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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 포인트] 후회하지 않아

감독 이송희일 | 출연 이영훈, 이한, 김정화 제작 청년필름 | 배급 CJ 엔터테인먼트 등급 18세 관람가 | 시간 114분 | 2006년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 나타났다. <후회하지 않아>는 우리 영화의 역사에 보기 드문 퀴어 멜로드라마다. 단지 퀴어 멜로드라마라는 이유만으로 이 영화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수년 전 <로드무비>에서도 우리는 이미 남자들끼리의 사랑을 목격한 바 있지 않은가. 한데 <후회하지 않아>의 화법은 <로드무비>보다 훨씬 솔직하고 용감하고 직설적이다. 대중 관객의 속된 취향에 굴복하지 않으면서 하고픈 이야기를 똑부러지게 해낸 이송희일 감독의 배짱이 놀랍다. 더구나 <후회하지 않아>는 상당히 완성도 높은 멜로드라마다. 저예산 HD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임에도 미학적 고민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이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처럼, 거스 반 산트의 <아이다호>처럼, 왕가위의 <해피 투게더>처럼,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모두의 마음을 움직이는 동성애 영화가 비로소 한국영화계에 등장한 것이다.
후회하지 않아 ⓒ프레시안무비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대리 운전을 하며 살아가는 청년 수민(이영훈). 시골에서 상경해 열심히 살아가려는 그에게 어느 부유한 남자가 접근해온다. 알고 보니 그는 수민이 일하는 공장 사장의 아들 재민(이한)이다. 수민은 요람부터 자신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재민을 멀리하려 하지만, 수민에게 첫눈에 반한 재민은 집요하게 구애하기 시작한다. 결국 수민은 공장을 그만두고 종로통의 호스트 바에 취직하지만, 재민의 사랑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재민은 이미 결혼하기로 한 약혼녀가 있는 상태. 재민과 수민의 사랑은 막다른 골목을 향해 치닫는다. 사실 <후회하지 않아>는 줄거리를 줄줄 읊다 보면 참 유치해지기 쉽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이성애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TV 드라마에서 닳도록 봐왔던 것이다. 하지만 똑같은 멜로드라마의 프레임을 동성애자 집단에 적용할 때 얘기는 사뭇 달라진다. <후회하지 않아>의 영리한 점 가운데 하나는, 70~80년대 유행했던 호스티스 멜로드라마의 이야기 구조를 그대로 적용시킴으로써 한국영화의 역사를 온몸으로 끌어안았다는 데 있다. 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야기는, 그간 우리 영화에서 한 번도 제대로 재현되지 않았던 동성애자 집단에 적용됨으로써 전혀 다른 정서적 효과를 자아낸다. 성적 소수자들의 사랑에서도 계층간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며, 바로 그 계층성으로 인해 삶의 존엄성과 순수한 사랑의 감정이 훼손당하는 비인간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의 편견에 맞서야 하고, 자신과 처지가 전혀 다른 부유한 남자를 사랑해서는 안된다는 정서적 압박에 시달리는 수민은 우리 사회 주변인 중의 주변인인 셈이다. 무엇보다 <후회하지 않아>는 재미있다. 한국영화에서 최초로 묘사되는 호스트바의 생생한 언어와 풍경들은, 대다수 관객들이 몰랐던 영역이기에 더욱 신선하고 대담하게 느껴진다. 수민과 재민이 펼쳐 보이는 사랑의 몸짓은 여느 이성애자 커플의 그것에 못지않게 애틋하고 따스한 정기를 느끼게 한다. 사회의 편견과 세대의 벽에 부딪혀 결국 그들의 관계에 금이 가게 될 때 덩달아 안타까운 심정이 들 수도 있다. 만일 이 이야기가 재민이 기존의 이성애 / 가부장 / 자본가 중심주의의 사회 질서에 편입되는 것으로 끝났다면, <아이다호>의 답습에 불과한 것으로 폄훼하게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아>는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보는 이에게 강펀치를 날린다. 기존의 장르적 관습에 익숙한 관객들이 뻔히 예상하는 수준까지 이야기를 끌고 간 뒤, 갑자기 급격하게 방향을 선회하는 것이다. 감독이 실화에 근거해 설정했다는 이 클라이맥스의 방향 전환은, 상당히 충격적이면서 이 영화를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든다. 익살맞은 마지막 장면은 의문과 여운을 동시에 남긴다. 그 범상치 않은 충격에 공감할 수 있다면, 이 영화를 열렬히 지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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