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님 웨일스의 <아리랑>으로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 김산(金山). 그의 본명은 장지락(張志樂·1905~1938)이다.
장지락은 장북성(張北星), 장북신(張北辰), 장명(張明), 유청화(劉淸華), 유금명(劉錦明), 유금한(劉錦漢), 유한산(劉寒山), 유한평(劉漢平), 한국유(韓國劉), 유자재(柳子才), 이철암(李鐵庵), 우치화(于致和), 손명구(孫明九) 등 10개가 넘는 가명을 썼다. 김산은 1937년 님 웨일스(본명 : 헬렌 포스터 스노)와 인터뷰 과정에서 만든 그의 마지막 가명이다.
<아리랑>(Song of Ariran : The Life Story of a Korean Rebel)이 나온 지 65년이 지나고, 그가 태어난 지 한 세기를 넘기고 나서야 그의 평전이 국내에서 출간됐다.
<아리랑>의 빈 곳을 채우는 <김산 평전>
<김산 평전>(이원규 지음, 실천문학사 펴냄)은 님 웨일즈가 김산을 20여 차례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아리랑>의 빈 곳을 채운다는 의미에서 나온 책이다.
님 웨일스는 장지락(김산)의 영어 실력에 대해 "독해는 보통이 넘는 수준이었으나 영어로 이야기하는 데는 그리 능숙지 못했다"고 평가하면서 두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한 바 있다.
또 님 웨일즈는 <아리랑> 원고가 국민당 공안국이나 일본 측에 넘어갈 경우 장지락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염려해 몇몇 사실을 일부러 틀리게 기록해 놓기도 했다. 그는 <아리랑> 초고에 장지락의 모국을 몽골이라고 썼었다. 또 그 이후 출판된 책에서도 그의 고향을 평안 교외 차산리라고 쓰고 있으나, 실제 장지락의 고향은 평안북도 용천군 북중면 하장동이었다.
이 책의 저자인 이원규 교수(동국대 문예창작학과)는 평전을 쓰면서 직접 장지락이 활동했던 중국 현지를 방문했다. 또 <아리랑>이 나온 이후에 밝혀진 관련 자료와 연구 성과도 최대한 반영하려 애썼다.
그래서 장지락이 15세 되던 해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가출해 서간도의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하고, 학교를 마친 뒤 상하이로 가서 <독립신문>의 식자공으로 일하면서 춘원 이광수, 도산 안창호 선생 등에게 가르침을 얻고, 약산 김원봉을 만나 의열단 활동에 가담하고, 베이징에서 의학공부를 하던 중 만난 김성숙을 통해 공산주의 이론에 눈을 뜨는 등 그가 독립운동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또 이 책은 <아리랑>이 담을 수 없었던 장지락의 억울한 '죽음'도 생생하게 재현해 놓았다. 그는 중국 공산당 활동을 하고 김성숙 등과 조선민족해방동맹을 결성해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중국 공산당 극좌노선을 대표하는 캉성(康生)에 의해 일제와 결탁했다는 누명을 쓰고 1938년 10월 19일 총살당했다.
에필로그에는 그의 아내 조아평과 아들 고영광(1945년 조아평이 재혼한 뒤 계부의 성을 갖게 됐다)의 이야기도 담고 있다.
철이 들고 나서야 아버지의 존재를 알게 된 아들 영광은 그 이후 중국 정부의 관료가 되면서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그는 <아리랑>을 쓴 님 웨일즈에게도 아버지 장지락에 대해 묻는 편지를 써 답장을 받기도 했다. 그의 노력으로 1983년 중국 공산당 중앙조직부는 장지락의 처형이 잘못이었음을 인정하고 그의 '명예 회복'을 결정했다.
올해 70세인 아들 영광은 지난 2005년 한국을 방문해 장지락 출생 100주년을 맞아 한국 정부가 수여한 건국훈장 애국장을 아버지 대신 받기도 했다.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수많은 김산들을 위해 썼다"
이원규 교수는 또 "분단 모순은 우리의 허리를 갈라놓은 외에 사회주의 항일투사들의 투쟁을 외면함으로써 독립운동사마저 분단시켜놓았다"며 "김산의 등 뒤에 선,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죽어간 수많은 김산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김산은 채 자신의 뜻을 펴기도 전에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어갔지만, 그래도 <아리랑>으로 남아 많은 이들의 애정과 존경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행운아'라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그래서 이 교수는 한위건, 오성륜, 김원봉, 유자명, 박진 등 당시 장지락과 함께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사상과 투쟁도 최대한 복원시키려 애썼다.
장지락과 함께 했으나 잊혀져간 '소영웅'들을 다시 불러온 것, 또 우리 민족의 역사가 이들에게 얼마나 큰 빚을 지고 있는지 일깨워주는 것도 이 책이 남긴 성과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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