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적 문제와 관련해 노무현 대통령의 태도가 공격적인 방식으로 급선회했다. 노 대통령은 30일 통합신당을 지역주의 회귀로 규정하며 "열린우리당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절(열린우리당)이 싫으면 중(신당파)이 나가라'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이틀 전 "가급적 그런 일(당적 포기)이 없도록 노력하겠지만 그 길밖에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28일)고 '탈당'을 시사하던 태도와는 180도 다르다.
치밀한 계산, 공격적 문제제기
노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대통령은 정치에서 손을 떼라"는 여당의 공격에 대한 반격이자 복잡하게 얽혀 온 당청 갈등을 '지역주의 대 反지역주의'의 단일전선으로 재편하겠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게다가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이 "신당추진은 지역주의가 아니다"고 수세적으로 반발한 것은 당청관계 논란의 핵심 의제를 대번에 '지역주의 문제'로 옮겨놓는 데에 일조했다. 열린우리당 스스로 노 대통령이 설정한 의제 안으로 고분고분 걸어들어가준 셈이다.
지역주의에 관한 노 대통령의 발언에선 자신감이 물씬 묻어났다. 노 대통령은 "1990년 3당 합당 때에도, 1995년 통합민주당 분당(새정치국민회의) 때에도 나는 지역당을 반대했다. 그리고 지역당 시대를 청산하기 위해 열린우리당의 창당을 지지했다"고 말했다. 역사가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입증했다는 뜻이다.
이런 자신감은 단순한 호기가 아닌, 현재의 열린우리당 상황을 꿰뚫은 치밀한 계산이 작동한 것으로 분석된다.
정기국회가 끝나는 12월9일까지 우리당은 정계개편 논의를 공식적으로는 미뤄뒀다. 김근태 의장이 이끄는 비대위가 당의 중지를 모으기로 했으나 여의치 않다. 비대위 내부에 정계개편 논의를 이끌만한 동력이 없고, 각 세력마다 정계개편을 바라보는 시각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 대통령이 '신당 창당=지역당으로의 회귀'라는 등식을 분명히 함으로써 통합신당파의 '명분'을 건드린 대목은 일종의 '선수치기'다. '지역주의'를 고리로 여론전을 수행하는 한편, 이제부터 여권의 정계개편 논의에 본격적으로 개입해 들어가겠다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공은 우리당으로…
노 대통령의 이같은 메시지는 김근태 의장이 "정기국회가 끝나는 내달 9일까지 당청이 한 몸으로 갈 것인지, 중립내각의 길을 갈 것인지 선택하라"고 최후통첩을 보낸 데 대한 분명한 회답의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단순한 회답이 아니다. '나와 함께 창당정신과 우리당 깃발을 사수할 텐가, 아니면 지역주의로 가는 통합신당의 길을 택할 것인가'라는 식으로 문제제기의 방식을 완전히 노무현식으로 바꾸어 우리당에 선택을 압박한 셈이다.
친노계의 답은 명약관화하다. 의정연구센터의 이화영 의원은 "지역주의 극복은 노 대통령의 오랜 정치적 염원이었기 때문에 그 신념을 다시 밝힌 것이고, 전국정당이 있었으면 하는 심정을 밝힌 것"이라고 호응했다.
반면 노 대통령이 스스로 당적을 포기해주기를 내심 바랐던 우리당 다수에게는 곤혹스런 물음이 아닐 수 없다. 김근태 의장은 물론이고 정동영계를 비롯해 천정배 의원까지도 속내와는 달리 명분상으로는 '노 대통령을 끌어안고 가야 한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정계개편과 관련한 당의 진로를 마련해야 하는 이들의 입장에선 우회로가 없다. 단순하게 보면 노 대통령을 남겨두고 당을 떠나느냐, 노 대통령을 내쫓느냐 갈림길에 섰다는 얘기다.
전자는 필연적인 내분을 수반한다. '열린우리당 중심의 통합신당 추진'이라는 대전제도 무너진다. 자칫 고건 전 총리 등 우리당의 분열을 노리는 외부 세력에게 정계개편의 주도권을 내줄 수도 있다.
후자는 정치 도의적으로나, 명분으로나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설령 당이 직접적으로 탈당을 요구한다고 해도 '당 사수'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밝힌 노 대통령이 물러설 가능성은 많지 않다.
어느 쪽이든 쉽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라는 얘기다. 향후 진로와 관련한 열린우리당의 아노미가 길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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