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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삼이 가진 자들의 전유물 돼선 안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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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산삼이 가진 자들의 전유물 돼선 안 되죠"

산삼학회, 산삼 종보전 씨 뿌리기…"산삼 연구 시급"

"낙엽을 걷어내고 부엽토를 5cm가량 파낸 다음에 거기에 산삼 씨앗을 한 개나 두 개씩 넣고 다시 부엽토와 낙엽을 덮어주십시오. 너무 얕으면 여름 장마 때 빗물에 씻겨내려갈 수 있습니다. 씨앗을 심는 간격은 30~50cm가 좋습니다."

11일 나무들이 땅에 제 나뭇잎을 덮어 겨울 채비를 하고 있는 경기도 포천시 광릉 숲. 그 중에서도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깊은 숲에서 ㈔한국산삼학회와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산기술연구소가 주관하는 '산삼 종보존을 위한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산삼 씨 뿌리기' 행사가 열렸다.

산에서 자란 삼은 '장뇌삼' 아니라 '산양삼'

이날 숲에 뿌려진 종자는 천종산삼 씨앗 30여 개, 산양삼(山養蔘) 씨앗 700여 개 및 묘종 53개 등으로 강원도 인제에서 13년째 산양삼을 재배하는 '하늘내린 산삼'의 임수택 대표가 기증했다. 흔히 산에서 재배한 삼을 '장뇌삼'(長腦蔘)이라고 부르지만, 장뇌삼은 '줄기와 뿌리를 잇는 부분인 뇌두(腦頭)가 긴 삼'을 말하는 것으로 삼의 모양을 말하는 용어다. 따라서 '산에서 재배하는 삼'이라는 표현으로는 '산양삼'이 맞다.
▲ 11일 산삼 종보존을 위한 복원사업으로 광릉 숲 모처 민간인이 출입할 수 없는 곳에 산삼 씨앗을 심었다. 산삼 심는 방법을 설명하는 임수택 대표.ⓒ프레시안

임 대표는 씨앗을 두 가지 봉투에 나눠 준비했다. 한 봉투에는 천종산삼의 씨앗이, 다른 한 봉투에는 산양삼의 씨앗이 들어 있었다. 육안으로는 두 씨앗을 구분할 수 없지만, '산삼 씨앗'이라니 학회원들이 신기한 듯 바라봤다. 산삼학회원들도 쉽게 구경할 수 없는 '귀한 씨앗'이기 때문이다. 임 대표는 "30~40년 수령의 산삼 7주(株)를 갖고 있고, 이 산삼들에게서 매년 20개 정도의 씨앗을 받는다"고 했다. 임 대표에 따르면 인삼은 5년이 지나면 한 주로부터 한 해에 30개 정도의 씨앗을 받는데, 산삼이나 산양삼의 경우 보통 7~8년이 지나야 씨앗을 받을 수 있고, 수량도 한 주에 3~4개밖에 안 된다.

씨앗에 대한 설명이 끝난 뒤 10여 명의 학회원들은 호미를 들고 임 대표의 뒤를 따랐다. 임 대표는 능숙하게 숲 이곳 저곳을 헤집고 다녔다. 삼은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는 식물이 아니다. 임 대표는 "직사광선이 들어 건조하면 안 되기 때문에 산의 동북(東北)면이 삼이 자라기에 좋고, 배수가 잘 돼야 하기 때문에 경사면을 찾아 씨를 뿌려야 한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또 "소나무 주변에서 자란 삼이 모양이 좋다"고 귀띔했다. 삼 씨앗을 주로 상수리나무나 참나무, 잣나무, 전나무, 소나무 주변 등 네 곳에 주로 뿌리는데 그 중 소나무 주변이 제일 좋았다는 것이다. 임 씨는 "소나무 주변에서 자란 삼이 쥐 피해도 더 적다"고 덧붙였다.

산삼의 천적, 쥐…그리고 사람.

산삼에도 천적이 있었으니 그것은 쥐였다. 임 대표에 따르면 두더쥐도 산삼을 갉아먹는다고는 하는데, 삼이 뿌리가 내리기 시작하면 쥐가 그렇게 잘 파먹는 다는 것이다. 임 씨는 "쥐 피해와 병해 등을 감안했을 때 씨앗 100개를 뿌리면 5~10개 정도만 온전히 자란다"고 했다.

임 대표는 "쥐 피해를 막기 위해 쥐약을 놓기도 하고, 땅 속에 파이프를 묻어 진동을 주는 방식으로 쥐를 내쫓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쥐 말고 산삼의 천적이 또 있으니 바로 사람이다. 특히 산삼이 '일확천금'의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마구 산삼을 캐내는 바람에 야생 산삼은 '씨가 마를' 정도이고, 산양삼도 특별한 경계시설을 갖추지 않으면 도둑 맞기 일쑤다.

산삼연구센터의 밝훈 박사는 "산삼, 송이, 상황버섯 등 몸에 좋다고 소문만 나면 사람들이 너도나도 산에 몰려가 캐내는 바람에 임산물 자원이 황폐화되고 있다"며 "남의 산에 들어가 무엇이든 채취해 오는 것은 절도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 산삼은 직사광선이 들지 않는 울창한 숲의 경사면에서 잘 자란다. 산삼 심을 장소를 물색 중인 산삼학회 회원들.ⓒ프레시안

한반도 산에서 자란 인삼이 진짜 '고려인삼'


본디 '고려인삼'이라고 하면 산삼을 말했으나, 고려시대부터 남획이 이뤄지며 야생 산삼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에 산삼의 씨앗을 받아 재배하는 산양삼 분야가 개척됐으나 수요의 팽창, 산림의 황폐화 등으로 인해 마침내 인삼이 밭에서 재배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밝 박사는 "고려인삼 종자라도 미국이나 중국에 심는다고 고려인삼이 되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밝 박사는 "수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중국 사람들이 우리나라 산에서 자란 고려인삼을 으뜸으로 쳐줬던 것은 그들이 고려인삼 재배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다"면서 "고려인삼이 제 효능을 발휘하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토양과 기후적 특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밭에서 비료와 농약에 의지해 자라는 밭 재배 인삼은 우리 조상들이 부르던 '고려인삼'과는 다소 멀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산삼에 대한 연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밝 박사는 "우리나라는 고려인삼 연구에서 매번 '사포닌'만 강조하는데, 사실 사포닌은 뿌리보다 잎에 더 많이 있고, 서양삼은 종류가 적어서 그렇지 함량에서는 고려인삼보다 훨씬 많다"며 "사포닌 외의 성분 효능을 알아내는 연구가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밝 박사는 또 "정부는 인삼 포장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데, 진짜 필요한 것은 인삼의 효능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고려인삼'이 서양삼과 중국 재배 삼과의 차이가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주는 것"이라며 그 차이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산삼이라고 강조했다.

"산삼 연구하려 해도 있어야 하지…가진자들 전유물 돼서야"

산삼을 연구하려 해도 개체수가 워낙 적고, 구한다 하더라도 비싸서 연구할 엄두를 내지 못 한다. 한국산삼학회 김용환 회장은 "설악산과 오대산 일대에서 산삼을 많이들 캤다고 하는데, 사실 증조부 대에서 뿌린 산양삼의 씨앗이 자란 것일 가능성이 크다"며 "그러나 일제시대부터 산림이 황폐화되고, 그나마 남은 것마저 '산삼=일확천금'이라는 인식에 의해 남획돼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산삼학회는 조만간 우리나라의 산삼을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등록 신청을 할 계획이다. 과거 '고려인삼'에 관심이 많은 한 러시아 학자가 지난 2000년 고려인삼을 CITES에 등록할 것을 우리 정부에 제안했으나, 우리 정부는 "재배삼 거래에 혼란을 초래한다"며 제안을 거부했었다. 그러나 세계 삼 시장을 석권한 미국은 야생삼을 CITES에 등록시켜 철저하게 보호·육성하고 있다.
▲ 13년짜리 산양삼. 재배자가 경동시장에 가져갔다가 30년근이라는 감정을 받을 정도로 국내 산삼에 대한 감정 수준은 감정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프레시안

김 회장은 이어 '산삼의 과학화'를 주장했다. 김 회장에 따르면 시중에 나도는 '50~100년짜리 산삼'은 가짜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산양삼을 재배하는 임 대표도 "시험 삼아 13년 근 산양삼을 서울 제기동 약재상에서 감정을 받게 했는데, 30년 근이라는 감정을 받았었다"고 전했다.

김 회장은 또 "수령에 따른 산삼의 효능이 무엇이 다른지 한 번도 연구가 안 된 것은 물론이고, 산삼의 수령을 측정하는 것조차 과학화되지 않아 사람들에게 혼란을 안겨주는데다, '사기'를 가능케 해 산삼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또 "적게는 수백만 원, 많게는 수억 원까지 하는 산삼 가격 때문에 산삼이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 되고 있다"며 "산삼 종을 보존하고 재배기술을 연구해 더 많은 사람들이 보다 쉽게 산삼을 복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려인삼', 수천 년 동안 우리 조상들이 가꿔온 브랜드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산양삼을 육성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밝 박사는 "마오쩌뚱이 죽기 직전 인삼 주사를 맞을 정도로 중국 사람들에게는 고려인삼이 영약이라는 인식이 깊다"며 "이는 수천 년에 걸쳐 홍보돼 온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조상들이 남겨 준 소중한 가치"라고 말했다.
▲ 산삼을 발견하면 무조건 캐 먹을 것이 아니라 종을 보전하고 보급할 수 있는 연구개발이 시급하다.ⓒ프레시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홍콩 등의 세계 인삼시장에 '고려인삼'의 입지는 날로 좁아가고 있다. 가격이 싼 수삼 시장에서 미국이나 캐나다에 자리를 내준 것은 물론이고 아직까지 우리나라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고급 삼' 시장에서도 미국의 야생삼과 숲 재배삼이 급부상하고 있는 중이다.

국내에서도 기존의 '산삼' 이미지에 '친환경' 작물의 인기가 높아지며 산양삼을 재배하는 농가들이 고수익을 올리고 있다. 밝 박사는 "우리는 다른 나라들이 삼의 가공 기술만으로는 따라올 수 없는 천혜의 산삼 재배 풍토를 갖추고 있다"며 "국가적으로 장기적 안목을 갖고 산삼 연구에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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