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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 포인트]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

감독 켄 로치 출연 킬리언 머피, 페드레익 딜레이니, 올라 피츠제럴드 수입,배급 동숭아트센터 | 등급 12세 관람가 시간 124분 | 2006년 영국이 아일랜드를 점령한 1920년. 촉망받는 의사 데이미언(킬리언 머피)은 무고한 친구 미하일이 영국군에 사살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충격을 받은 데이미언은 런던의 일자리를 포기하고 형 테디가 이끄는 아일랜드공화국군(IRA)에 가담한다. 아일랜드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우는 IRA는 영국군의 무기를 훔치는 데 성공하지만, 내부의 밀고자로 인해 궁지에 몰리게 된다. 이 밀고자는 데이미언이 오랫동안 친동생처럼 여겨왔던 어린 청년 크리스. 데이미언은 조직의 명령에 따라 크리스를 처형한 뒤 투쟁에 더욱 적극 가담한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 ⓒ프레시안무비
아일랜드 출신의 시인 로버트 드와이어 조이스가 쓴 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녀를 향한 오래된 사랑 / 나의 새로운 사랑은 아일랜드를 생각하네 / (중략) / 그러나 우리를 묶은 침략의 족쇄는 / 그보다 더 견디기 어려웠네 그래서 난 말했지 / 이른 새벽 내가 찾은 산골짜기 그곳으로 부드러운 / 미풍이 불어와 황금빛 보리를 흔들어 놓았네" 켄 로치의 올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동명의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바로 이 시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칼라송>(1996) 이후 <내 이름은 조><빵과 장미><스위트 식스틴> 등 켄 로치의 모든 극영화에서 시나리오를 쓴 폴 래버티는 바로 이 단순한 시구를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풀어낸다. 영화의 주인공 데이미언은 시네이드라는 연인을 향한 오래 된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영국군의 횡포는 데이미언으로 하여금 아일랜드를 생각하게 한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데이미언이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IRA에 가담하여 투쟁하며 겪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 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직, 그리고 신념이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아일랜드 독립투쟁 초기의 상황에 돋보기를 들이댄다. 아일랜드가 영국에 대항한 독립 운동을 전개하고 자치정부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떤 체험을 했는지를 차근차근 풀어낸다. 영국군은 무자비한 군홧발로 아일랜드의 보통 사람들을 마구 짓밟는 야만적인 족속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켄 로치의 목적은 단순히 영국의 제국주의가 저지른 만행을 반성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켄 로치는 IRA의 독립투쟁에 얼마나 많은 갈등과 혼선이 내포돼 있었는가에 더욱 초점을 맞춘다. 데이미언이 내부 밀고자라는 이유로 어린 소년 크리스를 사살한 뒤 갈등하는 것이 그 첫 번째다.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데이미언과 형 테디의 대립으로 이야기의 축을 옮겨간다. 현실주의자이며 타협주의자인 테디는 IRA에 활동 자금을 대는 자본가를 옹호하며, 아일랜드에 일부 독립을 인정한 런던협약을 받아들이며 아일랜드 자유국 건립에 순응한다. 하지만 동생 데이미언은 다르다. 그는 자본가에 종속되어 노동자를 탄압하는 교회의 정책을 정면으로 비난하면서, 완전한 평등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을 다짐한다. 두 형제의 정치적 노선 차이는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치닫는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 중 하나는 독립투쟁에 가담한 청년들이 격렬히 토론하는 장면들이다. 아일랜드와 영국의 갈등을 다룬 기존의 영화들에서 보지 못했던 흥미진진한 논쟁이 오고간다. 20세기 초반 영국의 정치와 역사를 다룬 이 이야기가 전혀 지루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물론 폴 래버티의 탄탄한 시나리오와 켄 로치의 담백한 연출력 덕분이다. 이들의 정치적 노선 차이와 거기서 벌어지는 갈등은 이념적 분쟁이 있었던 전세계 어느 지역에 대입해도 설득력을 가질 만큼 보편적인 울림을 자아낸다. 동생과 형의 갈등, 가족과 연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애증과 비극의 이야기 역시 정서적 공감대를 자아낸다. 덕분에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딱딱하고 낯선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의 감정을 쥐고 흔든다. 영화가 클라이맥스로 치달을수록, 극장 안에는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굉장한 스펙터클이 있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스타들이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켄 로치는 가장 간결한 영화적 장치들을 통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과시적 스펙터클로 무장한 정치 역사 드라마가 따라올 수 없는 숭고한 경지에 오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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