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적막하고 기묘한 어느 하룻밤의 꿈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적막하고 기묘한 어느 하룻밤의 꿈

[핫 피플] <아주 특별한 손님>의 이윤기 감독 인터뷰

<여자, 정혜><러브 토크>의 이윤기 감독이 <아주 특별한 손님>이라는 '특별한' 영화를 내놓았다. 전작에서 현실적인 일상을 고른 호흡으로 풀어냈던 이윤기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 보경이 우연히 겪는 하룻밤의 일을 한 편의 소동극처럼 담아냈다. 도심의 중심에서 현대인들의 외로움을 찬찬히 조망하던 카메라는 도심의 한적한 외곽으로 옮겨졌다. 전작의 여주인공 캐릭터들, 곧 정혜와 써니의 쓸쓸한 표정은 스무 살 남짓한 보경의 얼굴에서도 발견된다. 보경은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두 청년에게 억지에 가까운 청을 받는다. 임종을 앞둔 아버지를 위해 수년 전 집을 나간 동창 명은의 대역을 해달라는 것. 그리고 하루 동안 보경의 여행이 시작된다. 이윤기 감독은 뜻밖에 이루어진 보경의 일탈을 예의 섬세한 매무새로 다듬는다. 이윤기 감독을 만났다.
이윤기 감독 ⓒ프레시안무비
- 일본 작가 다이라 아즈코의 단편집 <멋진 하루> 중 <애드리브 나이트>를 원작으로 했다. "쉬는 동안 영화, 책 등 이것 저것 보다가 이 단편 소설을 읽게 됐다. 내용은 가벼운데 메시지는 가볍지 않고 황당한 설정과 현실적인 이야기가 묘하게 맞물리는 느낌이었다. 소설을 읽다 보면 영화화하면 괜찮겠다 하는 것들이 있는데 이 작품도 그런 느낌이 드는 작품이었다. 영화가 필요로 하는 구조와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영화화하면서 원작과 각색의 비율을 6:4 정도로 했다. '원작의 느낌은 살리되, 내가 원하는 것은 확실하게 표현하자'라는 것이 소설을 영화화할 때 나만의 원칙이다." - 여자가 생전 처음 보는 남자들을 따라간다는 설정이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당연하다. 하지만 난 그런 일이 현실에도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이 설정을 더 황당하다고 느끼는 것은 보경의 행동이 현실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행보가 현실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당혹감을 느끼는 것이다. 현실에서 보면 지극히 현실적인 일인데 영화로 보면 비현실적인 느낌이 나는 것이다. 역으로도 마찬가지다.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판타지 같은 이야기들이 영화화됐을 때 관객들은 평범한 일상으로 받아들인다. 오히려 우리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로맨틱 코미디의 로맨스들이 더 일어나기 어렵다." - 보경은 <여자, 정혜>의 정혜와 <러브 토크>의 써니, 영신보다 더 용감하고 능동적인 여성으로 보인다. "전작의 구조에 비추어 보면 이번 영화에서는 보경의 앞부분 이야기가 생략됐다고 할 수 있다. 보경이라는 20대 초반의 여자가 겪는 생경한 현실의 느낌을 더욱 증폭시키고 싶어서 무언가가 새로 시작되는 시점을 영화의 출발로 삼았다. 하지만 보경이는 특별한 아이가 아니다. 보경도 정혜나 써니처럼 머뭇머뭇 하고 망설이다가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다만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변화를 모색한 것이 아니라 막연하게 올지 안 올지 모르는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뿐이다. 자기 살길을 알아서 찾아가는 의지가 강하고 능동적인 아이는 아니다." - 그럼 '보경'은 어떤 캐릭터 인가? 영화에서는 그녀의 직업 외에는 별다른 설명이 없다. "영화 속 인물을 설정할 때 주변의 인물을 많이 참조한다. 살아 오면서 봤던 사람들의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인상들을 떠올리면서 캐릭터를 만들어나간다. 이번 영화에서도 보경이라는 아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진 않았지만, 그렇게 현실의 살과 뼈를 붙여 이런 인물이라 생각하고 작업을 했다. 보경은 20대 초반이고 중류층의 평범한 아이다. 하지만 특별한 하자가 있는 것도 아닌데 치명적이지 않은 무기력에 빠져 있다. 자기가 뭘 해야 할지도 정확히 모른다. 공부를 잘 하진 않았지만 말썽 따위는 일으키지 않는 조용한 아이다. 그러나 뚜렷한 의지가 없다 보니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잘 적응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출근해야 하는데 버스 정류장에서 갑자기 집으로 돌아가곤 무서워서 회사에 전화도 못하고 결국 회사에서도 잘리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도 왜 자신이 그러는지 잘 모르는, 답답해하는 그런 인물로 생각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경처럼 뜻하지 않는 길로 들어서게 되는. 일종의 '방황'이다. 사춘기 시절의 방황과 다른 점은 이건 '평생의' 방황이라는 점이다. 아주 정적인 사람들에게도 방황, 작은 갈등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아주 특별한 손님 ⓒ프레시안무비
- 보경이 하룻밤을 보낸 마을의 주민들은 서로를 가족처럼 친근하게 대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알 수 없는 경계심을 품고 있다. 지나치게 간섭하다 순간 싸늘한 무관심을 내비치기도 한다. 매우 일상적인 사람들인 반면 매우 이상했다. "설정은 매우 비현실적이다. 그런 가족 구성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래서 배우들한테는 지극히 현실적인 연기를 주문했다. 연기도 비일상적이었으면 <아담스 패밀리>와 같은 공포영화가 됐을 것이다.(웃음) 관객들로 하여금 설정의 황당함과 인물들의 현실성, 두 가지가 맞물려서 발생하는 기묘함을 체험케 하고 싶었다." - 도심(현실)과 철저히 유리된 마을도 현실 같지 않다. "마을은 보경에게 <오즈의 마법사>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왔던 모험의 나라처럼 일상에서 벗어난 전혀 다른 세상이다. 마을에서의 하룻밤으로 보경은 아주 미세하나마 내면의 변화를 체험한다. 생경한 곳에서 보경은 긍정의 기운과 위안을 얻는다. 어쩌면 이 마을에서의 일들은 보경의 상상일 수도 꿈일 수도 있다. 보경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그녀만의 장소인 것. 그 안에는 죽음도 있고 '명은'이라는 자신이 모르는 존재가 있다. 그 곳에서 보경은 명은과 동화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명은은 보경일 수도 있다. 보경이 과거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 보경을 데려왔던 한 청년이 고기를 굽다 "한 쪽에선 생사가 왔다 갔다 하는데 다른데 선 배 채울 생각만 하고 있으니.."란 대사에서는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한 사람의 죽음을 둘러싸고 마을 주민들이 나누는 대화와 행동들은 굉장히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장례식에 가면 실제로 한쪽에서는 곡을 하고 한쪽에서는 술 마시고 웃고 화투 치고 노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의 장례 문화나 죽음에 대한 인식을 말하고자 한 영화는 아니지만 이 영화에서 죽음은 중요한 요소다. 특히 보경에게는. 거창하게 '성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 날의 죽음은 보경을 달라지게 한다. 하룻밤 안에 한 사람이 사라지면서 보경은 희미했던 자신의 존재감을 느낀다. 행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짧고 모호한 느낌이지만 '삶'을 깨닫게 된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언제나 삶 속에 있는 죽음에 관심이 많았다. <여자, 정혜>에서도 간접적이지만 정혜 어머니의 죽음이 나오고, <러브 토크>에서도 세 주인공들에게 죽음의 이미지를 부여하려 했다. 그렇게 타인의 죽음을 통해 현실 속에 자기 존재감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
이윤기 감독 ⓒ프레시안무비
- 보경이 하룻밤 동안 낯선 마을에서 겪는 이야기가 일종의 '소동극' 처럼 그려졌다. 마을 장면에서 영화의 리듬이 튀는 느낌을 받았다. "엄청난 계산을 하면서 이 영화를 기획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소재를 영화화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비현실적인 상황과 아주 현실적인 인물들이 조화 아닌 조화를 이뤘으면 했다. 영화의 장르도 미스터리에서 블랙 코미디, 드라마로 넘어간다. 영화의 모든 요소를 언밸런스 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보경의 마지막 고백도 생뚱맞지 않나.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러한 부조화들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생경한 기분을 경험케 하고 싶었다. 사실 이러한 시도는 작은 규모의 영화니까 가능했다.(웃음)" - 황당한 설정이지만, 이번 영화에서도 일상에 대한 이윤기 감독 특유의 세심한 묘사가 돋보인다. 특히 국을 끓이는 것을 가지고 여자들이 아웅다웅하는 부엌 신이라든가, 남자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거실에서의 논쟁 장면이라든가. "이런 황당한 이야기를 영화화할 때는 인물에 대한 일상적인 묘사가 필요하다. 이러한 장면들을 연출할 때도 개인적인 경험들을 많이 떠올린다. 온 가족이 한 집에 모였을 때 어떤 모양으로 무슨 대화를 나눴었나를 생각한다. 그러한 상황들을 시나리오에 집어 넣고 촬영할 때는 즉석에서 연출한다. 배우들과 충분히 이야기를 하고 그들에게 각자의 상황만 전달한 뒤 대사는 외우지 못하게 한다. 배우들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지 않겠나. 자기들만의 톤과 화법으로 말하는 것을 나는 선택만 할 뿐이다. 그런 즉석 대사들이 영화를 더욱 리얼하게 만든다. 사실 내가 여자들의 심리를 어떻게 알겠나." - 후반부에 보경이 자신의 양말을 벗고 명은의 양말을 신는 것은 일종의 의식인가? "아마도 보경은 집 나간 자식을 보지 못하고 죽은 명은의 어머니를 떠올렸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렸을 수도. 보경은 상표도 떼어지지 않은 양말을 보고 연민을 느끼다 곧 자기 연민에 빠진다. 명은이나 자신이나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명은에게 동화됐을 것이다." - 앞선 답변에서 미리 언급했던 것처럼 마지막 보경의 고백이 낯설고 약간 생뚱맞게 느껴졌다. "듣고 있는 청년도 보경의 느닷없는 고백에 불편함을 느낀다. 현실적일 수도 비현실적일 수도 있는 설정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까운 사람에게 하지 못하고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하고 싶을 때 있지 않나. 그 새벽은 보경이 하룻밤 만에 느꼈던 오만 가지 감정들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다. 어쩌면 지난 밤 명은의 옛 남자친구라 고백했던 청년의 이야기에 대한 화답일 수도 있다."
이윤기 감독 ⓒ프레시안무비
- 인생에 생기를 잃은 그녀들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언제나 마지막에는 희망의 실마리를 남겨두었다. 이번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녀들은 그 후 모두 행복했을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아주 현실적이고 비관적인 사람이라 해피 엔딩을 만들지 못한다. 그녀들이 해피 엔딩을 맞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 순간에 이야기를 끝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녀들이 현실에 있다면 여전히 똑 같은 굴레 안에서 가슴을 쓸어 내리며 살고 있을 것이다. 희망을 남기고 끝내는 이유는 단순한 나의 바램이기 때문이다." - 차기작 준비는 벌써 들어갔나? "이야기 중인 것은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논의된 것이 아니라 아직 확실하게 말해 줄 순 없다. 전혀 다른 장르 영화일 수도 있고 같은 패턴의 영화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이번엔 좀더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 생각이라는 것이다. 액션물이 될 수도, 멜로, 호러 영화가 될 수도 있다." - 그럼 내년 말 쯤엔 만날 수 있는 건가? "그렇게 됐으면 좋겠지만, 나는 비관적인 사람이라 그런 희망을 섣불리 품지 않는다. (웃음)" 사진: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