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마인드를 접목한 대학운영으로 널리 알려진 어윤대 고려대 총장이 13일 차기 총장 후보들을 상대로 한 이 학교 교수의회의 총장자격적부심사에서 탈락했다. 이번 탈락은 어 총장의 강력한 연임 의사 속에 나온 결과여서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막걸리에서 와인으로"…힘받은 'CEO 총장론'
2003년 2월 취임한 어 총장은 'CEO 총장'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그는 전통적인 고려대 이미지 대신 세련된 국제 신사의 이미지를 심는 데에 주력했다. "고려대의 상징을 막걸리에서 와인으로 바꾸겠다", "'민족 고대'가 아니라 '세계 고대'로 불러달라"는 등의 발언은 이런 노력을 잘 나타낸 것이다.
어 총장의 'CEO 총장' 행보는 단지 이미지 변신 노력에 그치지 않았다. 3500억 원의 발전기금을 유치했을 뿐 아니라 삼성과 POSCO, LG 등 기업체의 후원을 받아내 교내 전체 건물의 40% 가량을 신,증축 하는 등 대학의 외형적 측면에서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대학 운영에 있어서도 문과대 일부 학과를 제외한 전 학과에서 영어 강의를 하도록 권유하고, 신규 교수 임용 시 제출 논문 수 확대정책을 펴는 등 '시장 친화적 교육', '기업 마인드에 따른 운영'을 강조했다. 한 고려대 교수는 "어 총장이 고려대의 위상 제고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부인하는 이는 드물다"고 어 총장의 성과에 대한 내부 시각을 전했다.
이런 노력에 힘 입어 최근 고려대가 각종 대학 평가에서 오랜 맞수였던 연세대를 앞선 것으로 나타나자 어 총장의 'CEO식 대학 운영'은 다른 대학으로 급격히 확산됐다. 2000년대 이후 가속화된 대학 간 몸집 불리기 경쟁이 급류를 타게 된 것이다.
"정리해고하듯 학생 내쫒나"…'CEO 총장론'의 그늘
하지만 어 총장의 CEO식 대학 운영이 남긴 부작용 역시 만만치 않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번 총장 적부심사 탈락은 이런 평가에 따른 것이라는 지적인 것이다.
예컨대, 전통적인 고려대 이미지를 탈피하는 차원을 넘어 노골적으로 '부자 대학'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과도한 등록금 인상이 논란이 된 상황에서 "연간 대학 등록금을 최소한 1500만 원은 받아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 국제화 교육을 강화한다며 무리하게 영어 강의를 추진한 것, 인문학처럼 시장 논리를 도식적으로 적용하기 힘든 학문 분야에도 효율성에 따른 평가 척도를 적용한 것 등이 학교 안팎에서 반발을 샀다.
어 총장의 'CEO식 대학 운영'이 도마에 오른 결정적 계기는 지난 4월 발생한 출교(학적 말소) 사태다. 당시 고려대 당국은 학내 소요를 이유로 재학생 7명의 학적을 말소했다. 출교 조치는 이 학교 역사 상 초유의 것이어서 '지나치게 가혹한 처벌'이라는 반발이 일었다. 이 학교의 한 학생은 "학내 소요를 이유로 학생을 내쫒은 출교 조치는 어 총장이 추구하는 CEO 마인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고 이야기했다.
또 지난해 이건희 삼성 회장에게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수여하며 빚어진 논란도 'CEO식 대학 운영'에 대한 반발 정서를 키우는 데 한몫 했다.
전체 교수의 79% 참가한 심사에서 절반 이상이 '부적격' 투표
고려대 차기 총장은 자격적부심사를 통과한 후보들 가운데 총장추천위에서 표결을 통해 2명을 뽑으면 재단이 이 중 1명을 총장으로 선임하는 절차를 거쳐 선출된다. 총장추천위는 단과대 대표 교수 15명, 재단인사 4명, 교우회 5명, 교직원 노조 3명, 학생(안암ㆍ서창ㆍ대학원 총학생회장) 3명 등으로 구성돼 있다.
고려대는 어 총장이 선임된 2003년부터 이런 방식으로 총장을 뽑았다. 어 총장이 탈락한 자격적부심사는 총장 선출 과정의 첫 번째 단계로서 전체 교수들이 참가해 1인당 부적격자를 최대 5명씩 지목할 수 있는 '네거티브' 방식의 투표다. 이때 전체 투표 수의 과반에 해당하는 부적격표를 받은 후보자는 자동 탈락하게 된다. 13일 자격적부심사에는 전체 교수의 79%가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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