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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사람들의 삶,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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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사람들의 삶, 아름답지 않은가

[핫 피플] <그 해 여름>의 조근식 감독

2002년 <품행제로>로 충무로에 파장을 일으켰던 조근식 감독이 두번째 작품으로 잔잔한 멜로영화 <그 해 여름>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소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세세한 기억력으로 80년대를 재현해 낸 청춘코믹 영화 <품행제로>의 유쾌한 이미지가 대중들의 기억 속에 그만큼 인상 깊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병헌과 수애를 주인공을 내세운 멜로영화 <그 해 여름>은 멜로라는 장르에 충실한 영화다. 시끌벅적하고 수다스런 코미디였던 <품행제로>와는 확실하게 선을 긋고 간다. <그 해 여름>의 시대적 배경은 1969년. 아버지의 간섭을 피할 요량으로 억지로 농촌봉사활동을 내려 온 대학생 석영(이병헌)은 수내리 마을의 도서관 사서 정인(수애)을 만나 사랑을 키워나간다. 전국 각지를 돌며 촬영했다는 수내리의 수려한 자연 경관을 배경으로 석영과 정인의 사랑이 싱그럽게 펼쳐진다.
조근식 감독 ⓒ프레시안무비
<품행제로>의 80년대로부터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멜로적 감수성을 통해 60년대를 들여다 본 감독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조근식 감독을 만났다. - <그 해 여름> 개봉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데뷔작 개봉할 때보다는 덜 긴장되겠다. "아니다. 지금이 더 떨린다. <품행제로>가 개봉할 때는 데뷔작이었던 만큼 모험과 도전, 패기와 젊음으로 가득 차서(웃음) 앞뒤 잴 겨를이 없었다. <그 해 여름>은 두 번째다 보니 잡생각이 많아졌다고 해야 하나.(웃음) 내 영화에 대해서 한 발짝 떨어져 보이는 식견도 생기고 하니까 단점도 보이고 그런다. 아무래도 60년대가 배경이니까 10대, 20대 관객들에게 '노땅영화'로 비춰지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된다. 기대 반, 우려 반이다." - <품행제로>의 조근식 감독이 멜로영화를 찍는다고 했을 때 다들 의아해 했다. "<품행제로>가 워낙 속도가 빠르고 기교적인 영화였지 않나. <품행제로>뿐 아니라 최근의 영화들이 대체로 그렇지 않나. 영화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장치도 많아지고. 마치 관객들과 게임이라도 벌이는 것처럼 자꾸만 영리해져 가는 것 같다. <품행제로>를 끝내고 나서 영리하게 머리 쓰는 영화보다는 담백하고 섬세하게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장르를 찾다 보니 멜로와 만나게 됐다. " - 단순한 게 최고라는 생각은 거장들이 노년에 깨닫는 거 아닌가. "내가 너무 빨리 흉내냈나 보다.(웃음)" - 하지만 영화의 구성은 단순하지 않다. 현재의 이야기를 통해 과거를 회상하는 액자구도를 취하고 있다. "그건 이야기를 보다 다층적으로 풀어내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하나의 장르마다 관습적으로 축적된 공식과 규칙이 있지 않나. 그래서 장르적 관습을 통해서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다 보면 이야기가 너무 납작해진다고 해야 할까, 이야기가 너무 단순해 진다. 이야기를 따라가던 관객들의 시선을 다른 층위로 옮겨 영화의 이야기에 대해 복합적으로 접근하게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비단 <그 해 여름>의 액자 구도 뿐만 아니라 <품행제로>에서 중필(류승범)의 싸움을 과장해서 대단한 영웅담처럼 전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등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 해 여름 ⓒ프레시안무비
- <그 해 여름>의 현재 부분은 편집 과정에서 많이 삭제된 것으로 알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 해 여름>의 현재 부분을 설정한 이유는 60년대 벌어지는 석영화 정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과거와 현재의 교차 편집을 통해서 이야기를 한 발짝 떨어져 보는 식의 구성을 취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보고, 현재를 통해 과거를 보는 변화를 주고 싶었다. 그런데 현재 부분을 찍어 놓고 보니 내가 봐도 촌스러웠다. 이병헌씨의 노인 분장도 그렇고, 과거 부분에 비해 현재 부분의 이야기의 밀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현재 부분이 관객들이 과거에 펼쳐지는 두 연인의 사랑 이야기에 감정 이입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편집 과정에서 많이 들어냈다. 그 바람에 조연들의 아기자기한 이야기까지 많이 잘려 나갔다.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현대 관객들의 눈높이가 이렇게 세련되어 졌구나, 현대 상업영화라는 게 참 어려운 거구나, 나 자신이 아직까지 이야기를 주무르는 내공이 부족하구나 하고 느낀 점이 많다." - 이 영화의 과거 부분은 사실적이라기보다 현대 관객들이 받아들이기 쉽게 잘 가공이 돼 있는 듯한 느낌이다. "내가 원래 게을러서 고증을 잘 안 한다.(웃음) 다큐멘터리나 논문이 아닌 바에 사실적으로 가기 보다는 내 마음 속에 있는 풍경을 그리고 싶었다. 하나하나 부분에 신경 쓰는 대신 그 시대를 총체적으로 그려보고 싶었다. 내가 정말 그리고 싶었던 건 60년대라는 시대의 겉모습이나 말투가 아니라 그 시대를 통과해낸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조근식 감독 ⓒ프레시안무비
- 60년대를 살아 낸 사람들의 마음이란 어떤 건가. "우리 어머니만 봐도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종종 다른 사람들과 스스럼 없이 섞여서 이야기를 나누곤 하신다. 그만큼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경계심이 없는 거다. '솔직하다'는 말의 정의에 대해서도 예전과 지금이 다른 것 같다. 지금 사람들은 대인관계에 있어서 자신감이 있는 것을 솔직하다고 여기지만, 예전에는 마음을 따라가는 것을 솔직하다고 여겼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대할 때 영리함이나 이성이 작동하는 게 아니라 그만큼 마음을 잘 내주는 거지. 연애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지금 친구들은 '순정'이란 가치에 대해서 영리하지 못한 삶의 방식이라고 받아들이는 것 같다. 하지만 옛날 사람들은 다르다. 그러니까 가슴앓이도 그렇게 심하게 하는 거다. <그 해 여름>의 석영과 정인의 사랑을 통해서 그런 모습을 그려 보고 싶었다." - 영화가 1969년의 사회상보다는 석영과 정인의 사랑 이야기에 더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스펙터클한 사건이나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인물보다는 우리 시대의 많은 보통 사람들, 소시민들에게 더 관심이 많다. 나는 시대라는 덩어리의 주인공들,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보다 우리 사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쉽게 조명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리 나라 현대사가 어디 좀 스펙터클한가. 보통 사람들의 삶도 격변의 사회적 상황이나 조건들과 완전히 무관할 수는 없다. 다만 겨우겨우 시대를 쫓아오느라 힘든 거다. 난 그런 사람들의 삶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 그러고 보면 <그 해 여름>이나 <품행제로>나 모두 소박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 같다. <그 해 여름>의 진정한 악역이라고 할 만한 석영의 고위급 아버지는 아예 영화에 얼굴을 잘 비추지도 않는다. "위대한 인물이나 완전한 악역은 내게 어울리는 소재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보통 사람들이 가진 소박함, 슬픔, 귀여움, 능청스러움에 애정을 느끼고 관심을 가지는 편이다. 나부터도 그렇고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다 보통사람들 아닌가. 우리 나라는 언제나 전체화된 논리의 편을 들거나 아니면 그 반대에 서거나, 늘 양자택일의 선택을 요구하는 것 같다. 그런 환경 속에서 보통 사람들은 늘 눈치를 보며 살아간다. 흔들리면서 살아가는 거다. 그러다 보니 착하고 소박한 모습 중에 적당히 능청스러운 모습도 섞여 있는 거지. 그런 게 인간적인 모습 아닌가. 그래서 보통 사람들의 인생은 늘 희극과 비극이 섞여 있다." - 석영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는 의견도 있다. "석영의 아버지는 보통사람의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너무 자세하게 설명할 경우 개념적으로 읽힐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난 내 영화가 개념적으로 읽히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만의 영화라면 모를까, 상업영화에서 그런 부분은 과하게 가지 않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멜로에 집중한 앞부분과 시대가 표현된 뒷부분을 놓고 사람에 따라서 좋아하는 부분이 다를 거란 생각도 든다. 영화 전체적으로 볼 때 멜로와 사회성,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고 싶지 않았다."
조근식 감독 ⓒ프레시안무비
- 연기 지도를 할 때 배우들에게 많은 걸 맡기는 편이라던데 이병헌과 수애와의 작업은 어땠나. "영화를 찍으면서 제일 힘들기도 하고 제일 재밌기도 한 부분이 배우와 함께 작업하는 부분이다. 평소에 내가 머리 속에서 혼자 구상한 캐릭터나 드라마보다 배우들이 자신의 역할에 몰입한 순간에 표현해 내는 모습들이 훨씬 더 드라마틱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그런 모습들을 뽑아내기 위해서 배우들과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다. 내가 정해진 답을 주지 않고 배우들에게 같이 만들어가기를 요구하니까 배우들도 힘들어 하는 면이 있다. 이병헌 씨는 농담으로 '자립심이 생긴다'고 말하기도 했다.(웃음) 촬영 전 날 리딩이나 리허설을 많이 하는 편인데 일단 내가 보기에 울림이 없으면 다시 한번 해보기를 요구한다. 내가 배우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날 농락해줘'다.(웃음) 내가 가장 1차적인 관객 아닌가. 내 마음을 흔들지 못하는데 그 많은 관객들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겠는가. - <그 해 여름> 시나리오를 보기 전까지 <천재소녀와 척척박사>라는 멜로영화 시나리오를 작업하고 있었다고 들었다. "그게 내 다음 영화가 될 거다. 신나는 액션 멜로영화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품행제로> 끝내고 <그 해 여름> 내놓기까지 4년 걸렸다. 이번에는 그렇게 오래 안 걸렸으면 좋겠는데 성격이 워낙 게을러서 큰 일이다.(웃음)" 사진: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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