상적이고 규제 범위가 포괄적이어서 직계혈족 및 동일호적 내의 가족에 의한 주민등록 등·초본의 교부 청구 제한은 미약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주민등록 등ㆍ초본 발급에 관한 법령을 둘러싼 논란은 이번 권고안의 초점에서 벗어난 것이다. 인권위가 주로 문제 삼은 것은 주민등록전산시스템의 운용방식이다. 인권위는 현행 전산시스템은 전국의 타 읍·면·동에서 실시간 자료 공유 및 임의 열람이 가능하도록 돼 있어서 사생활 침해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다.
권고안의 주요 내용은 현행 전산 시스템을 주민등록법 제18조 제5항의 취지와 내용에 부합하도록 개선하라는 것이다. 사생활 침해에 대한 고려 없이 설계된 현행 주민등록전산시스템은 현행 법령의 취지에도 배치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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