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4년부터 산업연수제 운영을 대행해 온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에 대해 국민감사가 청구됐다.
인권단체연석회의,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주노총 등으로 구성된 '이익집단의 고용허가제 개입반대 공동투쟁본부'는 7일 서울 서대문 선교교육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중기중앙회는 연수관리비와 연수생의 이행보증금 귀속분 등으로 96년부터 2005년까지 942억 원의 수입을 벌어들였으나 이에 대한 지출내역을 명확히 밝히지 않아 유용 의혹을 받고 있다"며 국민 400명의 명의로 감사원에 국민감사를 청구한다고 밝혔다.
공동투쟁본부는 정부가 산업연수제 당시 연수추천기관이었던 중기중앙회 등에 다시 고용허가제의 대행업무를 맡기는 방안을 발표하자 이에 반대하며 지난달 11일부터 서대문 선교교육원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고용허가제를 제2의 산업연수제로 전락시키려나"
공동투쟁본부가 중기중앙회에 대한 국민감사를 서둘러 청구하게 된 까닭은 2007년 1월부터 고용허가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때문이다. 고용허가제는 비리와 인권유린으로 비난받아 온 산업연수제를 대체하는 제도로 2003년 7월 도입됐으며 그간 산업연수제와 병행·실시돼 왔다.
공동투쟁본부는 "지난 13년 동안 한국에서 '현대판 노예제도'로 불렸던 산업연수제도는 수많은 비리와 부작용을 양산했고 이 과정에서 중기중앙회의 경우 연수 관리 명목으로 수백억 원의 수입을 올리는 등 파행과 난맥상이 계속됐다"고 밝혔다.
중기중앙회는 그간 연수추천단체로서 직무유기와 연수관리비 등을 유용했던 사실에 대해 국회 및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여러 차례 지적을 받았다. 지난 2001년 중기중앙회는 연수생의 관리, 교육, 복지명목으로 사용하도록 규정된 연수생 이행보증금 귀속분으로 임직원의 차량을 구입하는 등의 행위로 2001년, 2002년 국정감사에서 시정요구를 받은 바 있다.
또 2005년 '연수애로상담일지'에서 중기중앙회가 1년간 직접 진행한 전화 상담은 462건 중 56건에 불과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법무부의 2005년 연구 보고서가 "산업연수제 대행기관에서 연수생 사후관리를 사실상 송출기관에 위탁하면서도 사후관리비를 징수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중기중앙회는 지난 1999년 국정감사에서 연수생 이탈을 막기 위해 강행됐던 약 38억 원의 강제적금을 돌려주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연수생과 은행 사이의 문제'라는 이유로 지금껏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태다.
이같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중기중앙회가 보이는 행태는 오히려 의혹을 더 짙게 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열렸던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이 중기중앙회가 연수생에 대한 사후관리비의 지출내역을 제대로 제출하지 않은 이유를 따져 묻자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민감한 사안이다", "예민한 시기다"라며 명확한 답을 회피했다.
공동투쟁본부는 "만약 정부가 인력부족을 이유로 중기중앙회와 같은 이익단체에 고용허가제 업무를 맡긴다면 사실상 고용허가제를 '제2의 산업연수제'로 전락시키는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중기중앙회에 대한 감독 책임이 있는 중소기업청에 대해서도 아울러 감독 수행 실태를 감사해 줄 것을 요청했다.
"비공개회의 통해 결정할 사안 아니다"
한편 정부가 이같은 고용허가제 시행 계획을 정하는 절차 또한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높다. 지난달 10일 국무조정실 관계자가 노동부가 주최한 한 토론회에서 이같은 방침을 발표한 뒤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는 이처럼 중대한 사안을 외부의 여론수렴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정하려 했다"며 비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지난달 16일 성명서를 내고 "정부가 비공개회의를 통해 산업연수생 추천단체를 선정한 것은 송출비리의 근절, 이주노동자의 인권 및 노동권 보장과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고용허가제가 도입된 취지와 목적에 반하는 결정"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발이 거세자 당초 지난달 10일 외국인력정책위원회에서 이같은 내용이 포함된 고용허가제 시행 방안을 결정하려 했던 국무조정실은 11월 이후로 결정 시일을 미뤄둔 상태다.
공동투쟁본부는 이와 별도로 국가인권위에 대해서도 △정부가 중기중앙회 등 민간이익단체의 고용허가제 업무대행기관 편입 추진을 중지시키고 △강제적금으로 걷혔다가 현재 국내 은행에 예치돼 있는 연수생들의 임금을 파악해 반환할 것을 권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진정서를 7일 인권위에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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