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할 사회지도층의 표리부동이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다. 오늘날 선진국 행세를 하는 서구사회의 ‘고귀한 책무(노블리스 오블리제=지위가 높을수록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더욱 강조하는 철학)’정신과는 정반대에 서있는 표리부도한 지도층의 행태는 대한민국의 진정한 선진국 진입을 막는 장애중의 장애요소다.
공영방송 KBS 이사회의 이사장직을 맡고 있는 지명관 교수는 최근 한 신문사 기고를 통해 ‘KBS 사장인선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식의 뜻을 공개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인사청탁은 패가망신을 당하게 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주장은 거짓말이 되고 관련자를 문책해야 한다.
사실 확인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KBS 이사회를 통해 현 사장을 뽑는데 앞장 선 이사장이 삼일도 채 안돼 ‘왜 이런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을 하는가’라는 점 자체가 의문이다. 설혹 외부의 인사청탁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그런 것을 막고 공정하게 사장을 뽑아달라고 이사회가 존재하고 이사장이 있는 것이다. 만약 인사로비에 휘둘렸다면 자신의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고백이 되는 것이다. 뽑을 때는 '지성과 전문성을 갖춘 분'이라고 발표한 이사회가 돌아서서 ‘청와대 인사청탁에 의해 뽑힌 사장'이라는 식으로 주장하고 나선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국민을 우롱한 80대 ‘노욕’의 표리부동 행태는 용기 없는 지식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국방의 의무는 어떤가? 역대 정권의 장관급 인사들마다 국방의 의무 수행률이 일반 시민들보다 훨씬 낮다. 참여정부의 장관급 인사들 역시 약 40%가 어떤 이유로든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국민의 삼대 의무 중 대표적 의무로 꼽히는 국방의 의무가 사회지도층은 외면하고 일반 시민에게만 강요되는 사회에 ‘자주국방’은 없다. 그래서 대학가에서는 현역으로 군에 가는 학생을 ‘어둠의 자식들’이라고 비아냥하고, 군 면제를 받아내는 학생을 ‘신의 아들’이라고 칭송한다. 농담 같은 이런 말이 상징하는 것은 지도층 인사들이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사회에 군은 존재해도 형식적이며 전쟁이 나면 도망가기 바쁘게 된다는 것이다.
일부 언론인들의 타락상도 우리를 슬프게 한다. 특히 영향력이 막대한 중앙신문사, 방송사 기자들이 정치권과 유착돼 선거철에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씩 ‘촌지’를 수수했다는 검찰의 최근 발표는 믿기 어려울 정도다. 검찰은 소위 ‘세풍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10여명의 기자, 현역국장급 간부들이 이같이 뇌물을 받았다는 내용을 밝히면서도 공소시효를 들먹이며 수사를 포기했다. 명단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전국언론노조 MBC 본부는 지방 MBC 관계자가 세풍 연루 언론인으로 거명되는 데 대해 검찰에 명단 공개와 재수사 촉구를 결의하고 나섰다고 한다. 언론노조는 변호사의 자문을 받아 5월 초 서울지검에 고발장을 접수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강병국 변호사는 ꡒ업무상 횡령인지, 그냥 횡령인지에 따라 공소 시효가 다르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있고, 돈을 준 사람이 외국에 나가 있어 공소시효가 정지됐다면 돈을 받은 사람도 함께 정지돼야 한다ꡓ며 ꡒ검찰에서 고발을 각하할 경우 항고와 재항고까지 가능하다ꡓ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언론사들도 침묵으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 공정한 보도를 생명으로 해야 할 언론인들이 정치권으로부터 돈을 받고 곡필을 휘둘렀다면 ‘창녀’보다 나을 것이 없다. 표리부동한 소수의 언론인들 때문에 언론인들 모두가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다는 것은 한국언론을 위해서도 용납될 수 없다.
표리부동한 지도층에 국회의원들이 빠질 수 없다. 법안심의에는 나태한 모습을 보이는 국회의원들이 최근 보궐선거로 당선된 유시민 국회의원의 평상복 복장에 대해서는 야유를 퍼붓고 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회에 언제부터 서양식 양복만이 입장이 가능하고 선서도 가능하다는 법을 만들었나. 껍데기만 검은 양복에 검은 고급차로 치장하고 골프나 치러 다니다 이권에 개입하고 결국은 철창행으로 가는 ‘국민의 대표’ 일부 국회의원들의 표리부동한 행태가 지겹다. 국회의원들의 회기중 자리 빠지기, 법안심의중 먼저 사라지기, 토론회나 공청회에서도 중간에 도망가기 이런 것이 습관처럼 국회 퇴장으로 연결된다. 학생들에게는 수업 빠지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권하면서 자기들은 조금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퇴장해버린다.
말로는 학연과 지연에서 탈피하라고 주장하면서 인사선발에서는 ‘학교와 출신부터 먼저 따지는’ 잘못된 관행을 답습하는 지도층들의 표리부동함. 나이 70, 80 넘도록 해먹었으면 ‘해먹을 만큼 해먹었다’. 이제는 제발 떠나라. 지금 이 땅은 40, 50대의 젊은 실업자, 명퇴자들이 거리를 헤매고 있다. 표리부동한 당신들 이제는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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