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별은 돌이킬 수 없는 수순이 됐다. 하지만 원만하게 이혼 합의서에 도장을 찍는 일은 여간 난망하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이 3일부터 열흘 간의 일정으로 해외순방 길에 오름에 따라 당청갈등은 '일시적 휴지기'로 접어든 반면, 열린우리당 내부의 논란은 점입가경이다.
가뜩이나 친노계-반노계의 갈등이 감정대립의 양상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마당에 오는 9일 정기국회가 마감될 예정이어서 양측은 당의 진로를 둘러싸고 접점 없는 논쟁을 벌여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친노-반노 대립 확산
신당파와 친노계 사이의 갈등은 이번주부터 본격적인 세 대결 양상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당 비상대책위는 향후 당의 진로와 관련된 보고 시점을 당초 예정됐던 9일에서 노 대통령의 순방이 끝나는 13일 이후로 연기하는 한편, 이번주부터 소속의원 전원을 대상으로 전당대회 개최 시기와 방법, 정계개편의 방향 등 쟁점들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설문조사는 순수하게 소속 의원들의 의견을 묻자는 취지라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수적 우위가 확실한 통합신당론을 재확인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당연히 비대위 자체를 불신하는 친노계는 이를 '통합신당 여론몰이'로 보고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참여정치실천연대, 의정연구센터 등 친노계는 국민참여1219 등 친노성향 모임과 연대해 '전국당원대회 준비위원회'를 구성해 신당파 중심의 정계개편 논의에 대한 맞대응을 예고했다.
이들은 기간당원제 폐지 무효화를 위한 1만 당원 서명운동을 진행하기로 했으며, 오는 5일 당원협의회장, 시도당 상무위원, 청년위원장 등을 중심으로 전당대회 준비위 구성과 비대위 해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누가 탈당할 것이냐
이같은 친노-반노 대립은 당분간 노무현 대통령의 당적 정리 문제를 축으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노 대통령이 탈당하는 방법과 신당파가 노 대통령 및 친노계를 당에 남겨두고 당을 떠나는 방식이 가능하지만, 간단하게 답이 나올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사수' 의지를 강조한 만큼 호락호락하게 스스로 당적을 포기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높지 않다. 창당정신 고수를 강조하며 현 지도부인 비상대책위의 해산을 요구해 온 친노계 역시 노 대통령과 함께 옥쇄투쟁을 벌여나갈 것으로 보인다.
친노계로서는 고분고분하게 당을 떠나는 것 자체가 신당파에 날개를 달아주는 행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친노계의 무기는 당원들을 중심으로 한 결집력이지 현역의원의 수가 아니기 때문에 탈당할 경우 파괴력도 그리 크지 않다. 친노계 현역 의원들은 20명 안팎이어서 친노계만으로는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신당파가 쉽사리 당을 포기할 것 같지도 않다. 개별적으로 탈당해 통합신당을 추진할 경우 위험부담이 작지 않다. '도로 민주당'을 위한 탈당세력이라는 멍에를 고스란히 감수해야 함은 기본이다. 헤쳐모여 식 신당을 원하는 고건 전 총리 쪽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 줄 가능성도 있다.
결별의 진통, 원인은 역시 돈 문제?
양측이 쉽게 갈라서지 못하는 것은 돈 문제 때문이라는 얘기도 오래 전부터 나왔다. 친노계나 신당파 공히 탈당 시 막대한 국고보조금을 포기하는 출혈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탈당을 결행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년에 정당에 배분되는 국고보조금은 568억 원. 그 중 절반인 284억 원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들에 배분되고, 비교섭 3당(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중심당)에 5%(28억4000만 원)가 배분된다.
나머지 198억 원은 의석수와 2004년 총선 당시의 정당 득표율을 기준으로 배분되는데, 우리당은 정당 득표율에 따른 배분액만 42억 원을 받게 된다. 우리당의 법통을 가진 쪽이 기본적으로 42억 원을 챙긴다는 얘기다.
여기에 의석수에 따라 '플러스 알파'가 추가된다. 현재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 139명을 친노계 20명, 신당파 119명으로 가정한다면, 친노계가 탈당할 경우 신당파는 정당득표율 배분액을 포함해 최대 170여 억 원을 챙길 수 있다. 이때 탈당한 친노계는 교섭단체를 구성한다는 전제 하에 100억 원을 받는다. 만약 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하면 30억 원 안팎으로 수령액이 대폭 줄어든다.
반면 친노계와 비례대표 의원 23명(이들은 탈당과 동시에 의원직이 자동 상실되기 때문애 분당 시 우리당 잔류가 유력하다)이 우리당에 남고, 신당파(96명)가 탈당하면 친노계는 159억 원, 신당파는 120억 원을 각각 받게 된다.
이처럼 누가 우리당의 법통을 쥐고 가느냐에 따라 챙길 수 있는 국고보조금 액수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어 어느 쪽도 쉽게 탈당을 결행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탈당할 경우에 신당파는 국고보조금에서 50억 원 가량을 포기해야 할 뿐더러 비례대표 의원들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친노계는 교섭단체 구성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한 지붕 아래 동거하며 내분 계속할 듯
이에 따라 마음은 이미 결별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양쪽이 한 지붕 아래 동거하며 내부갈등을 반복하는 기간이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내년 2월 전당대회에서 당 진로를 둘러싸고 양측 간에 사활을 건 대결이 빚어질 것이 불가피하다.
현재 당내 세력구조 상 신당파가 다수를 점한 것이 사실이고 기간당원제 폐지에 따른 친노파의 결집력도 느슨해 질 것으로 예상돼, 전대는 신당파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전대를 통해 통합신당의 대의명분을 취하려는 신당파의 계획이 순조롭게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전대를 통해 구성되는 새 지도부에 친노계가 최소한 1~2명만 포진해도 통합신당 추진에 상당한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전당대회 자체가 물리적 충돌의 장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음도 들린다.
이렇게 볼 때, 어떤 절차와 방법이 강구된다고 하더라도 어느 한 쪽이 순순히 당을 떠나는 시나리오는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변수는 노 대통령의 행보다. 이미 당적과 임기를 모두 내건 만큼, 노 대통령은 향후에도 이 두 가지 '정치적 자산'을 고리로 여야 정치권의 움직임에 개입할 것이 뻔하다.
또한 12월 원탁회의 결성을 공언한 고건 전 총리의 향후 행보, '독자생존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민주당의 움직임도 여권의 내분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결별이 예정됐다는 것과 어떤 과정을 거쳐 결별에 이르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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