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 <삼거리 극장>이 오는 23일 개봉한다. 올해 충무로에서는 많은 뮤지컬 영화가 시도되었지만, 뮤지컬다운 품격과 완성도를 제대로 갖춘 영화는 <삼거리 극장>이 유일하다. 낡고 허름한 삼거리 극장을 배경으로, 사라진 할머니를 찾아나선 어린 소녀 소단이 극장 안을 배회하는 유령을 만나면서 난장을 벌이는 내용이다. 이탈리아 아트록 그룹 데빌 돌의 음악에서 착안했다는 뮤지컬 스코어는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계속 귓가에 아른거린다. 연출을 맡은 신인 전계수 감독과 작곡을 맡은 김동기 음악감독은 1990년부터 오랫동안 우정을 쌓아온 대학 선후배 사이. 허물없는 두 창작자를 만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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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계수 감독과 김동기 음악감독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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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거리 극장>에 대해 언제 처음 얘기하게 되었나? 전: 2003년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독립장편 영화 지원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자발적으로 시나리오를 쓰지를 않기 때문에(웃음), 옳다꾸나 하고 쓰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내가 삶이 우울해서 듣던 음악이 데빌 돌이었다. 그걸 듣다 보니 내용도 서사적이고, 어두우면서도 기괴한 활기가 느껴지고, 묘한 에너지가 있는 음악이었다. 사실 나는 음악을 넓게 듣지를 않는다. 돈이 없어서 한 번 사면 오래 듣는다. 데빌 돌은 과장을 안 보태고 100번쯤은 들은 것 같다.
- 데빌 돌은 언제 처음 알게 되었나. 전: 나우누리에 유럽음악 동호회가 있었다. 나는 활발한 회원은 아니었고, 누가 소개하면 그냥 읽어보고 그랬다. 거기서 소개를 받고 들어보니 너무 좋은 거다. 그래서 단편영화 끝내고 우울해 있던 차에, 프로젝트 공모에 지원하면서 데빌 돌의 음악에서 받았던 기괴한 활기를 뿜어내는 영화를 만들자, 하고 시작했다. 시나리오를 동기 형에게 보여주면서 데빌 돌 얘기를 했더니, 형도 데빌 돌을 좋아한다고 했다.
김: 대학 선배 중 하나가 아트록 마니아가 있었다. 그 형과 공군 장교로 함께 근무했는데, 어느 날 자기가 무슨 레코드점에 갔더니 점원이 데빌 돌을 들려주면서 "일단 한번 들으면 다른 음악은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그래서 들어봤더니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기는 느낌이었다. 거의 노래 한 곡이 40~50분에 달하는, 앨범 하나에 노래 한 곡이 들어있는 그런 CD였다. 수입판이 국내 들어오긴 했지만 곧 절판되곤 하는 작품이었다. 근데 내 기억으로는 <삼거리 극장> 시나리오를 받아 들었을 때는 데빌 돌보다는 <록키 호러 픽처 쇼>를 떠올렸던 것 같다. 그 즈음에 내가 그 영화를 봐서 워낙 강렬하게 남아있기도 했고, 당시로서는 영화음악이 언감생심으로 느껴졌지만, 만일 영화음악을 한다면 <록키 호러 픽처 쇼> 같은 작품을 하겠다고 생각했던 때였다. 나는 데빌 돌의 오페라틱하고 서사적인 면, 민속음악같은 멜로디에 매료됐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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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계수 감독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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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학교 다닐 때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나. 전: 전혀. 학교 때는 친구 단편영화의 시나리오를 써줬는데, 사실 영화를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당시 동기 형이 내가 끄적거린 낙서에 곡을 붙여주곤 했다. 사실 내가 영화를 만든다면 음악을 해줄 사람은 동기 형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일단 많이 아쉬운 소리를 안 해도 되고(웃음), 옛날부터 친했으니까. 주변 사람들이 다들 동기 형을 천재라고 했고, 저런 천재와 작업해야겠다고 생각했다.(웃음) 근데 영화를 하겠다고 생각했을 때, 단편을 만들 때부터 당연히 형이 음악을 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김:<삼거리 극장>은 시나리오 단계부터 너무 좋아했다. 엽기적이고 코믹한 부분이 <록키 호러 픽처 쇼>를 생각나게 했다. 캐릭터나 상황 전개에 별로 의문이 들지 않았고, 시나리오에 쓰여 있었던 뮤지컬 대사들에 내가 노래를 붙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노래 가사의 원형이 이미 초반 시나리오에 다 담겨 있었다.
전: 처음 시나리오에는 노래가 거의 20곡 가까이 있었다. 완성을 다 하지는 않았지만 형이 그 모든 가사에 노래를 만들었다.
- 장면마다 음악의 스타일과 장르를 고려해서 시나리오를 썼나? 전: 그런 것도 있었고, 준비하면서 굳어진 것도 있다. 극중 천호진 선배가 부르는 '야만의 환영' 같은 노래는 데빌 돌 음악 가운데 특정 부분을 고려했으며, '자봐라 춤을' 같은 곡은 모두가 즐겁게 놀 수 있는 느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시나리오를 쓰고 연구하면서 구체화 해나갔다.
김: 나는 계수가 쓴 시나리오를 단편부터 다 봤다. 이미 영진위 프로젝트에 내기 전부터, 시나리오를 받은 다음 제작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음악을 만들어봤다. 내 작업실에 계수가 놀러오면 보통 내가 악보를 그려서 기타를 치면서 그냥 들려주고 그랬다. 이후 독립영화로라도 만들까 하고 본격적으로 준비하면서 보통의 연출자와 음악감독처럼 작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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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기 음악감독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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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는 요소 중 하나는, 수록된 노래들이 저마다 스타일이 다르다는 점이다. 전: 처음부터 장르를 생각한 것도 있었고, 형과 얘기하면서 굳혀진 것도 있었다. 일단 처음에는 광의의 컨셉으로 데빌 돌을 염두에 두고, 다른 노래들에도 특정한 부분에는 데빌 돌의 어떤 요소를 적용하려고 했다. 데빌 돌이 보여주는 변화무쌍함처럼, 모든 노래들이 같은 느낌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레고리안 성가, 민속음악, 블루스 등 많은 장르가 등장하는 건 그런 이유다.
- 하지만 작곡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하려면 각 장르의 규칙을 모두 섭렵하고 거기서 새로운 음악을 써내야 하는 것 아닌가. 김: 원래는 그렇다.(웃음) 흉내는 낼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영화음악을 하는 사람은 모두 흉내를 낼 줄 알아야 한다. '자봐라 춤을' 같은 경우도 원래 라틴 댄스 음악에 가까운데, 그 노래를 만들기 위해 민해경의 '보고 싶은 얼굴' 같은 곡을 들으면서 흉내내고 그랬다.(웃음) 내가 록을 좋아하니까 블루스 같은 건 흉내를 더 잘 낼 수 있지만, '자봐라 춤을'은 <언더그라운드> 같은 영화를 참조하기도 했다. <크리스마스의 악몽>에 나오는 대니 엘프먼의 음악도 참조했고, '똥 싸는 소리' 등에서는 린킨 파크 류의 하드코어 록을 섞은 거다.
전: '정든 꿈'은 발라드이긴 한데 남미 음악 비트가 있다.
김: '밤의 유랑극단' '내게로 와' '소머리 인간 미노수'는 연극 음악을 주로 해왔던 황강록 작곡가가 만들었다. <삼거리 극장> 황윤경 프로듀서의 남동생으로, 뮤지컬 <불의 검>에 참여한 작곡가다. 전: 워낙 뮤지컬 넘버도 많았고, 뮤지컬 시퀀스가 아닌 경우에도 원래 내 컨셉은 두 시간 내내 음악이 흐르게 하는 거였기 때문에, 작곡해야 할 분량이 장난이 아니었다. 동기 형한테 과부하가 걸리기도 하고 그랬다. 강록이 형은 록비트보다는 민속음악적인 느낌이 있다. 그런 차이점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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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거리 극장 ⓒ프레시안무비 |
- 여러 노래들이 나오는데, 창작자로서는 개인적으로 어떤 노래를 선호하나? 전: 나는 일단 처음에 쓸 때부터 '야만의 환영'에 푹 빠졌다. 곡 자체의 완성도도 최고고, <삼거리 극장>의 색을 잘 드러내는 곡이기도 하다. 흥겨움으로 치자면 '똥 싸는 소리' '자봐라 춤을' 같은 게 좋고, 서정성 면에서는 '정든 꿈'이 좋다. '정든 꿈'은 가사가 좋다.(웃음)
김: 나도 '야만의 환영'을 좋아한다. 깨물면 열 손가락 다 아프지만, 내가 경외해 마지않는 데빌 돌 흉내를 조금이나마 냈다는 시도 자체가 좋다. 데빌 돌 음악 분위기가 영화 전체에 흐르면 정말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전: 나의 요구를 형이 거의 수용해줬다. 내가 가끔 황당한 요구를 할 때도 있었다. 개념어를 던져주고 음악을 만들어달라고 할 때도 있다. '초월' '귀여운 위선' 등등.(웃음)
김: 근데 작품 얘기를 함께 해나가다가 잘 안 풀릴 때 그런 식의 키워드를 제시해주면 음악 작업을 하기가 더 수월하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만든 음악이 경험적으로 봤을 때 서로 공유하는 바가 더 많았다.
-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함께 작업을 할 예정인가? 김: 나야 원하는 바다. 불러만 주면 언제든지.(웃음)
전: 음악 작업을 하기는 형이 가장 편하다. 다른 작곡자는 아는 사람도 없고.(웃음) 형이 음악 외적으로도 우울해 할 때 기분을 즐겁게 해주는 능력이 있다. 늘 함께 하고 싶은 작곡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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